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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 디오스폴리스

Lod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도시다. 룻다, 베드로가 욥바로 가는 길에 들러 8년 동안 침상 위에 누워 있던 애니아를 고쳐준 장소다. 이를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보았고 주께 돌아왔다 (행 10).

 

룻다는 유대인 반란이 일어난 66년 로마인들에 의해 파괴된다. 2세기 하드리아누스가 룻다를 재건하고 Diospolis, 신의 도시라는 이름을 내린다. 3세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룻다를 로마의 식민지로 여겨 등급을 내렸다. 그 후 비잔틴 시대 기독교 도시가 되었고 636년 아랍에 정복됐다.

 

3세기 후반 카파도키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팔레스타인 룻다 출신이었다. 남편이 죽자 어머니는 어린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자라서 아버지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군인이 되었다. 군대에서도 빠르게 승진했는데, 20대 후반에 장교급인 tribunus를 거쳐 count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게오르게, 영어는 George라고 부른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인 경비대 일원으로 니코메디아에 주둔하게 된다.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제국 전역에서 기독교인을 조직적으로 박해하는 것을 승인하는 칙령을 발표한다. 게오르게는 박해에 가담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대신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고백한다. 분노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배신자를 고문하고 처형한다. 수많은 고문을 당한 끝에 게오르게는 303년 4월 23일 니코메디아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고통을 목격한 알렉산드라 황후와 당시 이교도 사제였던 아타나시우스가 기독교인이 된다. 순교한 게오르게의 시신은 룻다로 돌아와 매장됐다. 11월 3일(정교회력으로 16일)이다. 카톨릭과 정교회는 순교자 게오르게 Agios Georios의 사망과 매장, 두 번의 기념일을 엄수한다. 

 

비잔틴 시대 이후 이곳을 정복한 이슬람도 롯을 중요한 도시로 활용했다. 덕분에 순교자 게오르게도 이슬람에 알려졌고 그들의 신비로운 선지자 Al Khidr의 후보 중 하나가 된다. (엘리야 선지자로 보는 게 좀 더 주류이긴 하다). 덕분에 롯에는 Church of Saint George와 Mosque of Al Khidr가 나란히 있다. 

 

모스크의 미나렛과 교회의 십자가가 나란히 있다. 수도원 위로 그리스 정교회의 깃발이 나부낀다. 하얀 색에 빨간 십자가는 그리스 정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무덤이을 표시하는 tau와 phi의 결합 Taphos이다. 

순교자 게오르게의 석관과 순교 과정을 묘사하는 아이콘.

 

신약 성경에 등장하고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였던 롯은 십자군에게도 매력을 발휘한다. 곳곳에 십자군 요새와 성채가 자리한다.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는 순교자 게오르게에게 매료된다. 군인의 용맹을 드러내는 데 적합한 성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순교자 게오르게는 Saint George가 되어 영국, 에티오피아, 조지아, 카탈로니아, 아라곤에서 수호 성인이 된다. Agios Georios의 무덤임을 알리는 오 트로파이오 포로스. 

 

세인트 조지와 사브라 (그림 속에 서 있는 여성)의 사랑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와 닮아 있다. 이야기는 지역 전통에 따라 세부 사항이 다르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용이 샘(혹은 호수)에 둥지를 틀고 있어서 마을(베이루트나 리비아의 실레나 근처) 사람들은 매일 인신 제사를 바치고 있었다. 그날의 희생자는 추첨을 통해 선정됐는데, 우연히 그곳 마을의 공주가 당첨된다. 왕은 공주를 살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도리가 없었다. 공주가 용에게 바쳐질 때 이곳을 여행 중이던 게오르게가 도착한다. 게오르게는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뒤 용을 죽이고 공주를 구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에 이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게오르게와 용의 전투는 기독교인과 사탄의 전투, 혹은 미카엘 대천사와 루시퍼의 전투를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또 용을 죽이는 것은 유럽 민속의 오랜 전통으로 일종의 기독교 토착화로 볼 수 있다.

세인트 조지의 아이콘은 초기에는 로마 군인의 갑옷을 입었는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십자군과 결합한 후에는 백마를 탄 모습으로 자주 묘사됐다. 세인트 조지가 또 다른 로마 군인 순교자 세인트 데메트리우스와 연합하기도 한다.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현현에 비유된다. 세인트 조지는 백마 위에, 세인트 데메트리우스는 빨간 말(또는 검은 말)을 탄다. 

 

1996년 고속도로 건설 도중 모자이크 바닥이 우연히 발견된다. 길이 17미터, 너비 9미터 모자이크 바닥을 덮고 있는 잔해에서 3-4세기 도자기와 동전이 나왔다. 초기 로마 시대 디오스폴리스 시절 모자이크인 것이다. 2009년 겨울 더 많은 모자이크 바닥이 드러났다. 이스라엘에는 로마 시대 모자이크가 많지만, 롯의 모자이크는 대단히 뛰어난 품질과 우수한 보존 상태고 즉시 주목을 받았다. 가장 잘 보존된 흥미로운 패널 세 점이 먼저 미국을 여행하며 대출 전시회를 연다. 이스라엘에서 영구 보존될 박물관을 짓는 동안 모자이크가 스스로 해외에서 돈을 번 것이다. Shelby White와 Leon Levy 재단이 지금을 제공해 롯 모자이크 고고학 센터가 설립됐다.

모자이크의 등급은 테세라(모자이크 돌)가 얼마나 작으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컬러가 들어갔느냐에 따라, 또 공간이 얼마나 확장성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롯의 모자이크 바닥은 최고급의 경지를 보여준다. 

 

저 요소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감상할 만하다. 모자이크 제작자는 특히 생선을 다루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로마는 북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그 지역의 생선들이 많기 때문이다. 코끼리와 기린도 아프리카에서 왔다.

 

건물 자체가 모자이크 전시를 최상의 수준으로 감상하는 데 적합하게 지어졌다. 이스라엘에서 박물관 다니는 연령층은 다소 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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