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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in Israel

수리남 회당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보다 껐다. 그런 종류의 영상은 도대체 왜 만드는 걸까. 실화라는 게 정당한 이유가 되나? 내 돈 내고 시청하는 처지에 별로였다는 감상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혹평을 보탤 필요는 없을 테니 이만하겠다.

 

이스라엘에서 수리남은 꽤 알려진 나라이고, 그렇게 알게 된 나라에 개인적으로 많은 애착을 느꼈다. 수리남은 남아메리카에서 영토가 가장 작은 나라로 브라질 위, 베네주엘라 오른쪽, 그리고 대서양에 접해 있다. 영토의 90% 이상이 열대우림 정글과 강으로 나라 경제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대부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대륙에서 수리남은 거의 유일하게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공용어가 네덜란드어이다. 하지만 유럽 지배자들을 위한 노예 사회로 기능했기 때문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덕분에 현재는 아프리카 밖에 있는 아프리카인의 나라이자, 아시아 밖에 있는 아시아인의 나라이다. 인도 출신의 힌두스타니, 인도네시아 출신의 자바족, 중국인 등 많은 아시아 소수민족이 정착했다. 현 대통령 찬 산토히도 인도 후손이다.

 

수리남의 수도 파라마리보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목조 도시이다. 유대인 공동체 역시 대형 목조 건물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거리에 자리잡았다. 유대인이 처음 이 도시에 도착한 것은 1630년대이다. 1492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은 당시 종교적으로 가장 자유롭던 나라 네덜란드로 도피했고, 거기서 이탈리아로 이동해 배를 타고 브라질까지 이르렀다. 대규모 공동체는 남미의 큰 나라들에 자리를 잡았지만 여의치 않았던 소수 인구는 더 작은 남미 국가들로 떠돌았고 수리남까지 이르렀다. 

 

주로 포르투갈 출신이었던 수리남의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당국의 종교적 관용을 기대하고 이곳에 정착했다. 강을 따라 사탕수수 농장을 세우고 성서에 나오는 이름을 붙였다. "강변의 예루살렘"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건너온 포르투갈계와 아슈케나지계는 다른 지역들처럼 갈등을 빚었고 그 때문에 곧 분열됐다. 1735년 아슈케나짐이 설립한 네베 샬롬 회당은 현재까지 남아 기능하고 있다. 1736년 포로투갈계 유대인은 체데크 베샬롬이라는 회당을 열어 독립한다.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바실리카 홀이 있고, 신도들을 위한 벤치가 중앙을 마주보고 있다. 공동체 지도자들(parnassim)과 랍비를 위한 벤치가 따로 있다. 대칭 구조의 벽에는 햇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대형 창문이 있다.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 회당 Esnoga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건축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카리브해의 다른 회당들처럼 바닥이 모래로 덮여 있다. 고대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방황한 것처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떠돌이 지위를 상징한다. 

체데크 베샬롬 회당은 1990년대 후반 폐쇄되었고 회당 가구들은 기부자에 의해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보내진다. 

 

 

이스라엘 박물관은 세계 도처에 있는 회당을 들여와 재현하는 데 애쓰고 있다. 

 

코로나 직전인 2020년 1월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찰스 당시 왕세자가 영국 최고 랍비 에프라임 미르비스의 안내로 인도에 있었던 회당을 살펴보고 있다.  

 

인도 Cochin에 있던 카다붐바감 회당은 힌두교 사원에서 볼 수 있는 로투스를 모티브로 한 천장이 독특하다. 바닥 장식도 인도풍으로 맨발로 걸을 수 있도록 카펫을 깔았을 것이다.  

 

베네치아 근처에 있던 비토리오 베니토 회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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