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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ife in Israel

일요일 아침 텔아비브 기차역

이스라엘의 일요일은 욤리숀, 일주일의 첫날이다. 모든 도로가 막히지만 텔아비브 방향은 특히 엄청나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에 텔아비브 쪽으로 갈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굳이 가야 하면 기차를 탄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 텔아비브 방향 기차들도 지독하다. 

 

위장이 안 좋아서 가스트로엔터롤로지스트, 를 예약한 게 대략 세 달 전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전문의가 없어서 바트 얌Bat Yam까지 가야 했다. 텔아비브 욥바 바로 아래 있는 해안 도시이다. 교통 상황 같은 걸 따질 계제가 아니기 때문에 일요일 오전 기차를 불사하게 됐다.  

 

이 단어의 스펠링을 몇 번이나 체크했다. gastroenterologist גסטרואנטרולוג. 히브리어는 의학 관련 용어를 라틴어 그대로 사용한다. 주로 독일계 예케 출신들이었던 건국 초기 의사들이 이런 전통을 세웠을 것이다. 자기들한테는 하나도 어렵지 않으니. 영어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고급 용어들을 사회경제 약자층이 능숙하게 사용하기는 어렵다. 내게 gastroscopy와 colonoscopy를 설명하는 의사가 '너 따위가 이런 말을 알 리 없지만?' 하는 표정이었던 것은 공연한 자격지심이 아니다. 하지만 외노자인 나는 그런 걸 아는 체하는 것보다, 의사가 써주는 '긴급 요망'이 더 간절하다. 다행히 한 달 만에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는데, 물론 그건 동정심을 유발해서라기보다 내 보험료 등급 때문이다. 클리닉을 나서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일요일 오전 7시에 위장병 전문의 예약이 된 것도, 그 의사로부터 한 달 안에 위와 대장 내시경을 받으라는 진단서를 받아낸 것도 모두 돈의 힘이다.

 

바트 얌에는 러시아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했는데, 그 장점 중 하나는 문화예술공연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바트 얌의 타르부텍은 흥미로운 연극 공연들로 유명하다. 사과를 쪼개 만든 저 분수대가 여름에는 꽤 시원해 보인다. 나무들 사이에 있는 조각상은 홀로코스트 당시 고아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한 폴란드의 교육자 야누스 코르착의 동상이다. 

 

바트 얌의 또 하나의 특징은 300명 규모의 베트남 사람들의 거주지라는 점이다. 1975년 사이공이 무너진 후 무작정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난민이 된 베트남의 보트 피플 360명을 당시 므나헴 베긴 정부가 받아들였다. 유대인이야말로 사이공 사람들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아시아 식품이 들어오고 베트남 음식점이 생긴 것도 이들 덕분이다.   

 

바트얌에서 기차를 타고 텔아비브로 이동한다. 바트얌은 소도시라 대도시로 나가려면 다른 노선을 타야 하는데, 텔아비브로 가야 갈아탈 수 있다. 일요일 오전이기 때문에 옆 사람과 신체가 닿을 정도로 승객이 많다. 하지만 이스라엘 기차 속 풍경은 단지 인구밀도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미묘한 특징이 있다. 후츠파다. 조금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조금도'라고 말한 건, '언제나'와 동일한 의미다. 뒷사람이 계단을 올라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앞으로 밀고 가지 않는다. 왜냐, 앞으로 밀고 가면 욕을 먹는 건 나일 테니까. 자리가 없다고 비집고 들어가도 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라고 내 자리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뒷사람은 어떻게 될까? 자기 알 바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에게 나는 동방예의지국 출신다운 품위를 보여준다. 누가 내리려고 하면 먼저 내려서 자리를 만들어준다. 이게 어렵지 않은 일인데, 결국 모두를 위한 길인데, 남에게 관심 좀 갖고 사시라, 행동으로 보여준다. 

 

바트얌에서 세 역을 지나면 텔아비브의 가장 남단 기차역 HaHagana 역이다. 

 

 

이쪽은 담배 피는 분들 자리이다. 군인들은 짐이 많아서인지, 민간인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대개 저 끄트머리에 가서 기다린다. 

국제공항, 나트바그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는 곳도 여기이다. 여행 가방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영어가 있긴 하지만 도무지 해독이 안 되는 전광판만으로는 자기가 타야 하는 기차가 맞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도착한 기차 차량에도 어디행인지 써 있지 않다(써 있지만 알아보기 어렵다). 자신이 없으면 반드시 국제공항 행인지, 예루살렘 행인지, 물어봐야 한다. 일단 아무 기차나 탄다는 마인드는 이스라엘에서 안 통한다. 노선마다 다른 방향이기도 하고, 기차 종류에 따라 서는 역도 제각각이다. 특히 예루살렘 가야 하는 사람이 브엘세바가 가까워지고 있다면 기차를 잘못 탄 것이다.   

 

기차 역에서 만날 수 있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 배낭 여행자, 군인, 그리고 이 틈에서 도시간 이동을 위한 기도를 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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