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지는 2월에는 남쪽에서부터 칼라니트כלנית와 라케페트רקפת가 피기 시작하고, 추워지는 11월에는 북쪽에서부터 시트바니트סתוונית와 헬모니트חלמונית가 피기 시작한다. 11월 첫 주가 가을 야생화의 절정이다. 이른 비, 첫 비, 요레가 내리고 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 메론 산에 간다. 꽃도 볼겸, 산 속에서 뭔가 한 해를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추워지면 집을 나서기가 싫어질 테니.
미쉬나에 기록된 '시트바니트의 호메츠'(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꽃과 식초가 무슨 관계라는 건지? 유럽 학명은 colchicum이지만, 히브리어로 다양한 명칭들이 후보에 올랐다. 시트바니트 외에 바르 요레 즉 '이른 비의 야생화'가 꽤 알려진 편이다. 이처럼 계절에 민감한 꽃이 성경에 안 나올 리가 없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유래를 찾는다. 아가서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하바쩰레트라는 견해가 있다. 문제는 하바쩰레트가 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영어는 rose라 옮기고 우리말은 샤론의 수선화라고 했다. 쇼샤님이라는 견해도 있다. 영어는 lily라 옮기고 우리말은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했다. 한마디로 에레츠이스라엘에서 제일 예쁜 꽃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헬모니트는 색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달걀에서 흰자가 히브리어로 헬본, 노른자가 헬몬이다.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유럽인들은 형태에 좀 더 관심이 있어서 별 모양에 착안해 sternbergia라고 한다. 구근이 있는 다년생 식물로 잎 없이 땅에서 올라온다.
이스라엘에서는 자신이 하늘 아래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 장소가 많지 않다. 메론 산은 이스라엘 영토에서 가장 높은 1208미터 산이다 (2814미터의 헤르몬 산은 국제법상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다). 예루살렘이나 쯔파트가 해발 800-900미터 도시인데 명색이 산이 고작(!) 천 미터라니 시시할 수도 있다. 그런데 메론 산은 고산이 아니라도 매력이 충분하다.
요세푸스는 이 산을 아쯔몬이라 불렀고, 유대교 현자들은 하르 제베드, 아랍인들은 자발 제르막이라 했다. 메론은 50년대 유대화된 명칭이라 아직도 메론이라는 호칭에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사야 선지자에 따르면 이곳은 흑암 속에 있는 멸시를 당하는 이방인의 땅이어서 유대인에게 호감을 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왜 그럴까. 지금이야 도로가 닦여서 차로 달리면 되지만 고대 사람들이 이 산을 넘자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울창한 숲도 보기에 따라서는 무서운 야생의 세계일 수 있다. 현재 산 대부분이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연강수량이 900mm, 전국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고 지형학에서 mediterranean woodlands라고 부르는 천연삼림이 조성돼 있다. 상수리나무 알론, 크탈라브קטלב가 주종이다. 언제 가도 좋지만 한여름 땡볕에서 이를 악물다가 숲속으로 들어가 산소의 혜택을 받을 때 꽤 좋다.
이스라엘에는 전 국토를 따라 걷는 트래킹 코스가 있는데, 슈빌 이스라엘이다. 그중 슈빌 아돔이 있고 그 구간에 메론 산의 마슬룰 하피스가가 있다. 2킬로미터 정도의 코스인에 한 바퀴 돌아 거의 제자리로 나오게 되어 있다. 코스 입구까지 도로도 잘 닦여 있어 단체로 오기도 한다. 성경에 메론 산이 등장하지 않다 보니 기독교 순례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여기 들를 기회가 많지 않다. 게다가 등산 애호인들에게는 이 정도 산이 대단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상부 갈릴리는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도 여러 곳이다. 두 번째 방문이라면 찾아볼 만한 곳이다.
알론 사이사이로 단풍처럼 붉은 잎은 엘라이다. 메론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가을 풍경이다.
유대인들에게 메론 산이 중요한 이유는, 시몬 바르 요하이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전에 머물렀던 쯔팟과도 가깝다. 그의 힐룰라, 즉 기일은 라그 바오메르로, 유월절에서 33번째 날이다. 매년 라그 바오메르 때 이곳은 발 딛을 틈도 없다. 2021년 이곳에서 우리나라 이태원 참사와 비슷한 성격의 사고가 일어나 45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당했다. 주최측이 명백한데도 참사를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논란이다.
시몬 바르 요하이רשב"י 무덤 입구이다. 남자와 여자 입구부터 다르다. 거룩한 장소인 만큼 쯔누아 modest한 복장을 갖춰 달란다. 쯔누아의 개념이 사람마다 좀 다르다. 일단 여성은 스커트 차림에 맨살(목 부분, 다리 부분, 팔 부분)이 안 드러나는 게 핵심이다. 입구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쯔다카를 요구하는, 한마디로 구걸하는 사람들이다. 너무 당당해서 모르는 사람은 입장료인가 할 수도 있다. 하기야 쯔다카는 유대인의 의무이니 캄짜님-걸인은 자신이 쯔다카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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