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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라, 이슬람의 수도

로드와 람라는 쌍둥이 같은 도시다. 해안선에서 조금 내륙으로 들어온 쉐펠라 지역에 있다. 로드는 신약 시대 룻다, 비자틴 시대 디오스폴리스로 불리며 번영을 누렸다. 위치가 딱 그럴 만하다. 테라 로사 붉은 흙은 농사에 좋고, 가까운 욥바 항구는 교역에 유리하고, 위아래 좌우 지역 모두로 통하는 도시였다. 661년 세워진 이슬람 우마야드 왕조의 수도는 다마스커스였다. 광활한 영토를 지역별로 나누어 중간 행정수도를 지정했는데 팔레스타인 지역(Jund Filastine)에서는 로드가 딱이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이 애지중지하던 도시를 그대로 물려받기를 원치 않아 새로운 도시를 물색하게 된다. 결국 로드 옆에 신도시를 건설하는데 그게 람라, 아랍어로 람레(red sand)이다. 모래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왜 예루살렘이 아니고?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거룩한 도시일 뿐 이슬람의 파티마(내전)에서 정치적 구심점이 된 적은 없었다. 다마스커스의 우마야드 왕조는 아라비아 반도의 독점적 지위를 대신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종교적으로 세팅하는 데 공을 들였다. 압달 말리크가 황금 돔을 건설하고, 그 아들 알 왈리드가 엘악사 모스크를 세웠다. 압달 말리크의 큰아들인 슐레이만이 람레를 건설한 인물이다. 현재 엘악사 컴파운드에 '슐레이만 돔'이 있는데 16세기 오토만의 위대한 슐레이만이 아니라 우마야드의 슐레이만이다. 성전을 세운 이스라엘 왕과 더불어 모두 솔로몬이다.        

 

람라의 랜드마크가 모두 잡혔다. 왼쪽 큰 건물이 2001년 세워진 람라의 쇼핑몰이다. 무슨 쇼핑물 정도가 랜드마크인가 싶지만 보시다시피 현재 이 도시에서 구색이 변변한 유일한 건물이다.

중앙의 십자가 있는 곳은 1396년 프란체스칸이 세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수도원이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람라 사람이라고 현지 기독교는 믿는다 (그 시절에는 도시가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자파 전투를 앞두고 있던 1799년 4월의 나폴레옹도 여기 머물렀었다. 새벽에 무에진이 알라 알 아크바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쏘아 죽였다고 전해진다. 그 방은 현재 폐쇄돼 있다 (교회라 돈벌이에 관심이 없으시다).

공장 앞에 Great Mosque 혹은 오마르 모스크의 미나렛이다. 

 

교회는 평일 1시까지 개방한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일찍 도착하면 교회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교회 건물은 1902년 스페인 교회의 도움으로 지어졌고, Terra Santa School도 더해졌다. 프란체스칸 성지 수호자가 이스라엘 땅에 세운 테라 상타 학교는 악코, 베들레헴, 하이파, 나자렛, 자파, 여리고, 예루살렘, 람라 여덟 군데이다. 람라 학교는 아랍 학생들만 공부하는데, 도시의 미래와 관련해서 보석 같은 학교다. 누가 뭐래도 기독교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다.    

 

우마야드 슐레이만이 세운 화이트 모스크 잔재이다. 이름의 유래는 대리석으로 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마스커스에 있는 모스크보다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적지를 둘러싸고 무슬림 무덤이 남아 있다. 고대 무덤은 거의 없다. 우마야드 왕조가 749년 레반트 지역에서 아바시드 왕조에게 패배한 이유가 지진 때문이다. 람라의 화이트 모스크는 1034년 지진으로 무너졌고 도시의 3분의 1과 함께 폐허 속에 남았다. 람라는 970년까지 이슬람 피트마 내전의 격전지 중 하나였고 1099년 십자군이 오고 나서야 재건된다. 이후 살라딘도, 맘룩도 람라의 모스크를 재건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이상하게도 여의치 않았다. 맘룩 바이바스가 모스크 일부와 미나렛을 짓는 데 성공했다. 딱 봐도 기독교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탑을 올라가 5층 높이에서 람라를 조망할 수 있다. 27미터, 125개 계단이다. 

 

슐레이만이 화이트 모스크를 지을 때 대리석을 구했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 대리석을 소유할 만한 재력을 갖춘 곳은 교회가 유일했다. 슐레이만은 대리석을 내놓지 않으면 로드의 세인트 조지 교회의 대리석을 가져가겠다고 윽박질렀고, 교회는 해안가 모래 어딘가에 숨겨둔 대리석을 내놓았다. 아부고쉬에 세울 예정인 교회를 위한 대리석이었다고 한다. 결국 다 무너지고 말 것들이라고 의미가 없을까. 이야기가 남지 않았나. 무늬가 사라질 지경인 사람의 손탄 흔적들에 잠시 먹먹했다. 

 

묘지 글귀가 참. "내 무덤 앞에 서서 나로 인해 놀라지 말라. 어제 나도 그대처럼 서 있었지만 오늘은 여기 있다. 알라께서 우리에게 선한 끝을 주시기를."

 

화이트 모스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람라의 지붕 있는 저수지, Pool of Arches가 나온다. 1200년 된 지하 저수지에서 보트를 탈 수 있는 곳인데 아직도 이렇게 개발이 미진하다. 요즘 들어서야 제대로 된 입구를 짓느라 공사중이다. 기독교 전통은 헬레나 왕비가 이를 파게 했다고 본다. 아랍어로는 염소들의 저수지인데 짐승에게 물을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저수지는 789년 람라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아바시드의 통치자 하룬 아라쉬드의 업적으로 본다. 천일야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칼리프이다. "In the name of Allah and with Allah’s blessing, the agent of the Emir of the faithful ordered construction, may Allah lengthen his days, in the month of Haja in the year one hundred and seventy two.”

물은 게셀 지역에서 연결된 중앙 수로를 통해 공급되었고, 화이트 타워 건물에 있는 저수지로 연결된다. 기둥은 전체 15개이고 이슬람 양식인 포인티트 아치가 선명하다.

 

15분 남짓이지만 노 저으며 물 놀이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저수지 나오는 길에 만난 하가나 공원의 조각상이다. 모세가 두 돌판을 들고 있다. 

 

이름도 기능도 모스크지만, 12세기 십자군 건축 가운데 거의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건물, 그레이트 모스크이다. 

모스크 입구의 아치와 교차 네모꼴은 현재 엘악사 모스크 파사드와 비슷하다. 엘악사 모스크도 십자군 템플러의 건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마스타바(양쪽에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이슬람 양식이다. 모스크 후문은 예루살렘 홀리 세퓰커, 성묘교회를 그대로 닮았다. 저게 언제나 재건이 될지. 

 

실내는 세 개의 홀, 하나의 나베, 두 개의 transept가 있는 클래식한 바실리카 양식이다. 기둥 위 캐피탈은 elbow라고 불리는 십자군의 것이다. 설교단 민바르 옆에 있는 미흐랍은 현재 메카를 향한다. 하지만 또 하나의 미흐랍이 입구 옆에 있는데 동쪽 나사렛을 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십자군 건물을 모스크로 전환한 건 13세기 맘룩이다. 바이바스가 1268년 모스크를 세웠다는 비문이다. 

이슬람의 예배는 오직 한 가지 형태인데, 개인 기도이다. 희생 제사도 없고 공동체를 위한 선창자도 없다. 뒤쪽에는 여성들을 위한 기도실이 있지만 이슬람의 여성은 기도 의무에서 면제된다. 모스크에 올 권리는 있지만 의무는 없다. 모스크 바닥의 카펫은 아무도 영구적인 지위를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한 사람이 들어가 기도할 만한 크기로 카펫이 나뉘어 있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도 모스크를 통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첫 번째 줄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안뜰에 기도하기 전에 우두-몸을 씻는 예식을 위한 시설이 있다. 현재 Shihav ed Din의 무덤이 안뜰에 있다. 살라딘의 조카뻘이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외국인에게 개방되는 모스크는 많지 않다. 람라의 모스크는 이 땅의 독특한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인 만큼 비록 입장료는 있지만 충분히 방문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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