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공항으로 배웅이나 마중 가는 문화가 아니다. 입출국이 워낙 잦기 때문에 그런 일상에 동원되느라 다른 사람이 하루 스케줄을 망쳐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짐이 많을 때 라이드를 부탁하는 게 아직은 편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컨대 라이드를 부탁하면 대신 몇 백 세켈 택시비를 내주는 걸 선호한다. 대신 카발라트 하파님은 전통이다. 멀리 오랫동안 여행 갔던 사람이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전 가족과 친지들이 맞아주는 일이다. 대개 군대 제대 이후 장기간 세계여행에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대개 단체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지만 개인 방문도 늘어나는 추세다. 개인의 경우 입국 심사에 애로가 많다는 건 각오해야 한다. 단체와 달리 개인은 어디를 가는지 파악이 되지 않아 보안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이 꽤 집요한데 그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바로 생각의 방으로 끌려간다. 그런 경우 나는 지인들에게 바로 내게 전화하라고 당부한다. 남의 나라 출입국 관리 앞에서 자신의 신원을 변호하는 경험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수모일 뿐이고, 그런 경험은 이 나라를 여행할 때 쓴물로 작용해 기회 될 때마다 울화가 치밀기 때문이다. 출입국 관리도 현지에 있는 한국인 지인과의 통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내 신원이 확실하면 이 여행자를 붙잡고 쓸데없는 소모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신원이 확실한데다, 대개 지금 입국장에서 그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다.
한때 아랍 국가들 비자가 찍힌 사람은 생각의 방으로 직행한 시절도 있다. 하지만 국제 상황은 많이 달라졌고 이제 이스라엘 보안당국도 여기 발맞추는 흉내는 낸다. 그래도 이란은 여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초창기에 입국조사가 이따위인 나라가 어디 있냐고 거품 물었었다. 지금도 독일 출장 혼자 갈 때 패턴 자체는 여전하다. 외국인인 내가 이스라엘에 살면서 정기적으로 독일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그들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할 때 호텔 식당 커피 한잔 영수증까지 절대 안 버리고 간직한다. 거기서 뭐했냐고 물을 때 영수증으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초창기에는, 아니 현금으로 냈다니까요, 하나마나한 설전을 벌이다 지치며 얻은 노하우다. 아, 현금으로 내셨구나, 하고 넘어갔다가 얼마 후에 다시 묻는다. 내 진술이 바뀌는지 보기 위해서다. 미쳐버린다. 저기요 이건 범죄자 수사 방식 아니에요? 그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물론 질문 시간이나 방식은 이스라엘에서 내 신분이 안정된 후에는 훨씬 짧아지고 정중해졌다. 생략될 때도 있다. 하지만 유럽 공항에서 이스라엘 국적기를 혼자 타야 하는 피치 못할 경우, 파도를 넘어야 한다고 각오한다. 최근에 여행 유투버들이 혼자 이스라엘에 입국하다가 이런저런 봉변을 만나 악담을 쏟아놓는 경우를 보았다. 이곳은 그러하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들어서면서 벤구리온이 뭐냐고 묻는 한국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이스라엘 근대사에 우리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으니까. 이츠하크 라빈이나 시몬 페레스는 꽤 많이 알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그들이 총리직에 있을 때 이스라엘 소식을 가장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벤구리온은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이다. 그건 나라가 세워지고 나서이고, 그 전에도 벤구리온은 유대 민족의 대표였다. 적어도 1937년 이후 에레츠이스라엘에서 확고한 유대인의 대표로 활동했다. 모름지기 정치가는 정적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자리에 도전한 사람이 수십 년간 아무도 없었을까? 없었다. 당시 유대인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건 신앙의 영역에 가까운 불가능한 꿈이었고, 그런 꿈을 꾸다 못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앞장선다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시오니즘은 정치활동보다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을 선호했다. 언어를 부활시키고 그 언어로 소설을 쓰거나 신문을 발행하고 연극에 올리는 일이 적성에 맞는 유대인이 훨씬 많았다. 정치는 이들 유전자에 맞지 않았다. 벤구리온도 정치인이 아니다. 막상 정치를 시작하고 그 역시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벤구리온은 성경 속 사사의 역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사사들처럼 그 역시 나라가 세워지기도 전에 국방부장관부터 된다. 왜냐하면 그가 이스라엘 군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가 주도한 군사작전은 대개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모든 게 무모했지만 그는 그것을 이룬 사람이다.
공항은 이 나라의 첫 인상인 만큼 상콤한 이미지를 남기고 싶지만, 사연 많은 나라라 이조차 쉽지 않다. 한번은 뜻밖의 질문에 어쩌다 말이 터지는 바람에 생각없이 이야기를 쭈욱 했는데 듣고 있던 분들이 다 질린 표정이었다. 여행이고 뭐고 이런 나라를 어서 떠나고 싶다는.ㅋ 이 나라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이 나라의 실상이 간단치 않다는 이유로 많은 난관에 부딪친다.
입국장에서 대중교통으로 연결된 곳이다. 기차, 택시, 쉐룻(버스와 택시의 요금 중간)을 여기서 탈 수 있고, 한 블럭 건너면 텔아비브와 쉐펠라 쪽으로 나가는 일반 버스도 있다. 붐비는 사람들을 뚫고 정신없이 차량으로 돌진할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낯선 도시에 도착한 어색함에 잠시 두리번할 여유도 주어지지 않다니. 그건 두려움이 아니라 설레임인데.
살바도르 달리의 메노라이다. 새미 플라토 샤론이 기증했다고 써 있다. 이스라엘의 70년대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새미 샤론은 1930년 폴란드 롯즈에서 태어났고, 대부분의 가족을 홀로코스트 때 잃는다. 혼자 탈출해 파리와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고 사업에 뛰어든 30대에 이미 전 유럽과 미국과 남아프리카에 걸친 수십 개의 사업체를 소유했다. 1972년 이스라엘로 알리야를 하는데,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6천만 달러 횡령 혐의로 수배됐기 때문이다.ㅋ 5년 후에는 선거에 출마해 2% 득표로 당선되는데, 면책특권을 받아 프랑스로 구인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여기 부응한 것은 프랑스와 미묘한 갈등 때문이다. 1972년 뮌헨 학살의 주범, 검은 구월단의 사령관 아부 다우드를 인도해 달라는 독일과 이스라엘의 요청을 프랑스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당 정부는 당시 PLO에 면책특권을 인정해 아부 다우드를 알제리아행 비행기에 태워 탈출시켰다.
구입해서 기증한 사람은 따로 있지만 어쨌든 제작자는 살바도르 달리이다. 어쩌다 메노라를 만들었을까? 혹시 유대인인가? 스페인 출신 중에는 카톨릭이지만 유대인 조상을 둔 경우가 종종 있다. 강제 개종 시대를 거쳤기 때문이다. 달리의 아내 갈라가 혹시 유대인일까? 둘 다 아니다. 조상까지야 확인할 수 없지만 그런 이유에서 주다이카를 제작한 건 아니다. 유대 민족에 일종의 공감을 느낀 것 같지도 않다. 달리는 히틀러와 프랑코에게 매혹을 느꼈으니까. 달리는 비지니스를 잘 이해했을 뿐이다. 유대인 시장은 이문이 남으니까.
어쨌든 초현실주의 운동에 연루된 유대인이 많고 자연스럽게 초현술주의 작품을 소장한 유대인도 많다 보니 이스라엘에는 달리의 작품이 꽤 있다. 이스라엘 박물관 회화관, 텔아비브 아트 뮤지엄 외에도 케이사랴에 있는 레카나티 뮤지엄에 상당한 소장품이 있다. 그나저나 칸달리스트의 예술도 존중을 받아야 하나? 달리가 요즘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이스라엘 공항에 있는 메노라에 아직도 적응 못한 이유다.
출국장에서는 이런 벤구리온도 볼 수 있다. 벤구리온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상상이 안 간다. 출국장 앞에 있는 찡그린 동상이 가장 벤구리온스럽다.
므나헴 베긴이 커피 팔고 있는 줄 알았다. 서 있는 분은 테어도어 헤르쩰이다.
저게 왜 여기 있지? 미국에서 에어포스원이 움직일 때 마린 원과 비스트를 태우고 오는 수송기 보잉 C-17, 글로브마스터다. 누구 왔네. 다들 너무 시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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