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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슬픈 이들을 위하여

헬라어 엠마우스는 히브리어 하맛과 관련 있다. 온천이란 뜻이다. 이곳의 물이 유명했기 때문이다. 쉐펠라 지역의 요지에 자리잡은 이곳은 구약에서는 단 지파에게 배분된 땅이고, 유다 마카비의 승전고가 울린 전투지이며, 신약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글로바와 다른 제자를 만나 떡을 떼주신 곳이다,  주후 3세기 로마 황제는 이곳을 승리의 도시 니코폴리스로 개명했고, 5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거대한 바실리카와 주교관이 세워졌다. 7세기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침략으로 무너진 도시는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재건된다. 하지만 살라딘 이후 다시 파괴돼 순례자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6세기 마다바 지도에 표기된 니코폴리스, 그런데 마다바 지도가 발견된 게 1897년이다.

 

1878년 베들레헴의 성마리아(Mariam Baouardy) 수녀가 꿈을 꾸었다. 일종의 종교적 엑스터시였다. 거기에서 엠마오를 보았다나 보다. 이를 근거로 당시 성마리아 수녀가 속한 베들레헴 칼멜회가 현재의 부지를 사들였다. 성마리아 수녀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멜키트 그릭 카톨릭 교회의 수녀로서는 유일하게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같은 팔레스타인 출신이지만 로마 카톨릭 수녀인 마리아 가타스와 함께였다. 카톨릭의 시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stigmata 와 함께 기적을 일으켰는가 여부다. 사실 성마리아 수녀의 인생은 인간적으로 보자면 '기구하다'가 절로 나온다.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 이슬람 국가의 기독교 여성이 어떻게 이렇게 간절한 종교적 열심을 지침없이 유지할 수 있었을까, 부르심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생애다. 엠마오의 장소를 환상 가운데 알아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마리아는 사망한다. 

 

성마리아 수녀의 예언에 반응한 이도 여성이었다. Berthe Dartigaux, 베들레헴 칼멜회에 재정을 보내 부지를 사게 했다.

 

현재 사이트를 위탁 관리 중인 the beatitudes, 복자들의 공동체 경당. 1930년대 베들레헴 칼멜회 Betharram 신부들에 의해 건설됐다. 1차세계대전 중 오토만 군대가 점령해 사이트를 파괴했고 1917년 영국군이 주둔했다. 1948년 이후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 비무장지대가 되자 UN 대표부가 거주했다. 2층 발코니는 훗날 개조된 것이다.

 

아마도 이 사이트에서 가장 의미있는 발굴물은 이오니아 양식의 캐피털에 있는 사마리아 비문이다. Baruk shemo leolam 그의 이름이 영원히 송축될지어다.

 

캐피털의 반대편은 아이에 테오스, 한 분 하나님이다. 즉 한 분 하나님, 그의 이름이 영원히 송축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걸 왜 서로 다른 언어로 쓴 걸까? 그리고 두 언어가 공히 사용된 이 칼럼 머리의 연대는 6세기 비잔틴 시대가 맞는 걸까?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Spirit, the city of Christians is beautiful! 

 

교통의 요지이자 아랍어 지명 암와스를 보존하고 있는 이 사이트의 최대 약점은 예루살렘으로부터 거리다. 우리말 번역은 엠마오가 25리 떨어져 있다는 신박한 표현을 선보인다. 40킬로미터다.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됐다. σταδίους ἑξήκοντα 60스타디아이다. 7마일 약 12킬로다. 히브리어는 60큐빗으로 옮긴다. 이 거리가 중요한 건 금요일 명절로부터 3일 후 예수님의 유대인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걷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제자는 명절 기간 예루살렘에 들어왔고 돌아가지 못했다.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최대치가 30스타디아다. 그러니까 만약 모짜 정도(30스타디아)가 안식일에 예루살렘까지 왕복 가능한 경계였다. 엠마오라는 지명을 굳이 표기하는 것은 그 경계를 넘어섰음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경계라도 가능성에 포함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럼 우리말 번역은 뭔가? 사본에 따라 (일백 그리고)라는 표현이 60 앞에 들어 있다. 즉 60스타디아가 아니라 160스타디아라는 것이다. 그럼 30킬로다. 너무 멀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쨌든 25리는 이도저도 아니다. 

 

이렇게 해서 엠마오의 예상지는 덕분에 네 군데나 된다. 

 

하지만 엠마오는 고고학 공부를 위해 가는 곳은 아니다. 성지 고고학에서 프랑스쪽 인사들은 한결같이 좀 이상하다. 클레르몽-가노가 관여한 사이트치고 지금껏 학문적 열기를 이어가는 곳은 거의 없다. 엠마오는 차라리 종교적인 야성을 위해 가는 곳이다. 예수의 활동이 제도로 굳어진 성지에서 예수의 흔적을 심장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니코폴리스도 아부고쉬도 마찬가지다. 거기 세워진 교회들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유대인들이 말도 안 된다고 비웃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믿는 자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 이유를 몇 년에 걸쳐 생각해 왔는데, 아마도 그곳이 슬픈 이들을 위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오해일지언정, 예수님의 제자들은 버림받았다. 기대는 꺾였고 그분은 돌아가셨다. 희망없는 비루한 세상에서 글로바와 다른 제자는 마지못해 길을 걷고 있었다. 걸어야 할 길이므로. 예수님이 왜 하필 이 두 사람을 골라 동행하셨을까. 그들이 제자들의 어떤 점을 대변하는 걸까. 그들은 슬픈 자들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요즘' 되고 있는 일로 인해 그들은 슬펐다. 그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사리분별력을 발휘해 상당한 정보를 분석해 보았다. 꽤나 식자층을 자인했을 이들이 아무리 고심해도 맞아들어가지 않는 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해한다. 얼마나 어이가 없겠나. 그런데 그분을 아는 길은 그분밖에 없다. 이 세상이 살 만하고 엠마오로 내려갈 일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슬픈 자들이 향하는 곳, 그 길에 예수님이 나타나 스스로 변증하시고 기어이 자신의 손과 발을 보이시는 것이다. 아무 희망 없이 막막한 길을 걷던 제자들은 날이 저물자 쉬어갈 생각을 한다. 빵으로 요기도 한다. 그러자 힘이 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예수님이 그들의 슬픔을 바꿔주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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