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를 방문할 때 개인적인 감상을 늘어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객관적'으로 전달할 것들이 많아서다. 하지만 이곳은 더욱 말을 아끼게 된다. 객관이 애매해서다. 이스라엘 고고학 사이트에서 가장 이상한 곳이다. 물론 그 이상함이 이곳의 소중함을 배가한다.
비아 마리스의 전략 요충지 므깃도에서 왜 이렇게 뭐가 안 나올까. 이곳의 고고학 발굴 역사는 얼추 120년이다. 고트립 슈마허, 락펠러 재단이 후원한 시카고 대학 팀, 이갈 야딘과 베냐민 마자르의 히브리 대학 팀, 이스라엘 핀켈슈타인과 텔아비브 대학 팀으로 이어지는 코디네이터 명단만도 super hot하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그마나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현재 텔에서 볼 수 있는 종려나무 데켈들이다. 1920년대 시카고 대학에서 발굴 작업을 할 때 이집트에서 온 감독이 잠시 쉬면서 앉아서 대추열매를 몇 개 먹었고, 그런 다음 어깨 너머 구덩이에 던진 결과인 것이다. 이걸 부끄럽게 여길 필요는 없겠지.
4000년의 stratigraphy 층서학은 결코 시시한 게 아니다. 하지만 텔 므깃도의 하이라이트인 청동기 가나안 시대 Temple 현장에서 bedrock이 드러난 것을 보고도 찬탄하는 경우는 드물다. 신석기부터 페르시아 시대까지를 한 트렌치 안에서 볼 수 있고 적어도 30개의 settlement가 구별된다. 특히 청동기와 철기, 소위 성서 시대의 지층도 포함돼 있다. 그것도 radiocarbon dating,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로 뒷받침된 정밀화된 사이트다. 이걸 납득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건, 아쉬운 현실이다.
이 템플 단지의 엄청난 크기는 이곳 거주민들의 복잡성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대규모의 자본과 노동력이 동원됐다. 원래 언덕이 충분히 크지 않았기 때문에 템플 단지를 지탱하기 위해 인공 플랫폼이 건설됐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 이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도시 행정력을 입증하는 증거가 또 있을까? 이곳에서 어떤 제사 활동이 이루어졌는지 확실한 증거는 없다. 물과 곡물과 관련된 다산 숭배가 초기 청동기 시대의 표준이었다. 이곳도 그와 같을까? 증거는 없다. 또 므깃도는 이집트의 통치를 받았지만 '세계화'되었다기보다, 일차적으로 지역적 발전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렇다면 므깃도와 이스르엘 계곡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할까?
시대별 템플 구조, 저걸 이해하려면 30분도 부족하다.
성서 시대를 전망하는 최고의 사이트인데도, 성경의 기록과 직접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게 없으니 설명은 지루하다. 대개 방문 시간이 점심 무렵이라 뜨겁기도 하다. 또 한때 관심을 끌었던 사이트는 새로운 고고학 발굴을 위해 제거된 상태다. 역사가 길다는 것은 이런 단점이 있다.
므깃도 통치자의 지위를 입증하는 상아 상자와 아마르나 문서에서 발견된 AMELU(man of the city) 이름 Biridiya. 그가 애굽의 바로에게 보낸 편지가 7통이나 남아 있다. 한 편지에서는 나블루스의 통치자 Labaya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주전 1130년, 이집트 20왕조가 가나안에서 물러나는 시기의 층에서 람세스 6세 관련 유물이 나왔다. 청동상 기초. 멸망군주의 허세로 유명한 그 파라오다.
고트립 슈마허가 발견한 사자 인장, 고대 히브리어는 여로보암의 종 쉐마에 속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쉐마 Seal이라고 불린다. 여로보암 1세나 2세 시대 궁정의 고위 관리였을 것이다. 이것은 복제품이다.
1908년 슈마허는 오토만 술탄에게 원본을 넘겼다. 그 이후 사라졌고 아직도 찾지 못했다.
므깃도에서 주전 10세기 솔로몬 시대 것으로 여겨지는 성벽과 마구간은 최종적으로 9세기로 보고 있다. 핀켈슈타인이 아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궁금하다.
텔 므깃도 방문의 마지막 단계는 워터 시스템이다. 그나마 즐거운 순간이다. 바깥에 있는 물 근원을 끌어오기 위해 bedrock을 쪼개고 수직 샤프트를 37미터, 수평으로 터널을 70미터를 팠고, 물이 잘 흐르도록 기울기까지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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