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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하쪼르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다. כִּי-חָצוֹר לְפָנִים--הִיא, רֹאשׁ כָּל-הַמַּמְלָכוֹת הָאֵלֶּה

이것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하솔이 가나안의 머리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하솔을 취하고 그 왕 야빈을 칼날로 쳐죽였다. 손자병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비슷한 원리가 동양에도 있다. 대가리를 쳐야 끝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가지 않아 기억이 희미해 찾아보았다. 거기 내리쬐던 그 태양만 선명하다. 이런 편견들이 무섭다. 흥미를 거두어가고 호기심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언제쯤 각성하고 이곳의 매력을 되살릴 수 있을까.

 

 

이 호리병 늘어진 것처럼 생긴 지도를 백 번쯤 그렸을까. 90번 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매번 어수선하다. 아니 저기가 왜 이 방향에서 보이지? 이유는 도로가 커브이기 때문이다. 고고학에 가장 긴요한 재능은 공간감각이다. 

 

전체 80헥타르, 약 800두남, 가나안 하부도시(enclosure)와 이스라엘 상부도시(acropolis)가 나란히 있다. 가나안 시대 인구가 15000명에 이르는 대도시였다. 이스라엘 시대 인구는 10분의 1 정도였다. 한번은 가나안과 이스라엘의 의미를 설명하느라 주차장 근처에서 30분을 허비한 적도 있다. 이곳의 고고학 발굴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그래서 생략. 

 

이 게이트가 므깃도인지 브엘세바인지 단인지 모를 수도 있다. 이미지로 암기하기 때문이다. 북쪽을 찾아 south gate와 north gate로 구분한다. 그래야 casemate wall도 보인다. 솔로몬의 6 chamber gate. 이갈 야딘은 이를 근거로 게젤의 성문을 찾았다.

 

가나안 궁전의 파괴 지층. 지금은 훨씬 잘 다듬어져 있다. 주전 13세기 여호수아에 의한 파괴 지층이라는 입장이다. 가나안 시대 하솔은 북쪽 특히 유프라테스 강 유역과 긴밀한 관계였다. 주전 18세기 마리 문서에는 하솔 왕의 이름 Ibni-Addu도 등장한다. 이브니, 야빈이라는 이름은 하솔 왕가의 공식 명칭이었을 것이다. 여호수아 이후 드보라 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하솔 왕이 야빈이다. 

 

Ibni Addu, King of Hazor. 하솔과 관련된 8개의 타블렛을 발견했지만 in situ가 아니다. 고고학 선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조금 더 늦게 발굴이 진행됐으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다. 어쨌든 가나안의 천둥 신 Hadad와 만신전의 머리 El, 달의 신 Erah 등이 드러났다. 비셈어 신 Purratpurta, Purridi도 있다. 이갈 야딘도 벤 토르 교수도 하솔의 문서 보관소를 목표로 했다. 마리나 엘아마르나의 흔적만으로도 이 도시는 후기 청동기까지 독보적인 도시였다. 아카이브가 있을 만했다. 

 

주전 9세기. 아합 왕의 수로다. 하솔은 주전 9세기 거의 두 배 가량 확장되는데 이때 워터시스템과 성채가 세워졌다. 전체 수직 샤프트 45미터이다.

저기를 내려가 보고 싶은 사람의 MBTI는 ESTJ. 

 

사이트에서 바마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왜냐하면 중요한 유물은 모두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성채의 입구를 장식했던 Palm tree capitals은 최근 예루살렘 남부 궁전에서도 발견됐다. 이스라엘 타워와 성채는 티글랏빌레셀 3세에 의해 파괴됐다. 하솔 신당의 마쩨바 tomb stones와 사자(?) 동상들도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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