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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논 세갈의 신장 기증

이스라엘은 피로한 나라다. 매사에 논란이 따른다. 남의 일이라 우와 재밌네, 신날 때도 있다. 근데 논란을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이스라엘 언론은 거칠고 원색적이다. 우리나라 뉴스의 턱없이 고운 아나운싱도 문제지만, 패널들의 고래고래 삿대질도 오래 보고 있기는 어렵다. 매사가 그렇듯 이런 일에 재능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남의 말을 꼬투리 삼아 헛점을 공략해 열받는 워딩으로 인격 모독까지 곁들이는 일에 탁월한 언론인으로 아미트 세갈 만한 사람이 없다. 세갈의 정치 뉴스 시간에는 스피커를 끄는 게 낫다. 더할 나위 없이 격 떨어진 게 이스라엘 정치인지, 언론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렇다치고. 

 

다티 레우미 (종교 시오니스트)는 사이즈를 줄인 앙증맞은 키파를 선호한다. 간장 종지만한 뭐가 떠오르지만, 그런 걸로 사람을 공격하면 야비한 거다. 아미트 세갈은 언론인이라는 유리한 입장을 이용해 본인의 극우 성향을 발휘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 번 선거 때 아랍 정당을 "정당 지원금을 받는 테러 조직"이라고 공격해 소송당했다. 끝까지 발언을 철회하지 않고 소신 넘치는 언론인의 표본인 양 굴어서 저쪽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모았다. 곧 정치를 하겠지. 언제쯤 그날이 와서 그가 언론인으로서 누리는 '자유'가 걷어지게 될까. 그 묘미를 아는데 쉽게 떠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저쪽은 아미트 세갈 정도는 성인군자로 보이는 바닥이라.  

 

아미트 세갈의 아버지 하가이 세갈은 유대인 테러리스트다. 1984년 4월 27일 샤바크(이스라엘 버전의 FBI)에 체포된 Jewish Underground, 히브리어로 마흐테레트(מחתרת) 소속의 25명 중 한 명이다. 이 조직의 목표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황금돔의 폭파(?!)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 테러 활동에 대한 보복이다. 이들의 폭탄 공격으로 나블루스와 라말라의 시장들이 다리를 잃었다 (당시 수제 폭탄 수준은 가까이에서 터져 목표물의 신체 훼손을 야기하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마흐테레트의 영적 지도자 하임 드루크만 랍비는 드보라의 노래를 인용해 이 공격을 찬양했다. 

כֵּן יֹאבְדוּ כָל-אוֹיְבֶיךָ 당신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라.

 

이들은 1930년대 결성된 유대인 군사조직 에쩰이나 레히와 궤적을 같이 한다. 벤구리온이 이끄는 하가나가 영국과 협력으로 독립을 이루려는 게 어이 털리는 일이라며, 영국군 장교에 대한 암살 테러 및 시설물 폭파를 감행하던 조직들이다. 특히 레히는 조직의 리더인 Yair Stern을 따르는 Stern Gang으로 통한다. 하필 Stern은 별이라는 뜻이다. 유대인 반란사에서 야곱의 별은 발람의 예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무시무시한 메타포다.

영국이 성서의 땅 '에레츠 이스라엘'에서 동쪽을 떼어내 요르단을 만들었을 때(약속을 어긴 게 워낙 많지만), 벤구리온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며 이를 받아들인다. 이에 반발한 에쩰과 레히는 시편 137:5를 슬로건으로 가져온다 (레히 로고의...선명한 오른손을 보라). 

אִם-אֶשְׁכָּחֵךְ יְרוּשָׁלִָם תִּשְׁכַּח יְמִינִי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자기 재주를) 잊으리라. 

 

마흐테레트의 목표가 워낙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테러를 저지르고도 만만치않은 지지를 받았다. 1985년 좌파언론 Haaretz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조차 이스라엘 국민의 52.6%가 재판 없이 이들을 즉시 석방하는 데 찬성했다. 이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단지 아랍 테러리스트에게 복수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들의 사상적 구심체 구쉬 에무님의 종교 이념이 대단히 정교하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땅은 전능자께서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에게 주셨다. 아랍인은 차치하고 기독교인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나?
  • 1967년 6일 전쟁으로 웨스트뱅크는 이스라엘 국가 영토로 회복됐는데, 이는 분명한 전능자의 뜻이다. 따라서 유대인은 웨스트뱅크에 정착해야 한다. 웨스트뱅크가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라는 건 1993년 오슬로 협정의 결과이다. 70년대 이스라엘 정부는 웨스트뱅크에 대해 "결정하지 않는 것을 결정한다."
  •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의 재앙은 이 땅을 제대로 정복하는 데 실패한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전능자의 심판이다.  
  • 1979년 이집트와의 평화를 시작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 추진됐는데, 이것은 용납될 수 없으므로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팔레스타인에게 국가 수립을 위한 영토를 내주려는 이츠하크 라빈 총리를 암살하고, 웨스트뱅크에 정착촌을 확장하고, 가자 철수를 막기 위해 소요를 일으켰다. 

라빈 총리 암살과 가자 철수 작전은 이 나라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게 힘들다는 걸 입증했다. 실제로 구쉬 카티프 출신 남성의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 등의 질환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런 일을 집단으로 겪는다는 건 이 시대의 불행이다. 

 

아무튼 하가이 세갈은 형량의 1/3에 해당하는 3년 실형 이후에 석방됐다. 마흐테레트가 테러 조직에서 정치적 결사체로 변신해 권력을 쥐게 되는 과정은 2017년 다큐로 제작됐다.  

 

하가이 세갈이 감옥에 갈 때 아들 아미트는 고작 2살이었다. 두살 위의 형이 있는데 아르논 세갈이다. 두 형제에게 유대인 테러리스트 아버지의 존재가 어땠을지 상상에 맡긴다. 현재 아르논은 아버지가 편집장인 마코르 리숀을 비롯한 우파 매체에 글을 쓰고 정치에도 입문한 상태다. 3차 성전 건립 위원인가 그렇다.

 

다티 레우미는 논란을 통해 유명세를 얻는 경향이 있는데 대개 그런 유명세가 국회에 입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건 일반화고 진심이야 본인만 알 일이다. 7월 10일 월요일 이스라엘 병원 Beilinson과 Soroka에서 신장 이식 릴레이가 있었다. 세 명이 기증했고, 교차 기증의 결과 적합자 세 명의 환자를 살렸다. 그중 한명이 아르논 세갈인데, 자식이 8명이나 되는 40대 가장이 신장 이식을 하다니 대단한 일이 맞다. 하지만 종교 시오니즘 정당 명단에서 9위로 아깝게 국회 진출을 놓쳤으니 그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오래 전부터 신장을 기증하고 싶어서, 몇 년 전에 양식을 작성했는데 지체되었고, 마침내 작년부터 절차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장 기증의 유일한 조건은 유대인에게만 이식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종 개념이 들어가면 단일민족인 우리나라는 콘텍스트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신장 이식을 하면서 "전라도 사람만 제외하고" 했다고 쳐보라. 무슨 일이 일어나나. 

 

인터넷이 바로 터졌다. 인종주의에 민감한 좌파 정치인 제하바 갈온은 이렇게 썼다.  
"גם שתי כליות לא מספיקות כדי לנקות את הרעל שזורם לו בגוף, אבל מה זה כבר משנה" 두 개 신장도 그의 몸에 흐르는 독을 청소하기에 충분치 않은 것 같지만 이제 그게 무슨 상관이람.

 

생명의 가치 앞에서 종교, 인종, 성별에 차이를 두자는 의견이 용납될 수 있나. 그런데 아르논 세갈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기증자는 자신의 장기를 누구에게 기증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장기는 매매 가능성 때문에 보건당국이 깊게 관여한다. 가족이나 친척이 알아서 딱딱 맞게 해주는 기증은 흔한 일이 아니다. 외국인 기증자 특히 교차 기부가 대세다. 환자 가족이 장기를 기부한 대가로 환자가 기증을 받는 구조다. 교차 기부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국제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타적 기증이라면 이때 기증자의 출신을 선택할 수도 있긴 하다. 

 

이번 교차 이식에 관여한 신장 기부 기관은 '생명의 선물'(מתנת חיים)이다. 창시자 라헬 헤베르는 2023년 Israel Prize  공로상을 받았다. 하레디이다. 이 점이 왜 중요하냐면, 유대인은 부활을 믿는 종교라 장기 기증에 애초에 거부감이 있다. 죽은 그 상태로 부활해야 하는데 장기 하나가 빠지면 어떻게 되겠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터부시되던 장기 이식을,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할라하보다 우선한다는 피쿠아흐 네페쉬 פיקוח נפש 로 전환했기 때문에 하레딤의 장기 기부 활동이 대단한 거다. 

 

 

논란이 커지자 라헬 헤베르는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다. "생명의 선물"을 통한 장기 기증자는 누구에게 장기를 기증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그런 요청을 조건화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사람이 선물을 주는데, 선물 줄 사람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냔다.

 

세상은 요지경이기 때문에 우파 기증자는 좌파나 LGBT 환자에게 장기를 주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결정도 존중해야 하나? 라헬 헤베르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이미 돈 있는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가 집중된 현실을 꼬집을 수 있다. 모두의 생명이 동일하게 가치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우리는 자본의 시대를 살고 있다. 더 가치있게 여겨지고 우선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종교와 인종과 성별에 따라 생명에 차등을 두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 명시적으로? 생명은 귀중하고 이를 구하는 건 최고의 가치라는 입바른 소리나 그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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