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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DanKal Red line

지난 8월 18일, 엘룰 월 초하루, 텔아비브와 구쉬 단 지역의 경전철 레드 라인이 드디어 개통식을 가졌다. 1973년 골다 메이르 총리 때 시작된 사업이 50년 희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나머지 회선들의 완성은 여전히 기약이 없지만 이게 어딘가. 8월의 마지막 두 주는 여름 캠프도 없는 무더위 속 휴가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한가한 틈에 트램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텔아비브 사비도르 기차역으로 간다. 텔아비브는 일반 기차역이 네 개가 있는데, 하하가나-샬롬-사비도르-텔아비브 대학 순이다. 사비도르 기차역 옆에는 큰 도시 간 버스 터미널도 있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오가는 480번 버스가 여기 있다. 나트바그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텔아비브 방향으로 오려면 이 역에서 내리는 게 좋다. 모든 게 여기 있다.

기차역 건너편이 경전철 레드 라인 역이다. 기차역 이름은 사비도르인데, 레드 라인 역 이름은 아를로조로브다. 1920년대 활동한 시오니스트로 1933년 텔아비브 거리를 걷다가 같은 유대인에게 암살된 인물이다. 구쉬 단 지역을 경전철로 연결한다고 해서 이 라인들을 단칼DanKal이라고 부른다. Kal이 경전철의 경, 가볍다는 뜻이다. 

인구가 많지 않아서 역도 단출하다. 입구는 대개 하나다. 왼쪽에 보이는 기계가 무인 판매기다. 이스라엘의 대중교통 카드를 '라브-카브'라고 하는데, 판매기에서 5세켈을 주고 살 수 있다. 카드를 사면 일정 금액을 충전하면 된다. 이스라엘 버스는 현금을 일체 받지 않는다. 큐알 카드를 찍어 지불하거나 라비 카브를 사용해야 한다. 기차역이지만 인간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대인 창구는 없다. 

라브 카브 찍고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가면 바로 승강장이다. 단출하다니까. 자전거나 스쿠터קורקינט ('킥보드'는 감탄스런 조형어지만 콩글리쉬라 안 통한다)도 탑승에 어려움이 없다.

당연히 유모차도 가능하다. 출산율 낮은 대한민국은 왜 길거리에 유모차가 안 보이는지 생각 좀 해 보길. 아빠 혼자 유모차 케어하는 일이 왜 없는지도. 

1892년 에레츠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욥바 항구에 내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단축하기 위해 증기 기차를 완공한다. 최초의 기차역이라고 해서 타하나 리쇼나תחנה ראשונה The First Station이라고 한다. 텔아비브에도, 예루살렘에도 같은 이름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당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레일 자체가 아주 좁게 만들어졌다. 1920년대 영국이 전쟁 준비하느라 레일을 개조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 최선이었을 뿐, 현대에 들어와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기차 노선은 변경되었고 최초의 기차역은 관광 엔터 공간으로 변신했다. 텔아비브의 타하나 리쇼나는 텔아비브와 욥바의 경계 지점으로 R3의 남부 종착역 엘리펠렛 역이 자리한다. 플랫폼을 두 배로 많이 만들었고 덕분에 아주 비좁아보인다. 아마도 그래서 지붕 개방형으로 만든 모양인데, 저러다 뭔일 나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이 역에서 내려 남부 텔아비브의 명소들을 두루 다닐 수 있다. 

 

엘리펠렛은 가까운 동네 이름으로 My God is amazing이란 뜻이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11명의 아들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역은 글쎄, 화장실이 없다. 너무 타이트해서 화장실 들어갈 공간도 확보를 못했나 보다. 역 바깥이 종합 엔터 컴플렉스라 화장실 건물이 크게 있긴 한데 좀 멀다. 모르는 사람은 헤매느라 울컥할 수도 있다.   

 

 

 

텔아비브 네베 쩨덱

올해 마지막 휴일, 선거 공휴일을 맞아 어디든 가야 했다. 이상하지, 선거 때는 도시에 가고 싶어진다. 특히 텔아비브의 높은 투표율을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로만 아브라흐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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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바=야포=자파의 악명 높은 '예루살렘 대로' 입구다.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선 것도 놀랍지만 드디어 지하 구간이 끝나고 지상으로 올라선 트램에게 박수를 쳐줄 뻔했다. 공사가 끝난 자파의 도시 풍경이 낯설기도 하고, 얼마나 물가가 치솟을지 걱정도 되고, 여기 아파트 구입한 보람찬 친구도 부럽고 그렇다.  

서울로 치면 상암경기장 역이다. 7시가 가까워지면 노란 저지들이 쏟아진다. 얄라 마카비. 마카비 텔아비브와 하포엘 텔아비브 더비 경기가 열리면 경찰 배치도 늘어야 할 거다. 여기서 내리면 자파의 플리마켓으로 연결된다. 고물상이나 가구 장식 구경을 할 수 있고 레스토랑도 많아서 시간 보내기 좋다. 벼룩시장에서 더 들어가면, 텔 자파, 베드로가 고넬료의 방문을 앞두고 환상을 본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다. 

 

 

욥바의 하루

"신약 성경에서 욥바는 베드로와 관련돼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베드로는 병든 자를 고치며 복음을 증거했어요." 유대인들에게 신약 성경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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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청평에 들어와 있다던데. 이스라엘에 일찌감치 진출한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다. 유대인도 워낙 종교성이 높아서 우주인의 존재를 믿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동안은 공사중 도로 상황에 크게 눈에 띄지 않았는데, 경전철 바로 옆에 떡하니 자리잡고 랜드마크가 돼 버렸다. 텔아비브 쪽으로 로스칠드 대로 변에도 센터가 하나 더 있다. 돈 많은 조직인 건 분명해 보인다.  

 

자파에서 손꼽히는 베지테리언 맛집 미켈란젤로. 살인적인 월세 인상에도 7년 넘게 버티는 중이다. 올해 크라우드 펀드를 받아 개조 공사중이다. 메뉴도 많이 달라질 거란다.  

경전철 트랙에서 한 블럭만 들어가면 마을 풍경이 있다. 자파의 명물 Al Siksik 모스크와 사빌. 2008년에 미래를 내다보고 레노베이션을 했다. 15년이나 기다려야 할 줄은 몰랐겠지만. 자파 벼룩시장에 있다가 점심 시간 하잔이 알라 아크바르를 부르면 이곳을 보게 된다.

 

예루살렘 대로 한가운데 피쿠스 나무들이 웅장하다. 자파 입구에서 내려 한참 걸어도 좋다. 살로메 역과 블룸필드 역까지 자파에서 가깝고, 아랍 도시 풍경을 보려면 아를리흐 역이나 이스코브 역 (여기가 영화 '아자미'의 배경)으로 가면 된다. 분위기상 좀 험악한 건 감수해야 한다. 경전철의 지상 역들은 따로 입구가 없기 때문에, 저기 보이는 빨간색 기계에 '라브 카브'를 대고 Validate를 해야 한다. 저거 안 하고 그냥 탔다가 검사원한테 걸리면 벌금이 180셰켈이다. 지금은 홍보 기간이라 곳곳에 안내원들이 서서 불편한 점을 물어보고 도와준다.  

 

텔아비브 야포 남쪽으로는 그럴 줄은 알았지만 볼게 너무 없다. 오죽하면 역 이름이 하시딤 창시자 바알쉠토브הבעש"ט다. 마흐로젯(목걸이란 뜻), 하아쯔마웃(독립이란 뜻), 로스칠드, 자보틴스키, 발푸어, 비냐민, 요세프탈, 카프테트 베노벰베르(11월 29일, UN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승인한 날), 헤아말(노동이란 뜻) 역을 지났다. 봤지만 본 게 없고, 안 봤지만 본 것 같다.

 

마지막 역은 하코메미웃הקוממיות 주권, 독립이란 뜻이다. 뒤늦게 놓인 경전철은 도시 설계의 맹점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승객이 없는 거다. 근처에 이제 막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한쪽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홀론 공동묘지다. 경전철이 놓여도 도시 확장이 안 되는 거다. 뭐 알아서들 하시겠지만. 여기가 대략 텔아비브에서 1시간 거리이다. 공동묘지 근처에 차를 세우고 트램을 이용해 텔아비브에 들어가는 걸 고려중이다. 아무튼 이왕 다니게 됐으니 명물이 되시거라.    

 

그나저나, 한참이나 수준 미달인 이스라엘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10년 동안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개악을 거듭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로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이스라엘은 자동차 제조 회사가 없고 전 차량 수입이다.) 정부는 자동차 관련해 엄청난 세금 수입을 얻는다. 자동차 사는 데 세금, 매년 검사 인준으로 세금, 몇 킬로미터 이상 주행 시 세금, 자동차 팔 때 세금, 하다 못해 운전면허증 갱신할 때까지 야금야금 뜯어간다. 교통 약자를 위한 정책은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 개선방안은 흉내나 내고 그냥 자동차 끌고 다니라고 권하는 사회다. 아참, 샤밧 안식일에 대중교통이 못 다니니 어쨌든 개인 차량은 필히 유지해야 한다.

 

이스라엘 메트로폴리스 텔아비브 (인구 40만밖에 불과하지만) 지역을 지상 트램으로 연결하는 레드 라인은 2013년 완공 계획이었다. 아무리 늦어져도 10년이나 미뤄지는 국가 사업은 왜 그럴까. 얼마나 공명정대하고 번듯하게 공사가 미뤄졌는지 책임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계약서 작성하고 벌인 공사에서 지정된 완공 날짜를 어기면 벌금이라도 내지 않나. 10년이 미뤄지는 동안 세금이 얼마나 줄줄 샜으며, 책임을 회피하는 대가로 얼마가 오갔을까. 이 나라 국민은 아니지만 따박따박 세금 뜯기는 입장에서 속터진다. 

 

게다가 이스라엘 정부는 레드 라인조차 샤밧 안식일과 명절 운행은 안 하겠다는 방침이다. 세속인과 종교인 간의 현상유지법 때문에 그래야 한단다. 1947년 교통 상황이 지금하고 같나. 하레딤 도시인 브네이 브락은 지하로 뚫었기 때문에 경전철이 다니는 줄도 모를 텐데, 왜 그래야 하나. 수십 년 만에 철로가 완공됐는데 이 지역 고속도로 정체는 그대로다. 예루살렘 하레딤은 경전철이 결국 자기 동네를 말아먹을 거라며 공사 현장에 몰래 들어가 기물을 부수기까지 한다. 

 

2023년 8월 30일 현재, DanKal 소유주 테벨 사는 신호 오작동으로 텔아비브 경전철이 잠정 폐쇄됐다고 밝혔다. 열심히 고치는 중이지만 언제 속개될지는 모르겠단다. 딱 열흘 운행하고 서 버린 참 딱한 경전철. 히브리어는 경전철의 Kal과 오작동의 TaKaLa가 같은 어근이다. 참나 이리 오묘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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