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 출신의 템플러는 TEMPLE, 즉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이들이었다. 십자군 시대 템플 기사단은 Templar를 쓰고, 독일 메시아닉 집단은 Templer로 쓰지만 결국 같은 단어다. '성전 사람들'이다.
18세기 유럽은 '위대한 선교의 세기'를 보내고 각종 메시아적 환상으로 가득했다. 이에 메시아의 땅으로 가서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크리스토퍼 호프만과 게오르그 하르덱이 시작한 이 운동은 독일어로 Tempelgesellschaft, 일종의 '사회 공동체' 특징을 갖는다. 1854년 추상같은 루터교회로부터 핍박을 당한 끝에 결국 추방당한다. 이들은 1868년 하이파에 최초의 정착지를 마련하게 된다. 독일 남부 시골 출신인 이들은 자기네 동네 축소판 같은 마을을 지었다. 한가운데 교회가 있고 동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Community hall을 마련하고, 일렬로 주욱 집들이 늘어선 것이다.
1868 Haifa
1869 Jaffa
1871 Sarona
1873 Jerusalem Emek Rephaim
1902 Wilhelma (Bnei Atarot)
1906 Bethlehem of the Galilee
1907 Waldheim (Alonei Abba)
*Valhalla in Neveh Tzedek (Cafe Lorenz)
하이파 템플러들은 농사 기구, 건축, 마차 운송, 관광업 같은 일에 종사했고, 자파 템플러들은 미국 선교사들이 결국 포기하고 떠나버린 콜로나에서 함께 재앙을 처리했다. 사로나는 달랐다. 이름부터가 성경에 나오는 샤론이다. חֲבַצֶּלֶת הַשָּׁרוֹן, שׁוֹשַׁנַּת הָעֲמָקִי (아가 2:1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백합화), 히브리어 지식은 없었으므로 샤론이 꽃 이름인지, 땅 이름인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곳은 비옥한 쿠르카르 언덕이 Musrara 강(현재 아얄론)과 접해 있기에, 물이 충분하고, 땅이 넉넉한 데다, 자파에서 공급되는 오렌지의 유통 시장으로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사로나 템플러들은 본격 양조장도 만들고 와인을 생산한다. 와인? 맥주의 나라가? 당시 에레츠이스라엘에서는 와인이 팔렸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샤밧 키두쉬를 해야 하고, 기독교인은 성찬식을 가져야 하니, 오토만 제국과 무슬림을 배제하고도 판로는 충분했다.
당시 와인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동굴처럼 깊은 곳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굴이다. 먼저 1948년 아랍 연맹과 국제전이 시작되기 직전, 유대인 무장조직 하가나는 영국의 경비행기를 훔쳐 해체해 가져와 이곳에 몰래 숨긴다. 그게 어떻게 몰래 가능했는지 각종 전설이 전해진다. 당시 공군이 없던 이스라엘은 전쟁에 대비해 비행기를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고, 영국의 로열 에어본에서 훈련받은 유대인도 자원 입대한 상태였다. 그런데 비행기가 없었다. 이스라엘 측에 전투기를 판매할 나라는 없었다. 이스라엘 공군의 최초 전투 비행은 1948년 5월 29일이고 그것도 실패에 가깝다. 그때까지 장난감 같긴 해도 이 훔친 경비행기가 군수품을 실어나르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이 잡혀 이스라엘 땅으로 몰래 밀수된다. 그의 재판은 이듬해 4월에 가서야 열린다. 그때까지 아이히만은 이 동굴에 갇혀 있었다. 공개될 처지가 아니었니까.
이렇게 길게 얘기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곳 역사가 너무 굴곡지다.
사로나 Comnunity hall의 머릿돌이다. 시편 99편 4절은 영어도, 우리말도, 왕이신 주님이 공의를 세우시고 야곱에게 이를 행하게 하신다는 내용으로 옮긴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의번역은 특이하다.
Im Reich dieses Königs hat man das Recht lieb.
이 왕의 나라에서 사람은 정의를 사랑한다.
내가 뭐라고 루터의 권위에 도전하겠냐만은 '야곱'을 뺀 건 찝찝하다. 이 시편의 별명인 König ist der Herr가 아랍어로 써 있다. 아랍어 캘리그라프는 대단히 수준 높아서 일반인들은 장식체에 익숙하지 않다. 아랍인 친구가 못 읽고 있기에 가르쳐주었더니, 난리가 났다. 응, 그냥 우리는 다 아는 수가 있어.
1914년부터 시작된 유럽의 전쟁은 에레츠이스라엘의 독일 템플러들에게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 앞 세대와 다르게 이미 이들은 메시아가 올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답답한 나라에 그닥 미련이 없었을 수도 있다. 원수같은 영국이 전쟁에 승리하고 아예 이곳을 접수하지 않았나. 독일 애국주의, 군국주의가 번진다. 1933년 나치가 부상하자 사로나 야채 시장에는 하켄크로이츠, 나치의 스와스티카가 보란 듯이 휘날린다. 유대인들은 사로나 시장에 대한 보이콧을 결정한다. 유대인기구 의장인 벤구리온은 꼴도 보기 싫은 사로나 이름을 바꿔버리고 키리야, Village로 부르기 시작한다. 무식한 기독교인들(이단이에요), 히브리어도 모르는 주제에, 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영국은 독일의 어윈 롬멜의 군대가 북아프리카를 통해 접근하자, 적국 시민인 템플러들을 호주로 추방한다. 끝까지 템플러 자산을 지키고 있던 사로나 지도자 Gotthilf Wagner는 1946년 3월 유대인 테러단체 레히 요원들에 의해 암살된다.
아직도 한가한 얘기를 꺼낼 타이밍이 못 된다.
1952년 이스라엘은 독일과 소위 전후 보상 문제를 협상한다. 히브리어는 보상을 뜻하는 피쭈임פיצויים 대신, 지불을 뜻하는 쉴루밈השילומים을 고집한다. 나치가 한 짓이 어떻게 보상이 되나. 그때 몰수한 유대인의 가산이나 값으로 쳐서 지불하라는 것이다. 물론 결사 반대한 이들도 많았다. 므나헴 베긴은 텔아비브 한복판의 리쿠드 본부 건물에 님헤 에트 헤헤르파(수치를 지우자)를 내걸고 벤구리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전후 독일도 형편은 좋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현금을 거의 받을 수 없었다. 대신 독일은 자신들의 기계, 공장, 산업 등을 이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자국의 동결된 자산을 넘겨준다. 이스라엘은 하이파, 텔아비브-야포, 예루살렘에서 템플러가 개척한 금싸라기 땅과 건물을 인수받는다. 레노베이션을 거쳐 지금 다 남아 있다. 왜 이 마을들을 부셔버릴 생각을 안 했을까. 텔아비브 사로나는 레노베이션 당시, 도로와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집 자체를 통째로 뒤로 미는 공사까지 했다. 저가의 신축과 고가의 보존 사이에 정책 대결로 한참이나 시끄러웠지만 정부는 단호했다. 신생 국가는 자신의 나라가 어떻게 조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우고 잊어버리는 간편함 대신, 보존해서 기억하는 불편함을 선택한 것이다. 피해자들에 푼돈 좀 쥐어주고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 얘기 그만하자는 극동의 어느 나라는 참으로 근시안인 거다. 그 푼돈 받고 남의 책임을 혼자 덮어주겠다는 나라의 꼴불견도 이상하긴 마찬가지고.
재개발을 거쳐 사로나 독일식 집들은 상점으로 변신했다. 그리고도 남은 금싸라기 땅에 럭셔리 주거공간이 들어서고 그 자투리 공간에 푸드코트를 만들었다.
사로나 마켓의 상징이 artichoke인 건, '시장'의 히브리어 발음 슈크 때문이다.
어김없는 테러의 기억. 2016년 6월 정장을 빼입은 사촌 관계의 두 아랍인이 1층에 있는 막스 브레너 초콜렛 카페에 총기를 난사해 4명이 사망했다. 그래서 한동안 이곳을 못 갔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면 이런 모습이다. 바로 앞에 교토 베이가 있다.
닭고기 샐러드는 저래 보여도 꽤 맛있다. 배도 많이 부르고. 그래도 언제 저걸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모두 다 아는 바로 그 맛이다.
저녁에는 푸드코트 전체가 바가 된다. 사로나 마켓이 초반에 부진했다. 이 비싼 음식을 먹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없는 동네기 때문이다. 의외로 코로나 때 살아났다. 배달 음식도 성행이고, 사람 부딪칠 일 없이 밥만 먹으러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앞에 있는 카플란 거리에서 사법개혁안 반대 데모를 샤밧마다 하는데, 문 닫은 곳이 없다. 오히려 데모 끝나고 밥 먹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장사할 맛 난단다.
드디어 이스라엘도 버블티의 세계에 들어섰다. 중국어가 Pearl Milktea, 일본어가 Tapiokatea인데, 히브리어가 어떻게 조어를 할지 궁금했다. 그냥 버블티를 음역하기도 하지만 תה בועות 거품 차란다.ㅋㅋ 타이거 타피오카 빅 사이즈가 29 NIS이다.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거 한 잔 만드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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