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예루살렘 아인슈타인 박물관이 지난 6월 13일 기공식을 가졌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기바트 람 사프라 캠퍼스, 공사 기간은 2년이다. 모처럼 방학의 여유를 즐기려는데 공사로 시끌시끌해서 알게 됐다. 아니, 아직껏 없었나?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모든 저술과 지적 재산권을 히브리 대학에 물려준 이 대학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 예산에 6400만 NIS를 투입한다. 그중 2/3는 히브리대학에 배정된 예산이다. 요즘 쪼들리는 게 분명한 히대의 위상을 국제 무대에서 강화하고,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며, 수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일 것으로 기대한단다. 굳이? 아인슈타인의 친필 문서를 본다고 E=mc²이 더 잘 이해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걸 직접 눈으로 본다는 건 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감동이 다르긴 하겠지.
2,900제곱미터, 3층 건물로, 아인슈타인의 프린스턴 시절 사무실과 개인 도서관을 재건할 예정이다. 아인슈타인이 기증한 유서깊은 문서들을 적절하게 보존하기 위해 기후 제어 시스템과 특수 조명 시스템도 들어간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다가 나는 이상한 데 꽂혔는데, 미국 이민사에서 독일계 유대인들의 역할 때문이다. 카톨릭 감독이 아니었다면 이들의 유대성이 좀 더 드러나지 않았을까. 유대인 과학자들이 결정적으로 풀어낸 원자폭탄 기술은 50년대 소련으로 넘어가는데, 거기에는 유대인 스파이들이 개입한다. 그저 돈 때문에 돈 게 아니라, 미국만이 독점하면 세계 평화를 저해하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 부인도 공산당원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시오니스트라는 게 모순으로 느껴지는 평화주의자였다.
아인슈타인은 1921년 12월 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노벨상을 받게 되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Honororium, 간단히 ex gratia 역시 엄청 뛴다. 학자적 고상함을 청렴결백 안빈낙도 쯤으로 이해하는 우리나라는 이 비용에 대단히 인색하다.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하고. 역시나 세계적인 화학자로 이런 잇점을 잘 아는 훗날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 Chaim Weizman은 아인슈타인에게 히브리 대학교 설립을 위한 기금 마련 캠페인을 제안한다. 떠들썩한 명성에서도, 베를린의 정치 상황에서도 탈출할 필요가 있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초대장 가운데 아인슈타인은 우선 일본을 택해 떠난다. 적어도 12주를 망망대해에 떠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마르세유 항을 출발해 일본, 중국, 스리랑카, 팔레스타인, 스페인을 도는 5개월 반의 여정이었다. 꼼꼼한 학자는 이 여행 기간 일기를 썼다. 1955년 사망한 "자랑스러운 시오니스트"는 상대성 이론의 원본 문서를 포함하여 약 80,000개 문서가 포함된 개인 아카이브를 히브리 대학교에 물려주었다. 아주 일부가 말년을 품위있게 보내게 해준 프린스턴 대학에 이양됐는데, 일기가 여기 포함됐다. 이 일기는 2018년에 가서야 출간됐는데, 아마도 과학자의 인도주의자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먼 인종차별적 발언들 때문일 것이다. 1923년 1월 중국의 상태를 미개하다고 보지 않은 서양인이 있기는 했냐만은.
히대라면 아인슈타인 일기를 지체없이 출간할 수 있었을까. 인종차별이 사실은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다. 그걸 인정이나 했으면 싶다.
아무튼 이때 아인슈타인이 받은 막대한 honororium은 히대의 설립 기금이 된다. 일본에 고맙다 해야 하나?
아무리 좋게 말해도 아인슈타인은 정치적 시온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옹호했으며, 자신을 그 노력의 일환으로 소비하는 것을 허락했다. 1949년 라디오 연설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건설에 대해 “기쁨과 감탄”을 표현하면서 신생 국가를 환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유럽, 특히 독일계 유대인으로서 이상적인 과학자의 순진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간직했다. 1952년 바이츠만 대통령이 죽자 벤구리온은 아인슈타인에게 이스라엘 2대 대통령 직을 제안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상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뭐, 원자폭탄에 대해서도 이런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누군들 프린스턴을 떠나고 싶을까?
그나저나 아인슈타인 박물관의 공사 대금이 예산에 있다고, 이 돈을 전부 정부가 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예산에 포함시킨 거다. 호제 무그라비가 돈을 댈 에정이다. 시리아 출신으로 앤디 워홀의 콜렉터로 유명하고, 이스라엘 아트 뮤지엄에 가장 관대한 렌트를 주선하는 분이다. 돈의 출처는, 다들 짐작하는 그대로다.
우리나라에서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건물로는 용산에 있는 HDC 본사가 있다. 검찰의 압수 수색 장면에 나오던데, 딱 봐도 돈 많이 주고 설계 받은 건물 같아 일부러 찾아봤었다. 송도에 있는 롯데마트도 리베스킨트의 작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는 회사들이 비싼 설계 받아 건물 짓는 게 무슨 문제겠나. 그래도 다른 나라 기업들은 돈 벌어서 대중에게 공공 건물로 돌려줄 생각을 한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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