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올드시티에는 예수님의 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가 있다. 이곳을 걷는 사람들이 어떤 심정이든 이 길은 세속적이다. 거룩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종교적 색깔이 입혀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하다 못해 유대교의 성지 통곡의 벽만 가도, 종교성이 응집돼 있는 걸 느끼는데, 여긴 그냥 시장통이다.
비아 돌로로사, 예루살렘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프란체스칸 수사들의 비아 돌로로사 procession이 있다. 프로세션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걷는다는 뜻이다. 걷는 행위를 비효율적인 구시대 유물로 여기는 시대에 성지를 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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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자리잡고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길을 비장하게 지나는 기독교인들을 멍하니 쳐다본다. 왜 저래, 하는 표정도 없지 않다. 나는 이 길을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걸었고, 걷고 있으며, 걷게 될 것이다. 가끔은 성경 속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네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이 여기 어울리지 않을 때다. 그런 감정을 억눌러야 할 때 멘탈이 나가기도 한다. 성지를 잘 알고 다양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어서, 상품화된 현장에 미련이 없는 분들을 만나면, 딴 길을 제안한다. 말씀을 들고 원하는 곳에 가서 십자가의 길을 이야기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Alternative Via Dolorosa라는 표현도 들린다. 굳이 타이틀이 필요할까.
겟세마네, 올리브 짜는 틀이란 뜻이다. 이 정원에서 시작한다. 감람산 입구에는 수많은 필그림들이 몰려와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바위에 손을 얹기 위해 줄을 서는 프란체스칸 만국 교회가 있다. 그 돌이 예수님이 기대 기도하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거기 손을 얹으면 내면이 끓어오른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할지라도 그분의 고통에 무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에서 나와 올리브나무 정원을 빠져나올 때, 이게 뭔가 싶을 때가 있다. 안 그럴 때도 있다. 그래도 그 건너편에 있는 이 정원에서 복음서를 읽고 나오면 한결 낫다. 그리스 정교회의 겟세마네 정원이다.
성전 동쪽에 있는 기드론 계곡, 암흑이란 뜻이다.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신 예수님이 그 밤에 걸으신 길은 암흑 자체였으니. 고대 무덤을 지나간다. 압살롬과 스가랴와 헤실 자손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Church of St. Peter in Galicantu. 교회 지붕 위에 닭이 서 있다. 나는 그를 몰라요.
겟세마네에서 체포된 예수님은 우선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간다. 공회가 열린다. 약식 재판이다. 증언은 일치하지 않았다. 침묵하던 예수님은 "네가 그냐"라는 대제장의 질문에 그렇다 대답하신다. 이로써 신성모독죄가 성립한다. 그 와중에 베드로는 어린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닭울음소리를 듣는다. 공회는 다음날 새벽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 넘겨준다. 일단 여기까지만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 공회, 산헤드린의 모임 장소는 성전 안에 있다. 산헤드린 회원은 그게 직업이라 절기와 안식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모여 일처리를 했다. 왜 대제사장 집에서 한밤중에 모이나? 너무 다급해서? 그날 밤 예수님 체포를 결의한 이들이 공회라면 시간은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었다.
- 70명의 공회원을 이끄는 의장, 히브리어로 나씨נשיא는 대제사장이 아니다. 예수님 시대 제사장 계급은 부패한 매관매직의 대상으로 존경받는 자들이 아니다. 대제사장 일에 공회가 굳이?
- 공회가 예수님을 넘겨준 빌라도가 있던 장소는 어디였을까?
명절에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다고 한다. 백성이 풀어주고 싶어한 사람은 바라바다. 마태복음 사본에 "예수 바라바"로도 나온다. 예수와 바라바의 평행은 불가피하다. 바라바는 바르+아바,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이다.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 예수님은 마찬가지 인자이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그때 그 무리는 인간의 아들을 살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저버린 것이다.
군인들이 브라이도리온praetorium에 들어가 군대를 모은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자색 옷을 입고 가시관을 쓰고 유대인의 왕이여 경례를 받았다. 로마 군인들은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밷고 꿇어 절하며 희롱했다. 끌고 나갈 때는 자색 옷을 벗겼다. 군인들의 이 행위는 레퍼런스가 있다. 옥타비아누스는 주전 27년 공화정 로마를 제정으로 바꾸면서 자기 이름도 아우구스투스로 바꾼다. majestic 위대한 자라는 뜻이다. 로마 황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마다 만신전에 가서 자색 옷을 걸치고 관을 쓰고 신의 아들이라는 환호를 받았다. 마태복음에는 십자가를 지켜보던 백부장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로마 군인이 로마 황제들의 거짓된 등극과 자가당착을 신물나도록 지켜봤기 때문에 의미심장한 신앙고백이다. 비록 십자가에 달려 죄인의 신분으로 죽었지만 예수에게 일어난 신의 징표가 그의 눈을 열어주었고 마침내 새로운 믿음을 발견하게 했다. 그래서 가톨릭은 이 백부장의 회심을 중시한다. 훗날 순교했기에 Holy Martyr Longinu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그나저나 Praetorium은 Praetor(=leader)의 거주지다. 프라이토르는 로마 공화정의 공복의 명칭으로 지금으로 하면 consul 정도가 된다. 빌라도가 그렇게 높은 신분이었나? 유다는 그다지 대단한 나라가 아니어서 높은 신분의 프라이토르가 굳이 이 시골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색은 갖추었겠지만. 로마 총독의 Praetorium이 있었다면 가이사랴에 있는 게 맞다. 거기가 로마 총독의 행정부니까. 예루살렘에는 로마 군인들이 머무르는 안토니아 요새가 있었다 (모형에서 빨간 원). 여기를 Praetorium으로 보고 비아 돌로로사의 시작점으로 보는 게 전통적인 견해다. 2차 성벽이라 불리는 헤롯이 세운 성벽에는 정원 문 שער גינת(파란 원)이 있어 출입을 했고, 그래서 골고다, 해골(십자가 표시)의 위치는 성 밖이다.
하지만 Praetorium이 군인 요새에 있다는 건 이상하다.
헤롯 궁전 바깥으로 성 밖으로 나가는 숨은 문이 있었으리라는 가설이 있다. Simeon Gibson의 의견이다. 영국 출신 고고학자인데 동예루살렘에 있는 W.F. 올브라이트 고고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이분은 주로 hidden 아니면 lost가 주제라 성전도 딴 자리, 골고다도 딴 자리, 세례 요한 동굴도 딴 자리 일색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도 대개 딴 자리에서 일어났으리라 주장하는데, 그런 선입견과 상관없이 이 자리에 앉아 헤롯 궁전을 올려다보는 기분은 묘하다. 이곳은 헤롯대왕의 궁전 담장 바깥이 분명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 소름돋게 조용한데다, 그늘도 넉넉하다. 명절을 앞두고 인구 포화 상태인 예루살렘에서 성난 군중을 모아두고 재판을 할 만한 장소로도 이만치 적당한 곳이 없다. 게다가 빌라도는 미친 군중에 질려버려서 여러 번 자리를 떴다. 궁전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에 이보다 편리할 수가 없다.
야포 게이트를 통해 시장으로 들어서면 저 첨탑과 돔을 갖춘 으리으리한 교회가 나온다. 1898년 만성절, 즉 종교개혁 기념일에 맞춰 봉헌된 Lutheran Church of the Redeemer다. 독일 제국의 카이저가 봉헌식에 와서 기념했을 정도다. 저 교회 지하에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데 2차 성전 시대 쿼리의 흔적이 있다. 아마도 저 근처가 (있었다면) 2차 성벽의 게이트다. 저곳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성묘교회, 예수님 갈보리다. 종탑 오른쪽에 빼꼼히 보이는 돔이 성묘교회의 코풀라다.
입구 오른쪽에 있는 푸른 돔 아래가 갈보리다. 바깥 문은 폐쇄됐고 안에서만 들어가게 되어 있다. 2023년 여름 로마 사피엔자 대학의 고고학 발굴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중이라 요즘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다. 그냥 여기 서서 저 갈보리를 본다. 그늘이 생기면 앉아서 성경도 읽는다. 멀리서 십자가를 바라보던 여인들의 심정이다.
되도록 이곳을 들른다. 아르메니아 지구에 있는 시리아 정교회인데, 이들 전통에 따르면 여기가 마가의 다락방이다. 기도 시간이 되면 한두 명 모여 기도를 하는데 아람어다. 예수님의 언어가 이렇겠거니 하면서 듣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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