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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로쉬 하샤나 신학 논쟁

이스라엘 정부가 지난 일요일 (9월 10일) 우크라이나 우만으로 여행할 순례자들을 위한 재정 지원을 승인했다. 400만 셰켈, 백만 달러다. 정부가 자금 지출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하다니,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그보다 이를 계기로 네타냐후 총리가 자기 내각에 앉은 종교인들과 각을 세우게 됐다. 나라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이성과 합리성이 현저히 부족한 이들을 견디는 게 총리로서도 한계일 거다. 

 

매년 로쉬 하샤나 명절에 수만 명의 종교인들이 1810년 사망한 하시딤 지도자 브레슬레브의 랍비 나흐만의 무덤에서 기도하기 위해 우만으로 향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우크라이나의 전쟁에도 굴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열심인 이유가 순전히 종교심이 강해서일까. 워낙 특이한 남성들만의 활동이라 해괴한 루머가 많이 돈다. 우크라이나의 매춘 관광이야 워낙 유명하니까.  

 

이스라엘 시민은 자유롭게 여행할 권리가 있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통치 행위란 매우 복잡해서, 개인적인 책임이든 뭐든 자기 국민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을 제공해야 한다. 코로나 때도, 전쟁 때도 자유 여행자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히 돕지 못하는 정부부터 비난했다. 자기 복 받겠다고 위험한 나라에 가서 스스로 국경에 갇혀 있더라도,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국가 행정력과 세금을 쏟아부어야 나라 꼴이 더 우스워지지 않는다. 작년에도 여행 경고가 있었지만 20,000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만에서 로쉬 하샤나를 보내다 낭패를 당했다. 

 

 

로쉬 하샤나, 브레슬레브

로쉬 하샤나를 보낸 이스라엘이 일단 일상으로 복귀했다. 곧 욤키푸르, 대속죄일이 다가오지만 그때까지 회사도 가고, 학교도 가야 한다. 그런데 수백 명의 이스라엘 사람이 우크라이나-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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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우만 지역에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20명 이상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에는 미사일 공격에 대한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도움을 청하는 이스라엘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관광객은 고사하고 자국민을 위한 대피소도 충분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은 전쟁하느라 죽을 지경인데, 무덤 관광을 갈 테니 보호해 달라는 게 말같이나 들리겠나. 

 

정부가 지원을 결정한 백만 달러는 그러거나 말거나 우만을 가겠다는 이스라엘 시민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이다. 미사일 공격을 피했다 해도, 우크라이나의 영공은 폐쇄되었으니 폴란드 육로로 국경을 넘어야 한다. 국경에 사람이 몰리면 추운 날씨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을 위한 의료 및 기타 지원 비용은 훨씬 더 많이 지출될 수도 있다. 모든 문제점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지만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피해, 누가 총리라도 육두문자 터질 상황이다.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인사라면 정부가 권장할 만하지 않은 여행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결정에 반대하는 게 옳다. 30명이 넘는 내각에서 반대 표를 던진 유일한 인물이 있다. 오리트 스트룩. “친애하는 유대인들이여, 우만으로 가지 마십시오! 목숨을 걸지 마세요! 예배할 곳은 충분합니다.” 나블루스 근처의 불법 정착촌 행진 같은 걸 주도하던 극우파 여성 국회의원이지만, 그나마 존경할 뻔했다. 

 

어쨌든 총리는 모두를 위한 총리여야 하고, 이스라엘 정도 되는 나라에서 백만 불이야 푼돈이다. 그래도 요즘 속이 답답한 일이 많은 네탄야후 총리가 기어이 이렇게 말했다. "유럽에서 신은 우리를 언제나 보호하진 않으셨다. הקב"ה לא תמיד הגן עלינו" 당연히 홀로코스트를 말한 것이다. 

 

네탄야후 총리의 이 발언이 하레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종교 정당 샤스는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다”는 반박 성명을 냈다. 많은 강대한 민족들이 사라졌지만 이스라엘 민족만이 수천년 동안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민족이며, 하나님의 보호를 위한 조건은 토라를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란다. 신명기 사관이네. 하레딤 언론인들도 일제히 하나님을 향해 저속하고 무례한 발언을 했다며 네탄야후 총리를 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하레딤들의 반시오니즘 정서가 튀어나왔다. 

 

국회 부의장으로 아구다트 이스라엘 정당 소속의 하시디, 이스라엘 아이흘레르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권력의 우상 숭배, 세속 정권의 저속함과 동화로부터 이스라엘 땅을 구원하신 지 한 세기가 넘었다. 독일군이 이스라엘 땅을 정복하려는 것을 막은 것은 시오니스트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기적이다. 시오니스트와 저항군은 유럽의 홀로코스트를 막지 못했다. 시온니스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소외시켰다. 시오니스트 지도부의 일부는 나치에 협력했고, 유배된 유대인들을 거래하고 팔았으며, 유대인의 '구출 계획'을 거부하고 방해했다. 자신들의 실패와 범죄에 대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침묵해야 한다. 토라를 존중하는 사람들(=하시딤)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은 오래 전에 중동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도 이게 맞는 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다 이런 분들이 맹신을 넘어 뚜렷한 소신을 밝힌 덕분이다. 이에 대해 야드바쉠은 물론, World Zionist Organization까지 나서서 비난했다. 특히 WZO는 아이흘레르가 속한 벨츠 하시딤의 지도자를 나치로부터 구출해 탈출시킨 게 자신들이라며 배은망덕에 분개했다. 1943년 벨츠 하시딤 지도자 Rabbi Aharon Rokeach는 폴란드를 거쳐 헝가리로 잠입했는데, 시오니즘의 가장 맹렬한 반대자 중 하나인 그를 구하기 위해 WZO가 인증서를 발행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로케아흐 형제는 1944년 이스라엘 땅에 도착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하시딕 회당을 짓는 수준에 이르렀다. WZO는 다름 아닌 시오니즘의 넉넉한 자금 지원 덕분에 홀로코스트 이후 거의 멸망한 이스라엘에서 토라의 세계가 번창하고 있다고까지 쐐기를 박았다.

 

어쩌겠나. 가장 큰 적이 다름아닌 자기 내부에 있는 것도 이스라엘의 운명이다. 

 

네탄야후 총리는 이 지긋지긋한 나라에 마음이 뜬 건지 자꾸만 밖으로 돈다. 다음주 일요일 밤 실리콘밸리 방문과 UN 총회 참석차 미국을 가는데, 목요일 저녁으로 예정된 자기 연설을 굳이 금요일 오전으로 미루었다. 목요일 밤에 비행기를 타야 금요일 오전에 이스라엘 땅에 도착해 거룩한 샤밧을 지킬 수 있다. 동행하게 될 기자단한테는 돌아오는 비행기편은 알아서들 하라고 통보했다나 보다. 연설이 끝나면 파리인지 로마인지로 가서 5성급 호텔에 머물 계획이다. 기자단이 UN 취재 보이콧을 결의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의 천여 명 지성인 집단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게 네탄야후를 만나지 말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팝콘 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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