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때문인지 이스라엘 여행 유투버 채널이 자꾸 뜬다. 천편일률적으로 길거리 음식 컨텐츠다. 먹을 건 못 참지. 하지만 대개 이런 컨텐츠는 너무 성의가 없다. 내가 이 나라를 높게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요인 중 하나가 식도락 문화인데, 너무들 한다. 그래도 며칠 다녀가는 여행자가 이것저것 먹어보고 애써 정보를 남기려는 태도는 높이 사고 있다. 내가 못 견디겠는 건, 그렇게 사먹는 길거리 음식 대부분 바가지라는 점이다.
남의 나라 여행하면서 바가지 안 쓰기는 쉽지 않다. 중국 등 동아시아나,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나, 영어가 안 통하는 발칸 반도에 가면 그러려니 해야 한다. 그 나라 언어를 조금만 구사해도 어이없는 바가지는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바가지라는 건 해당 국가의 언어나 문화를 배우기 위해 투자하지 않은 대가일 수 있다. 인간은 양심이나 친절같은 개인적인 가치를 관광객처럼 한번 보고 끝날 인연에게 함부로 베풀지 않는다. 길거리 음식 같은 기초적인 일상에 접근하면서 바가지 쓰는 게 불쾌하면 정가 나와 있는 레스토랑 가면 된다.
하지만 내가 거주하는 나라가, 관광객에게 길거리 음식 가격을, 몇 푼 되지도 않는 걸로 거짓말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괴롭다. 그리고 이 나라 특성상 그게 특정 민족으로 집중되는 것 같아서도 언짢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한쪽 사람들이 유독 더 하니까, 민족적 특징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인종주의가 발생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하고 하는 말은 아니다. 이런 건 사회가 성숙하면, 아니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절로 고쳐질 일이다. 어차피 내가 아랍 퀴진에 품고 있는 존경심은, 바가지 몇 푼 뜯겼다고 좌우될 성질이 아니다. 하지만 안 그런 사람들은 뭐 저래, 실망할 거다. 그래서 말인데, 관광객이 조금만 머리를 써도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빵 조각 하나에 몇 십 셰켈을 내라면, 그렇게 터무니 없이 비쌀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대처하면 좋겠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욥바문에는 언제나 이런 매대가 있다. 파는 사람이 다를 수는 있어도 빵 종류는 안 바뀐다. 이게 예루살렘 아랍인들의 대표적인 끼니 대용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게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다운 식사는 요리 전담 인사(=아내)가 있는 집에서만 가능하다. 밖에서는 이런 걸로 때워야 한다. 아랍인들 입장에서는 대충 때우고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 관광객에게 이보다 합리적인 식사가 없다. 실제로 하나만 먹어도 한 끼 칼로리로 너끈하다.
(박스 안에 있는 건 키베, 튀긴 음식이다. 튀긴 걸 저렇게 파는데 무슨 수로 먹나 싶겠지만, 일단 드셔 보시라. 세계관이 바뀐다. 하지만 키베는 다음 기회에.)
긴 타원형 빵을 Jerusalem Bagle, 영어로만 말해도 바가지 안 쓴다.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명사가 형용사 앞으로 온다. 그래서 히브리어는 베이글 예루샬미בייגל ירושלמי가 되는데 아랍인이 히브리어를 듣고 좋아할 리는 없다. 아랍어는 베이글이 카아크(약간 침밷기 전 목청 다듬는 소리), 예루살렘의 형용사 형태가 알쿠치, 합해서 좀 굴리면 '카아쿨 쿠치'다. 얼마냐는 '비캄'이다. 카아쿨 쿠치 비캄, 하면 당신은 이 아랍 상인의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 하나는 '와히드'다. 가격은 정가를 모르겠다. 3개에 10세켈 정도 냈는데, 아랍인은 더 싸게 산다.
우리식 단팥빵처럼 생긴 건 Date bread지만, 이 영어는 안 통한다. 아랍어로 이런 사이즈의 빵이 마아룩이다. 브리오쉬, 즉 계란과 버터를 넣고 오래 치대서 만드는 빵 종류다. 큰 사이즈의 마아룩도 있지만 대략 햄버거 사이즈다. 마아룩은 속이 들어가는데 따메르, 대추열매date 스프레드다. 역시 형용사형을 뒤로 돌리면 마아룩 쿠따므리, 발음이 된다. 우리의 단팥빵 정서 그대로다. 먹으면 달긴 해도 목이 막히고 열량이 듬뿍이라 배가 부르다. 관광객 상대로 하다 보니 모양이나 색깔이 점점 예뻐지고 있다. 이것도 정가는 없지만 관광객한테 와히드에 10셰켈 부르면 나쁘지 않다.
유대인은 대추열매 스프레드는 제과 영역으로 가져와 마아물מעמול 쿠키로 즐긴다. 대추열매 속을 넣고 둘둘 말아 자르는 스타일도 있고, 예쁜 틀에 넣에 홈을 내는 방식도 있다. 피스타치오를 넣어 변형시키기도 한다. 아랍 디저트와는 방향성이 다르다.
'카아쿨 쿠치'나 '마아룩 쿠따므리'나 원래 깨를 무지하게 뿌렸다. 들고 다니며 먹기에 깨는 성가시다. 카아쿨 쿠치는 반죽 자체를 깨 더미에 놓고 모양을 내고 나서 구우니 깨든 뭐든 잘 붙어 있는 편이다. 마아룩 쿠따므리는 색깔을 예쁘게 내려고 달걀물을 엄청 발라서 표면을 누렇게 하는 중이다.
깨를 포기 못하겠다면 시미트가 있다. 터키 식 베이글이라고 불리는 같은 범주의 빵이다. 검은 깨를 뿌리는 경우도 많다. 마아룩 쿠따므리 모양인데 검은 깨를 뿌린 경우, 자기가 좋아하는 걸 다 때려부은 셈이다.
이런 매대를 우리말로는 노점상이라고 불러야 하겠지. 예루살렘 시청은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경내에서 이뤄지는 경제활동에 매우 민감하다. 노점상이라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올드시티 안에서는 일반 아랍 상점들과 달리 유월절 하메츠 제거법 같은 이스라엘 법도 따라야 한다. 세금을 안 낼 거라는 오해는 거둬 두시라. 이스라엘에서 그런 혜택은 하레딤만 받는다.
예후다 아미하이의 시 중에, tourists라는 시가 있다. 아미하이가 관찰한 관광객은, 로마 시대의 유적지 다윗 타워를 탐험하느라 그 아래 앉아 자기 식구 생계를 위해 물건을 팔고 있는 이를 외면한다. 상인들이 구차함을 무릅쓰고 하나 사 달라고 말을 거는 걸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혐오한다. 이유가 있을 거다. 히브리어나 아랍어에는 호객 행위,라는 표현 자체가 없다. סוחר מכריז על מרכולתו가 그나마 비슷한데, 자기 상품을 과시한다는 뜻이다. 애초에 장사로 먹고살아온 두 민족은 매매 행위를 폄하하거나, 상인의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무시하는 우리의 계급성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나저나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아랍 디저트가 빠지면 안 된다. 로마 황제가 닦은 카르도 길, 즉 다마스커스 게이트에서 아랍 쿼터를 따라 걷다 보면 자파르 스위츠, 영어를 발견하게 된다. 영어 병기라니, 올드시티에서 이 정도로 선구안이기가 쉽지 않다. 덕분에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든다. 그렇게 붐비는 데서 기다리며 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아랍 디저트는 큰 가게가 백 번 낫다. 하지만 자파르 크나페는 그저 유명한 큰 가게 정도가 아니다. 1951년 무함마드 자파르가 문을 연 이래 테디 콜렉 예루살렘 시장이나 모세 다얀 국방부 장관 등이 다녀간 집이다. 어차피 크나페는 나블루스가 최고지만, 예루살렘에 이 가게가 있어줘서 체면을 차릴 수 있다.
저것은 순전히 설탕만으로 된, 설탕이 녹아 내린 설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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