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ed

2023 욤 키푸르

나는 욤 키푸르, 대속죄일을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즐거움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나라 전체가 샤바톤, 멈춘다는 건 엄청난 경험이기 때문이다. 세속인 동네에 살기 때문에 금식을 안 하는 사람도 많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TV조차 지직거리는 이 특이한 날은 모처럼 외부 자극을 끊어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다. 

 

하지만 올해 욤 키푸르 저녁, 종교성이 최고로 치솟는 그 시간, 이스라엘 전국이 떠들썩했다. 공공장소에서 남녀 좌석 분리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개혁파 회당조차 남녀 좌석 분리를 결정했다. 이곳은 정식 회당도 아니고 욤 키푸르 같은 날만큼이라도 유대교의 영적 탐구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데, 그랬다. 종교화הדתה를 위해 투쟁하는 정통파들이 야금야금 들어온 곳들은 이런 식으로 뒤집히기 마련이다. 많은 수더분한 성격의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드는 이런 일에 대해, 싫은 사람은 안 가면 그만, 이라는 입장이다. 개혁파 혹은 좌파는 이런 나이브함 때문에 망한 것이다. 두고봐라. 머지 않아 이스라엘에서도 성인 여성들의 헤드기어כיסוי ראש가 여성들을 위한 관습이라는 말과 함께 대세가 될 것이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들의 논의에 낄 수도 없고 타종교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무작정 비판하지도 않겠지만, 관찰자 입장에서 개탄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텔아비브 디젠고프 광장은 이스라엘 전국에서 가장 세속적인 장소 중 하나다. 올해 욤 키푸르에 이곳에서 기도회를 갖겠다고 신청한 조직이 있다. 로쉬 예후디ראש יהודי 조직이다. 원래 이 자리에서 유대교 절기마다 세속인들을 겨냥해 행사를 갖는 쯔팟트 거리의 회당도 이들의 한 지점이다. 포교 개념을 그렇게나 멸시하는 종교치고는 썩 잘 따라한다. 

 

 

텔아비브의 로쉬 하샤나

올해 로쉬 하샤나는 너무 길다. 할 만큼 했다. 불현듯 일찍 눈이 떠져 새벽같이 텔아비브에 갔다. 왜냐하면 텔아비브의 풍경만이 명절의 찌든 일상에서 나를 건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젠고프

jy4kids.tistory.com

 

로쉬 예후디가 원래 집회 신청을 한 곳은 마사릭 광장이었다. 큰길에서 들어가 있어 잘 보이지도 않고, 일단 이름도 체코 초대 대통령 이름이다. 유대인에게 친절하긴 했지만 욤 키푸르에 체코 대통령 이름의 광장에 모이는 건 좀 아니지. 그래서 텔아비브 초대 시장인 디젠고프 이름을 딴 광장으로 장소 변경 신청을 했다. 이에 대해 텔아비브 시청이 집회 불가를 내렸는데 로쉬 예후디는 이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바가츠, 대법원에 항소를 제기했다. 회당도 디젠고프 광장만큼이나 공공 장소가 아니냐면서. 욤 키푸르를 고작 일주일 남겨두었을 시점이었다. 

 

이 항소를 바가츠는 만장일치로 기각했는데, 그 판결문은 히브리어를 공부한 보람이 있는 명문이다. 

הזכות לחופש הדת והמצפון לשם קיום תפילה יהודית אורתודוקסית ביום הקדוש ביותר תחת כיפת שמי המדינה, או שמא כפייה דתית והפרדה מגדרית במרחב הציבורי? הסוגיה שלפנינו היא אחד הביטויים של המחלוקות המשסעות את החברה הישראלית

국가 하늘 아래에서 가장 성스러운 날, 정통파 유대교 기도를 드리기 위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누릴 권리인가, 아니면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 억압과 성차별인가?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이스라엘 사회를 분열시키는 논쟁적 표현 중 하나이다.

 

עמותת ראש יהודי קיבלה את ההיתר המקורי לתפילה בכיכר מסריק ובו נכתב, בין היתר, כי 'לא תתקיים הפרדה מגדרית באמצעים פיזיים'. גם כשביקשה לשנות את המיקום נאמר לה אותו הדבר. למרות זאת העתירה הוגשה רק שבוע לפני כיפור

로쉬 예후디 조직이 얻은 마사릭 광장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원래의 허가는 '물리적 수단에 의한 성별 분리가 없을 것'이라는 조건 하에서였다. 장소를 바꿔 달라는 이들의 요청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불과 욤 키푸르 일주일 전에 항소가 제출되었다.

 

המשפט הישראלי מכיר באוטונומיה הנתונה לרשות המקומית להפעיל את סמכותה החוקית בהתאם לאופי תושביה ולצביון המקומי. לעיריית תל

אביב מתחם של שיקול דעת, ובמסגרת סמכויותיה ובמסגרת שיקול דעתה היא רשאית להתחשב בצביון העיר ותושביה

이스라엘 법은 주민과 지역의 성격에 따라 법적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지방 당국에 부여된 자율성을 인정한다. 텔아비브 지방자치단체는 재량권을 갖고 있으며, 권한 범위나 재량 범위 내에서 도시와 주민의 성격을 고려할 권리가 있다. (텔아비브 45만 인구 중에 95%가 세속인이다). 

 

ברירת המחדל היא איסור הפרדה מגדרית במרחב הציבורי ואין כמו כיכר דיזנגוף להמחיש מרחב ציבורי מהו. ככלל, הפרדה מגדרית במרחב הציבורי מתקשרת בתודעה לאיסור אפליה, לפגיעה בשוויון ולהדרת נשים במרחב הציבורי. לא דין מחיצה בבית כנסת למחיצה ברשות הרבים, כך שאין לקבל טענת המערערת כי 'בית כנסת אינו פחות מרחב ציבורי מאשר כיכר דיזנגוף

디폴트는 공공장소에서 성별 분리를 금지하는 것이며, 공공장소가 무엇인지 설명하기에 디젠고프 광장만큼 좋은 곳도 없다. 일반적으로 공적 영역에서의 성별 분리는 차별 금지, 평등 침해,  공공장소에서 여성 배제와 연관돼 있다. 회당이 분리대를 설치할 권리는 공적 영역에 대한 권리가 아니므로 회당이 디젠고프 광장만큼이나 공공장소라는 항소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טובה הסכמה רחבה מפסק דין. טוב היה אילו מאבקים מהסוג הזה לא היו מתנהלים תחת כותרות עקרוניות כל-כך. טוב היה אילו לא נדרשנו למחלוקת שהובאה לפתחנו, אך משהובאה, איננו יכולים להתנצל מחובתנו לדון ולפסוק. לנוכח סד-הזמנים הדוחק איננו מתיימרים לצלול לעומקם של מלוא הסוגיות. פסק דיננו מושתת על מספר עקרונות של טענות סף וכללי יסוד, וטענות המערערים שמורות להם לעתיד

 

(대중의) 폭넓은 합의가 (법원의) 판결보다 낫다. 너무나 원칙적인 주제를 두고 이런 다툼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 앞에 제출된 이런 식의 논쟁이 요구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출되었으므로 토론하고 판결해야 하는 우리의 의무에 변명은 없다. 촉박한 일정을 고려해 우리가 모든 문제를 깊이 파고든 척은 하지 않겠다. 우리의 판결은 임계값 청구와 기본 법의 여러 원칙들을 기반으로 하며 항소인의 청구는 미래를 위해 유보된다.

 

로쉬 예후디, 유대인 수장이란 뜻의 조직 이름을 רוש יהודי 유대인의 독초라 부른다. 

 

판결이 이런데도 로쉬 예후디 측은 칸막이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배짱일까. 시위대가 쳐들어와 이들을 저지하느라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결국 로쉬 예후디 종교인들은 눈물을 뿌리며 장소를 옮겼다. 종교인 여성들은 여지없이 남자들과 따로 앉아 기도하는 게 자신들이 바라는 바라고 주장했다. 권리는 자신이 느끼는 편의가 아니다.   

 

텔아비브의 키카르 비마, 키카르 하메디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북부 텔아비브, 이스라엘 전체에서 가장 세속적인 동네인 Naot Afka 운동장에서 입구를 막고 남녀 분리 기도회가 열리자 주민들이 신고를 했고, 지자체 검열팀이 현장에 도착해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의자를 접었다.

욥바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로쉬 예후디의 지도자 이스라엘 자이라는 이런 행동이 이스라엘의 종교화הדתה, 탈세속화를 위한 길이라는 걸 분명히 선포했다. 6년 전 텔아비브로 이사했고,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거주지 확보와 관련돼 있다. 로쉬 예후디의 타겟 그룹 중에 '젊은 여성'이 있다. 효과가 있다. 어떤 종교, 어떤 조직, 하다 못해 마케팅에서도 이 집단은 특이하게 선동이 잘 된다. 

 

이런 난리를 치고도 다음날 아침 이들은 샤아릿 기도에서 이사야 58장을 읽었을 것이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הֵן לְרִיב וּמַצָּה תָּצוּמוּ, וּלְהַכּוֹת בְּאֶגְרֹף רֶשַׁע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느냐 הֲכָזֶה, יִהְיֶה צוֹם אֶבְחָרֵהוּ

'Moed'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초막절의 말방울  (1) 2023.10.07
2023 초막절  (0) 2023.10.01
욤 키푸르 금식 전 식사  (1) 2023.09.24
로쉬 하샤나 상차림  (0) 2023.09.17
오슬로 협정 30주년  (0) 202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