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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ed

욤 키푸르 금식 전 식사

2023년 욤 키푸르 금식은 예루살렘의 경우 9월 24일 저녁 17:58에 시작해 9월 25일 저녁 19:08에 마친다. 텔아비브는 18:15에 시작해 다음날 19:10에 마친다. 스마트폰이 다 알려주지만 어디 써놓고 시작하면 안심이 된다.

 

금식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쯤 식사를 하게 되어 있다. 금식 앞두고도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원래 무척 간단했던 것 같은데 최근 들어 안식일 식사 준비 못지 않게 품이 든다. 왜 이러나 싶다.   

 

금식 전 식사를 히브리어로 סעודה מפסקת 깨뜨리는 식사라고 한다. 뭘 깨뜨린다는 거지? 히브리어는 모호한 표현이 많다. 먹는 걸 멈춘기 위한 먹기라는 뜻이다. 일 년에 두 번, 24시간 꼬박 금식을 해야 하는 티샤베아브와 욤 키푸르에만 있다. 

 

일 년에 단 두 번인 티샤베아브와 욤 키푸르의 세우다 마프세케트는 성격이 다르다. 티샤베아브는 성전이 멸망했기 때문에 자신을 고문해야 하는 욤 타아닛인데, 욤 키푸르는 금식을 하긴 해도 욤 토브, 좋은 날 명절이다. 회개의 날이기 때문에 희망과 기쁨이 있다고 해석한다. 티샤베아브는 여러 음식이 아닌 단일 품목을 먹고, 고기는 안 되고 와인도 마실 수 없다. 삶은 달걀이 최선이다. 그런데 욤 키푸르는 좀 다르다. 성경이 먹으라고 했다고 본다.  

 

욤 키푸르를 다루는 토라 본문은 레위기 23장인데, 읽고 나면 물음표가 하늘의 별처럼 뜨게 되는 장이다. 어떤 면에서 유대교가 랍비들의 해석에 의존하게 된 것은 성경 본문에 너무나 충실하기 때문이다. 뭔 말인지 모르는데 해설해 주는 랍비가 얼마나 위대해 보이겠나. 솔라 스크립투라 내세우며 뭔 말인지도 모른 채 성경을 읽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아무튼 레위기 23장은 각 절기를 소개하면서 욤 키푸르가 일곱째 달 (그 달 이름이 티슈레이תשרי인데) 열흘 날이라고 한다(27절). 이날은 안식 중의 안식일שבת שבתון이다. 그러므로 우리 영을 괴롭게 해야(금식해야) 하는데, 이 달 아흐렛날 저녁부터 다음날 저녁까지다(32절). 히브리력의 시작이 저녁부터이므로 이 표현은 9일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24시간 금식을 의미한다. 히브리력에서 저녁에 하루가 시작한다는 걸 몰라서 9일을 언급했겠나. break 의미를 각별히 더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게 욤 키푸르 break meal을 지켜야 하는 토라의 근거다. 

 

아슈케나짐은 욤 키푸르의 세우다 마프세켓으로 크레플라흐, 우리 식 만두국을 먹는다. 고기를 밀가루 반죽이 둘러싸는 만두처럼, 인간의 죄를 하늘의 은총이 둘러싸고 있다고 본다. 아무튼 다른 야채를 섞지 않고 고기만 달랑 넣기 때문에 팍팍하다. 아무리 시그니처 음식이라 해도 집에서 이걸 만들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케이터링 가게에서 사온다. 속히 이스라엘에 만두피가 수입되면 좋겠다. 캐나다 T&T에서 파는 탁펑 만두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중식이 대개 돼지고기를 쓰니 코셔가 어려운가 보다. 한국에서 만두피 발견하고 유레카 하는 유대인 많다. 

 

    

마그라빔, 특히 튀니지아 유대인은 유럽 모과 quince 쨈을 준비한다. 히브리어로 하슈브חשוב인데 갇힌 죄수라는 뜻도 된다. 죄에 갇혀 심판을 기다리는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에스테르, 예후다

이츠하크 벤시만토브,는 쉐프다. 좋은 표식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손으로 뭘 만드는 사람이니까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아내 이름이 에스테르이다. 뭐 이런 절절한 사랑

jy4kids.tistory.com

     

시간이 흐르면서 전통도 변한다. 이왕이면 맛있는 걸 먹고 싶겠지. 티샤베아브는 애도가 큰 날이라 break meal도 제한이 많은 만큼 그 전통이 바뀌기는 힘들다. 욤 키푸르는 희망이 가득하다는 욤 토브라는 걸 이용해 온갖 것을 먹기 시작했다. 

 

우선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므로 닭고기에 밥을 곁들인다. 콩 요리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라크 출신들은 렌틸콩을 선호한다. 그래서 미즈라힘에게는 닭과 렌틸콩을 합한 요리가 욤 키푸르 세우다 마프세켓의 대표 요리다. 

 

닭고기와 렌틸콩 스튜. 쿠민כמון 강황כורכום이 들어가서 향이 압도적이다.

 

이왕 고기를 먹을 거면 소고기여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소고기를 갈고 감자를 곁들이는데, 이런 식의 미즈라힘 요리가 마클루바다. 아랍어로 뒤집는다는 뜻이다. 뒤집는 데 묘미가 있는 요리다. 

 

마클루바는 냄비를 태우게 돼 있어서 수세미 회사가 마클루바 레시피를 소개한다. 참 좋은 상생의 경제다.

 

고기 체질이 아니면 파스타를 마련한다. 콩이 들어간 스프 מרק שעועית에 파스타를 곁들이는 식이다. 마라크 슈이트는 겨울철 내내 유대인이 먹는 음식인 만큼 이제 겨울이 오는구나 실감도 할 수 있다. 나는 마늘을 엄청 넣는 제이미 올리버 스타일로 만든다. 마른 파스타를 후드려 찹찹하는 것도 맘에 든다. 

 

 

고열량 단백질 식사에는 아랍 피자 라흐마준(도우 위의 고기)도 제격이다. 집에 타분(화덕)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가게에서 사온다. 

 

욤 키푸르가 시작되는 날 아침, 욤 쉬쉬(금요일 오전)보다 업무시간을 단축하는 기관이 많다. 금식 전 식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밤에는 밤을 새면서 슬리홋을 해야 하니, 이래저래 피곤한 하루다. 자신을 괴롭혀야 하는 날이니 별 수 없다.   

 

욤 키푸르를 하루 앞두고 38번째 주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이날의 슬로건은 엔 메힐라, 용서는 없다, 이다. 자신들의 신 앞에서 용서를 빌도록 허용된 이날, 서로에게 잘못한 것을 사죄하고 심판을 면하라는 이날, 그래도 네탄야후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냥 말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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