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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ed

오슬로 협정 30주년

1993년 9월 13일 백악관,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하늘 아래, 어색한 이스라엘 총리와 해맑은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악수를 나누었고, 미국 대통령은 자애로운 부모 같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이 장면을 실황으로 지켜본 느낌이 든다. 그때의 충격과 우려와 흥분이 생생히 그려지니까. 하지만 1993년 개인사를 돌아보면 이 장면을 생중계로 보았을 가능성은 없다. 일단 우리나라 방송부터 다 녹화였을 거다. 철썩같이 믿고 있는 기억의 정확함이란 이렇게 헛된 착각이다. 

 

 

이날 서명된 첫 번째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과 PLO 간의 최종 지위 협상으로 이어질 임시 틀이었다. 그 앞에 놓인 험준한 도전은 엄연했지만 이제 이-팔 평화 과정은 되돌릴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을 것이다.

그날로부터 30년이 지난 2023년 9월 13일, 오슬로 협정은 희망이나 환상의 여지조차 없는 피투성이 혹은 누더기가 되어 기껏해야 실패의 원인을 더듬는 사람들에 의해 비통하게 언급될 뿐이다.

 

1994년 여리고에 들어서는 팔레스타인 병력. 여리고는 오슬로 협정에 따라 PLO 통제에 넘겨진 도시다. 

 

오슬로 협정은 임시안이었다. 영구안을 위한 협상이 세 번이나 마련됐지만 소위 두 국가 해결책 2 states solution은 빌 클린턴이 퇴임하고 난 2001년에야 공식화되었다. 그조차 지금은 다 무시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테러 공격과 유대 정착촌의 확장이 이 기간을 규정하는 특징이었다. 

 

이스라엘의 외교정책은 철저히 Top-down 방식이다. 전쟁과 테러를 겪어온 일반 대중이 그 원수와 평화를 꿈꾸는 일이 무슨 수로 가능하겠나. 그러니까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신을 반대하며 평화를 거부하는 대중의 위협 앞에 우선 노출되는 것이다. 라빈은 온몸으로 이 시련에 맞섰다. 1994년 2월 25일 헤브론 막벨라에서 총기를 난사해 팔레스타인 사람 29명을 죽인 극우파 유대인의 테러가 일어났다. 당시 헤브론의 유대인 정착민은 400명이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단 규모가 주둔해야 했다. 바루흐 골드슈타인이 테러를 일으킨 직후, 만약 그 정착민들을 헤브론에서 밀어내라는 요구에 동의했다면 라빈은 암살을 피할 수 있었을까. 라빈은 1차 인티파다를 겪으며 이 끝나지 않을 비극의 속성을 알아챘다. 아라파트와 손잡는 일은 절대 사양이었지만 그렇게 끌려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평화는 친구가 아닌 원수를 위해 준비된 도전이다."    

 

라빈의 고뇌는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속을 모르겠는 게 아라파트다.         

 

아라파트는 왜 오슬로 협정을 수락한 걸까. 팔레스타인의 자결, 국가 지위, 수도로서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권리 전부 전혀 달성되지 않았는데 왜 이스라엘을 인정한 걸까. 국제 정치는 단순한 게 아니지만, 혹시 지킬 의지가 없기 때문에 쉽게 서명할 수 있었던 걸까. 아라파트의 독특한 에고로 보건대, 전 세계로부터 자신만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독점적 지위가 있다는 걸 인정받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익이고 뭐고 자기 자존심의 승리를 앞세운 거다.

아라파트는 사다트가 아니었다. 무장투쟁과 폭력을 우선하는 혁명가에서 타협과 외교의 세계로 결코 전환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팔 분쟁은 종식시킬 수도 없었다.

 

한 사람은 자기 민족에게 암살되고, 다른 사람은 자기 존재의 딜레마에 공격받으며 실패로 끝난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오슬로 협정만이 이스라엘 우파들의 꿈을 이루어 주었다. 서안지구의 60퍼센트 영토가 이스라엘에 귀속되었기에 유대인 정착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두 국가 해결책을 들고 나왔다. 블링켄도 공식 인정했다. 사우디는 협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이 버림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다. MBS는 단어 선택도 참, 낭만적이다. 다음주 UN 총회에서는 사우디가 주도하는 이-팔 평화 협상 재개 촉구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스라엘도 PA도 없이 자기들끼리 '촉구'만 하고 끝나겠지만.

 

G20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를 출발해 두바이와 바레인과 리야드를 거쳐 요르단을 통과해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에 이르는 소위 "아브라함 협정 철도"를 제안했다.

예산도 기한도 기약 없는 그야말로 말뿐인 계획이지만, 중국의 일대일로를 견제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압도적으로 경제적인 루트이다. 네움 시티를 짓고 있는 MBS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네탄야후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놀랍게도 네탄야후는 이스라엘 영토를 가장 많이 양보한 정치가가 된다. 우파 연정이 무슨 수로 이 위기 혹은 기회를 넘길까. 

이래저래 다음주 UN 총회가 흥미진진하다. 네탄야후는 반유대주의 논란에 빠진 일론 머스크와 먼저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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