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건축법은 1990년 걸프전 이후 모든 건물에 보호 공간 מרחב מוגן을 구비하도록 규정한다. 벽을 두텁게 해서 폭발물이 뚫을 수 없게 만든 공간인데, 원래는 독가스 침투를 막는 밀봉 기능에 중점을 두었다. 그때 그 시절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독가스로 공격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건물마다 보호 공간이 생기기 전에는 보통 거리마다 일정 간격으로 미클라트 bomb shelter, 우리말로 방공호를 세웠다. 텔아비브는 아직도 미클라트가 많다. 가장 현대적인 도시지만 상대적으로 도시 형성은 가장 오래된 도시기 때문이다.
유대인 국가 기금Jewish National Fund은 로켓 공격이 집중되는 가자 인근 지역의 방공호를 치장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지역 출신 예술가를 초대해 어린이들과 함께 색칠하며 그나마 편안하고 친숙한 기분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신축 아파트라면 서너 개의 방 중에 하나가 이런 철문을 가진 보호 공간이다. 아파트의 보호 공간이라는 뜻에서 마마드מרחב מוגן דירתי라고 부른다. 고층건물이나 오피스 빌딩에는 층마다 보호 공간을 두어서 마마크מרחב מוגן קומתי이다. 보통 한 동의 거주민 전부가 모인다. 공공 건물들도 반드시 보호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마맘מרחב מוגן מוסדי이다. 10년 전만 해도 어떤 형태의 보호 공간이든 미클라트로 칭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용어도 진화해서 지금은 마마드가 가장 보편적인 용어다. 평상시에는 그냥 창고로 쓰기 때문에 이번 가자 전쟁 초반처럼 느닷없이 공습 알람이 울리면 우왕좌왕하게 된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십여 명과 나란히 3시간을 앉아 있으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당연히 창문은 없다. 순면적 9평방미터다.
평화로운 하늘 같지만,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는 폭발음을 헤아리는 중이다. 옆 동네에 이어 곧 우리 차례니까 알람이 울리면 마마드에 들어갈 작정이다. 준비성이 철저해서라기보다, 이렇게 대놓고 보고 있는 편이 한결 담담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휴교령이라 골목에 아이들이 많다. 이스라엘에서 전투병 출신들은 45세까지 예비군 소집 대상이라, 아빠는 전투에 나가고 엄마와 함께 친척 집으로 피신해 있는 아이들이다. 주로 우리집 정원에서 논다. 하늘 보고 있는 이상한 사람 때문은 아니다. 우리집 정원 나무들이 특이한데, 아이들이 그걸 구경하기 좋아한다.
아이들 노는 걸 봐주다가 특이점을 발견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밤새 고생한 엄마들이 잠깐 눈 붙이는 걸 안 깨우려고 그럴 수도 있다. 어린이가 왜 그런 배려를 하나. 스가랴 선지자가 시온의 회복을 왜 소년 소녀가 길거리에서 뛰어노는 광경으로 표현했는지 알겠다(슥 8:5). 가자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리 와 봐, 나무 이름을 알려주마. 세상에서 가장 큰 과일 낭카를 유럽인들은 잭프룻이라 부른다. 품종 발견자 이름이 윌리엄 잭이라 그렇다. 태국 이름은 카눈이다. 2023년 여름 괌을 초토화시킨 태풍 카눈, 그 이름 맞다.
아테모야, 혹은 아논나는 타이완에서 파인애플 슈가애플로 불린다. 검은 씨가 크고, 과육이 꽤 맛있다. 땅에 떨어져 버리는 게 많아서 아까운데, 익기 전에 따기가 쉽지 않다. 울퉁불퉁한 외모에 비해 매달린 가지는 너무 부실하다.
파인애플 구아바, 구아바스탄이다. 꽃이 피면 참 예쁘지만, 과일 자체는 굳이 왜 먹나 싶은 맛이다. 딱히 영양가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게 가자 지구에서 많이 나는 열매다. 그렇단다.
플랜테인, 일명 쿠킹 바나나는 그린 바나나라고도 한다. 노래지지가 않는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은 모르겠다. 바나나 맛일 테지.
아보카도는 잎사귀가 멋지다. 물이 많이 소비되는 나무다.
이 나무 열매들이 자라는 데 내가 딱히 기여한 바는 없다. 그래도 나만큼 요리조리 쳐다봐 주는 사람도 없을 거다. 식물을 지켜보는 건 정신 건강에 좋다. 견디기 힘든 순간에 이것들을 바라보는 게 도움이 된다. 폴라로이드를 가지고 나와 희귀한 나무 열매 옆에 선 아이들을 찍어주었다. 인간들이 망치고 있는 세상에서 그래도 건재한 생명력을 발견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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