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전쟁 11일째 날을 시작한다. 전쟁은 출퇴근보다 치밀한 일상이 되었다.
5시쯤에 기상한다. 처음에는 차가 덜 막히고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도록 카풀을 고려했지만, 비상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니 여러 대로 움직이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라이드가 필요한 사람들은 미리 연락해서 시간을 정한다. 대개 6시 전에 모두 출근한다. 집에서 일하는 날은 비슷하게 일어나 청소와 요리를 해두고 기다린다. 장보기는 그나마 소강상태인 점심 때 가까운 수퍼에서 한다. 생방송은 언제나 켜두지만 소리는 안 듣는다. 공습 알람이 뜨는 것만 확인한다. 인간은 시각보다 청각이 훨씬 예민하다. 볼 수 있으면 벌써 주변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시각장애인들이 얼마나 힘들까 실감한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병자들 가운데 유독 시각장애인이 많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08:45 오테프 가자에 공습이 시작된다. 전투 활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루의 1단계이다.
간밤에 21:50까지 구쉬 단과 텔아비브에 공습이 울렸다. 가자 로켓 발사대가 폭파되고 하마스 정보부 수장이 제거되긴 했지만 공습 때마다 엄청난 피해와 집단적 트라우마를 감수하는 데 비하면 IDF 대응이 느슨하다. 당연히 납치자들 때문이다. 어젯밤 흥분한 시민이 딸이 납치돼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아버지를 공격했다. 다 죽는 게 낫겠냐고 항변하며. 사람은 다 자기 중심적이다. 199명'이나'에서 199명'밖에 안 되는' 이들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별수없다. 가족들은 고개 들고 세금 내며 국가에 헌신하며 살아온 이 나라 시민답게 떳떳이 요구하면 그만이다. 정치적 판단이든 도덕적 판단이든 모두 대가를 함께 치러야 한다.
10:00 IDF 대변인의 성명이 나온다. 간밤의 전황을 알리고 향후 계획을 발표한다. 전쟁은 은밀한 파괴 활동이 아니다. 테러가 아니다. 현대전에서 후방을 안심시키고 군대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은 중요한 전략이다. IDF 장교들의 자질 중에 히브리어 능력이 왜 들어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10:10 그러면 오테프에 공습이 울린다. 메툴라에는 대전차 미사일 공격이 있었다. 이스라엘 방송을 같이 보고 있어서 그렇다. 예루살렘에 있는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국 사무실을 폐쇄해야 한다는 제기가 있었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스라엘 국가가 이런 일을 하면 욕을 먹는다. 독재는 대개 잠깐은 경쟁력이 있다.
11:10 납치자 미야 쉠 מייה שם 가족들의 특별 기자회견이 있었다. 하마스가 처음으로 공개한 인질의 인터뷰가 전날 밤 전해졌기 때문이다. 21살의 이스라엘-프랑스 시민권자이고 레임 근처에서 열린 노바 페스티벌에 참석했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미야는 손에 총을 맞았다고 전해지는데 영상 속에서도 아직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비디오가 적어도 6일 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1:30 브엘셰바 공습이 있었다.
13:30 쉐펠라 공습이 있었다. 쉐펠라는 워낙 작은 지역이라, 우리 동네에 알람이 안 울려도 폭발음이 굉장히 크게 들린다. 아이들이 놀랄 수 있어서 일단 대피를 시킨다. 줌 수업을 하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고개를 내밀고 내다본다. 코로나를 거쳐 하마스 전쟁을 치르고 있는 눈물나는 세대다. 어, 들어가. 그래도 공부는 해야 돼.
가자 국경에서 수백 구의 시신이 신원 미상 상태라고 한다. 디엔에이 검사 등을 진행할 거란다.
15:30 오테프와 스데롯에 공습이 시작된다. 쉐펠라에 있는 민간인이야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지만, IDF 작전이 진행중이라는 뜻이다. 전선을 생각하는 엄마들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한다.
하루에 한번씩 스캔들이 터지는데 오늘은 국방부가 구입한 방탄조끼와 장비가 잘못됐단다. 간밤에 공항에 잔뜩 도착한 장비가 모두 있으나마나 한 거란다. 아무렴, 이래야 이스라엘이지. 책임질 사안은 줄줄이지만 정치적인 사안은 아니란다. 정부는 삽질하고, 꾼들은 이를 감싸며 모두의 지성을 조롱한다. 이미 지쳐서 이런 걸로는 화도 안 난다. 이스라엘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놀라운 건, 국가안보회의 의장 짜히 하네그비가 나와서 헤즈볼라나 이란이 공격하면 미국이 개입할 거라고 말한 거다. 이스라엘은 이제껏 단 한번도 외국군에 의지한 적이 없다. 미국이 이 전쟁의 결과를 결정짓게 하겠다고? 네탄야후 총리가 블링켄 미 국무장관하고 7시간 반 동안 회담한 결과다.
조금 전의 충돌에서 알 카삼 사령관 아이만 노펠이 제거חוסל됐단다. 하마스 다른 장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 그래도 매우 극적인 작전이었단다. IDF 희생은 거론되지 않는다.
16:40 북부 최대도시 키리얏 슈모나에 공습 알람이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정원으로 나온다. 이제 슬슬 공습을 준비해야 하므로 막간을 이용한 숨통 트기 시간이다. 이러다가 마마드로 들어가면 긴장감이 훨씬 덜하다. 아이들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다.
아이들과 가자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다. 가치 판단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위주로 이야기한다. 220만 명의 인구가 고 인구밀도 속에서 살고 있고, 2008년부터 공해까지 막혔다는 이야기. 2005년까지 카티프 가자에 살았던 분이 기억 속 가자 이야기를 해 주신다. 고향을 그리듯 그리워하신다. 사진도 보여주는데, 지금이야 다 무너졌지만 유대인 정착촌 카티프 가자는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가자 해안선은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다. 웨스트뱅크에 폭탄 테러가 한창일 때도 가자는 오히려 평화로워 에덴동산 같았단다.
Deir al Balah는 종교나무 수도원이란 뜻이니까 기독교 이름이다. 엘리야, 알 키드르와 동일시되는 St. Goerge로 인한 이름이다. 아랍인들이 흔히 다롬, 남쪽이라고 하는 게 이 지역이다. 아마도 룻다, 즉 세인트 조지가 태어난 도시의 남쪽이라는 뜻일 것이다. Khan Younis는 요나의 여관이란 뜻이다. 요나를 삼킨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놓은 바닷가라는 전승에 근거한다.
17:00 오테프와 스데롯에 공습이 이어진다.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데, 퇴근하는 사람들의 도로 상황이 걱정이다.
18:05 네탄야후 총리가 울라프 숄츠 독일 수상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데 쉐펠라와 구쉬 단에 공습 알람이 울린다. 헤즈발라는 북쪽에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18:30 쉐펠라와 구쉬 단에 공습이 이어진다.
이스라엘 뉴스는 강약이 있는데, 5시와 6시 뉴스는 푸근한 분위기에서 말랑말랑한 편이다. 소셜네트워크의 재미난 사연이나 사람들의 일상 스케치도 많다. 7시와 8시가 본격 전투로 치열한 편이다. 17일 6시 뉴스를 마치며, 초등학생들이 기자들에게 보낸 선물과 편지가 공개됐다. 24시간 생방송을 진행하는 이스라엘 뉴스 기자들은 단지 그런 노고를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를 끌어내는 엄청난 실력 때문에 놀랍다. 게다가 로켓이 발사되는 현장에서 동요 없이 진행한다. 유가족이나 납치나 가족과 인터뷰하는 건 또 얼마나 사려깊은지.
19:00 이게 오늘의 마지막이 될까. 남부, 쉐펠라, 구쉬 단, 텔아비브까지 쏟아부었다. 오늘 스데롯 집들이 직격탄을 많이 맞고 불탔다.
19:30 아슈돗에서 3번 고속도로까지 이어서 공습이다. 공습 때문에 바닷길을 피해 돌아가는 퇴근길을 파악하고 있나.
19:35 오늘 중 가장 큰 규모로 공습이 이어진다. 인질 영상 풀고 이도저도 못할 줄 알고 쏟아붓는 건가. 1번 고속도로 한복판에 로켓이 떨어졌다. 바이든 올 때까지 큰 사고 내면 안 되는데, 어지간하다.
이 와중에 누구 아들은 4월에 마이애미에 가서 아직 안 왔다네. 이스라엘 역사상 이런 정치가 아들 처음이다.
20:00 아슈켈론과 구쉬 단에 다시 쏟아진다. 아침 저녁 반복하는 로켓 공습과 아이언돔이 전부 돈이다. 이걸 날마다 반복하며 트라우마를 차곡차곡 적립하는 게 이곳의 운명이라니.
오늘 북쪽 국경에서는 헤즈볼라가 5개의 대전차 미사일을 쏘았고, 테러리스트의 침입도 있었다. 키부츠 하니타 방향이다.
20:15 북쪽 국경 쪽에 공습 알람이다.
21:00 가자 병원이 불타고 있다. 아랍 외신들은 즉시 IDF가 폭격했다고 헤드라인을 낸다. 히브리어는 shelling הפגזה로 나온다. IDF 공습에 의한 거면 bombing הפצצה이다. IDF는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 불발 로켓이 떨어진 거라고 말했다. 내일 바이든이 도착하는데 IDF가 그랬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집트는 이미 고의적인 폭격이라며 비난을 시작했고, 요르단, 터키, 카타르, 그리고 캐나다가 이스라엘 비난 성명을 냈다. 프랑스는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정도의 코멘트였다.
22:20 요르단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으로 군중이 몰려와 폭동이 시작됐다. 아부 마젠, 마흐마드 압바스는 내일 요르단에서 열릴 바이든과의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라말라로 돌아와 있다는데, 언제나처럼 그의 처신은 참 아쉽다. PA는 하마스의 빈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22:35 IDF가 공식 자료를 발표하고 실패한 로켓 포격이 병원 근처를 지나갔다며, 이슬람 지하드 조직이 병원을 강타한 총격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알자지라가 생중계 영상을 갖고 있는데, 그러하다.
23:05 사우디가 "병원 공격은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비난했다. 누가 모르나. 누구를 비난했는지 문맥상 추측은 하지만, 뭐 이런 성의 없는 규탄을. 여기처럼 실시간 뉴스를 안 보나.
23:10 네타냐후 총리가 X 계정에 IDF가 아닌 테러리스트에 의한 병원 공격을 영어로 올렸다.
23:40 헤즈볼라가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하는 10월 18일을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의 날"로 선포했다. 이란, 레바논, 요르단은 애도하는 날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00:25 요르단 압둘라 국왕이 미, 이, 요, 팔의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지금은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는 게 이유다. 당장 전쟁을 멈추라는 게 요지다. 그 와중에도 하마스더러 이스라엘 인질들 돌려주라는 말은 안 한다.
00:30 병원 폭발 5시간 30분 후, IDF는 공식 발표로 이슬람 지하드의 책임을 물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시간 후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예루살렘 가는 1번 고속도로가 전면 통제된다. 자다 말고 일어나 내일 출근길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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