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드라마를 다시 찾아보았다. 이디쉬어 표현 יישר כוח를 못 알아들었는데 이게 슈티셀에 나왔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내가 이 드라마를 얼마나 샅샅이 봤는데. 사람의 기억 능력이란 가끔 스스로를 배신한다. 첫 시즌 첫 에피소드 첫 장면에 나왔다. 이 에피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많다. 처음 보는 히브리어 표현들도 많은데, 하레딤들까리 은어인지,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지 일단 걸러는 봐야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 어쩜 이렇게 재미있나. 눈깜짝할 사이에 45분이 지나간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했으니까.
첫 장면은 키베의 친구 안신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아슈케나지 하레딤 음식이 등장한다. 고기에 감자와 콩을 넣고 오래 졸인 것이 하민, 이디쉬로 출룬트טשולנט이다. 겨울철 하레딤의 외투에서 나는 냄새이기도 하다. 쿠글 예루샬미는 누들로 만든 일종의 케이크로, 18세기 리투아니아에서 온 빌나 가온의 제자들이 만들어 먹었다는 전통 음식이다. 카라멜 때문에 달고 후추를 넣어서 쌉쌀하다. 나로서는 몹시 해괴하게 느껴지는 맛이다. 게다가 키베가 저걸 받으면서 하무찜, 절인 오이를 달라고 한다. 왜? 첫 장면부터 뭐지???가 연속으로 달리는 장면이다. 아무튼 여기서 음식을 받으면서 하는 말이 יישר כוח 다. 우리말은 좀처럼 덕담이 대화체로 사용되지 않으니 이 범주 용어들이 어렵게 느껴진다. 잘했어요, 고마워요, 계속 잘하세요, 수고했어요 등등의 의미를 축복을 담아 사용하는 표현이다. 고맙긴 하지만 사람의 먹거리를 해결해주는 미쯔바와 관련된 일이기에 식당에서 적합한 표현이다. 물론 일반인이 사용하면 뜨아하다.
키베는 매사에 아들을 못 미더워하는 아버지 슐레므와 함께 살고 있다. 두 부자가 함께 먹는 장면이 많은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는 가장 일상적인 음식들이 등장한다. 파티팀은 1950년대 가난했던 시절 벤구리온이 이스라엘 대체식량으로 만들어냈다는 일종의 쿠스쿠스다. 파스타 대신으로 급조한 곡류다. 삶은 다음 야채에 섞어서 볶는다.
시즌 1에서는 이스라엘 성서동물원이 주요 공간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키베의 숨은 욕망이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호랑꼬리여우원숭이라고 불리는 Ring-tailed Lemur가 자주 등장한다. 히브리어 למור קטה다. 키베는 아버지 눈에 물정 모르고 속 터지는 일을 자주 하는 철없는 아들이다. 두 부자는 성격도 반대인데, 그림을 그리는 키베와 달리 랍비인 슐레므는 그까짓 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따위에 관심이 없다. 어린 학생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얼룩말을 보고 싶어하자, 당나귀에 검은 선만 그은 동물이라고 일갈한다. 또 아이들이 하마를 보고 싶다고 하자 토라에 하마가 왜 등장하지 않는지 길게 말해준다. 사변적인 유대 종교인의 특징이 드러난달까. 신명기 32장 24절의 사나운 이가 난 들짐승을 유대교는 전통적으로 하마로 본다.
비현실적인 몽상가 키베는 일년 전 돌아가신 엄마가 추워하는 걸 꿈으로 꾸고 나서, 전기 난로를 대여하는 가마흐גמ"ח를 연다. 가마흐는 일종의 무료 대여소로 유대인 공동체의 생존에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 섬세함을 그저 무시하고 쓸데없다 여긴다.
드라마 슈티셀에서 맞선 장면들은 아주 중요하다. 예루살렘에서 하레딤 젊은이들의 맞선 장소로 가장 유명한 호텔이다. 키베는 결혼을 위해 여성을 만나는 맞선 자리에서 매번 놀라운 환장미를 선사한다. 여성의 은밀한 위선과 주도권을 위한 꼼수 등에 번번히 당하지만. 엄정한 규칙 속에 배우자를 걸러내는 자리인 만큼 어린 소녀들은 매우 잘 훈련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더 하찮아 보이기도 한다. 첫 맞선 상대가 키베의 스케치 노트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게 만약 하드라그חדר"ג가 아니면 보고 싶다고 한다. 하레딤에게 금지된 것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장례 관련 관습도 나온다. 부모 형제가 사망하면 일년 동안 애곡의 시간 샤나 에벨을 갖게 된다. 1주년 기일이 되면 남자들은 무덤에 가서 기도하고, 미쯔바 식사를 함께 한다. 이 에벨의 시간에는 금지되는 게 무척 많은데, 그중 하나가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것이다. 슐레므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사람이라, 금지됐던 음악이 해제되는 데 무게를 두고 다시 음악 감상을 한다. 키베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오자 마치 그가 꾸었던 꿈처럼 다시 추워진다. 겨울이 끝나가는데 무슨 난로 가마흐냐고 놀리던 사람들이 무색하게 난로를 구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중에 키베가 첫눈에 반한 엘리셰바가 있었다. 본인조차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에 어린 키베의 무모한 사랑에 흔들리게 되는 여인이다. 이들의 불타는 마음을 표현하듯 난로에 불이 들어온다.
엘리셰바의 방문으로 잠시 늦춰진 1년 만의 음악 감상의 순간이 이 에피의 마지막 장면이다. 공개된 노래는 켄 찌포르, '새 보금자리'다. 새끼를 품은 어미 새는 놓아주라는 신명기 법전의 한 구절이다. 이 자녀들을 품어준 어머니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 절묘한 부분들이 많지만 특히 이 노래 선정은 압도적이다.
노래를 부른 어린이 합창단은 예루살렘 꽃합창단(Jerusalem Flower Choir)이다. 1963년 런던 꽃합창단의 창시자인 이갈 츨릭이 브네이 브락에서 창단했다. 현 지휘자 아비탈이 1975년 이후 하시딤 어린이 합창단으로 전환했다. 10세부터 14세까지 남자 아이들이 참여한다. 전국은 물론 전 세계 공연을 한단다.
'Hebrew Read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0125 이스라엘 땅과 농사 (1) | 2024.01.26 |
---|---|
인질을 구출해야 하는 이유 (1) | 2023.11.29 |
아랍 국가들의 속내 (0) | 2023.11.16 |
재앙과 하나님의 뜻 (1) | 2023.10.31 |
다비드 그로스만 칼럼-하마스 전쟁 (2) | 2023.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