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시집장가 가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무슨 충동을 받는지, 결혼식이 더 잦은 것 같다. 하마스 전쟁이 시작되고 300여일이 가까울 때였다. 탐무즈 월 17일 금식 후 티샤베 아브, 성전 멸망일까지 3주의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아니, 이 모에드에 결혼을 해도 되는 거야? 신부네가 미즈라힘이라, 랍비 허락을 받아서 된단다. 참 융통성 많은 종교였네.
차려 입고 결혼식 가서 기분 낼 상황이 아니었지만, 다름아닌 하바트 로니트 결혼식이라 간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호텔 야외 웨딩홀 정도 될까. 이스라엘에서 최고 수준의 결혼식이 열린다는 곳이다. 뭐가 최고라는 거야, 에어컨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기만 학수고대했다.
입구는 이렇다. 미니멀리즘인가.신랑신부 이름도 안 써 있는 저 판넬은 재활용을 위한 목적인가.
천 명 하객도 너끈할 만큼 광활하다.
수공간도 있다. 모기는 걱정되지만, 보기는 좋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후파, 신방이 준비되어 있다.
정장 차려 입은 하객들이 딱해보일 정도로 더웠다. 10시 넘어 홀로 들어와 광란의 DJ쇼를 보며 뭘 먹었나.
두 달이 지나 하바트 로니트를 떠올린 건, 네탄야후 총리 둘째 아들의 결혼 소식 때문이다. 큰아들과 달리 조용히 자란 둘째 아들 아브네르는 대중 앞에 노출된 경우가 거의 없는데, 놀랍게도 2022년 6월 결혼을 앞두고 파혼을 해서 화제가 됐다. 유대인은 결혼 날짜를 정하면 변경도 하지 않는데, 파혼을 했다는 건 이만저만한 사건이 아니다. 남의 사생활에 관심 가질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은 오랜 연인 사이였고, 공인은 아니라도 인스타그램으로 사생활을 꽤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도 다이아몬드 반지 포커싱해서 두 손 겹친 약혼 사진을 많이 올리는데, 남의 사랑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직업도 없는 26살짜리가 저렇게 알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어떻게 장만했을까 생각이 스치긴 했다. 약혼녀 노이 바르는 정치쪽에서 일하는 석사 과정 학생이었다. 루머는 루머일 뿐이지만, 여기서도 시어머니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나 보다. 파혼한 아들은 3개월 만에 핫한 여성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노이 바르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방송국 기자 우리 이츠하크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는데, 여기 하바트 로니트에서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전쟁이 시작됐고, 노이 바르가 곧 엄마가 된다는 뉴스도 나왔다. 이 나라 인구가 천만 명이 좀 안 되는데, 그중에서 유대인이 7백만 정도다. 거기서 중부 지역에 사는 사람이 5백만 정도고, 그 인구의 1퍼센트가 5만 명이다. 보통 상류층은 인구의 0.01퍼센트라는데, 이 나라에서 주요 관심 대상이 500명밖에 안 되는 것이다. 뒷담화가 얼마나 집요하고 자세하겠나.
아무튼 다가오는 11월 말, 아브네르 네탄야후가 결혼식을 할 텐데, 그 장소도 하바트 로니트다. 두 사람이 참 이곳을 좋아했나 보네. 덕분에 하바트 로니트 명성 자자해졌다. 현 총리 자녀의 결혼식은 처음인데, 500명 정도만 엄선해서 부를 거란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올 텐데, 이 시국에 어디까지 동원될지 궁금은 하다. 북부 전선이 요동쳐서 야외 활동 가능한 대중 숫자가 바뀔 수도 있다. 그래도 결혼식이 취소되는 법은 없다. 이 마당에 총리를 반대하는 좌파들은 결혼식을 방해하겠다고 이미 공표했다. 그건 너무하는 건데.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치르는 법은 없다는 게 토라의 가르침 아닌가. 그래도 타이밍이 부적절하긴 하다. 인질로 갇혀 있는 남의 자식한테는 참으라면서, 자기 자식이 결혼하는 기쁨은 누리겠다니. 어쩌면 11월쯤 전쟁이 끝나는 걸까. 헤즈볼라 로켓이 나사렛과 이즈르엘 평야까지 도달한 날, 부질없는 생각들을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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