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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와 헤라클레스

 
신화는 문화나 신앙 밖에 있다. 그래서 무슨 소리를 해도 된다. 그러나 신화가 문화나 신앙에 침투하면 이야기는 다르다. 프랑스 좌파들은 이걸 모른 척하니 욕을 먹는 거다. 디오니소스와 드래그퀸 기독교를 섞어 놓고 관련자를 distress 할 의도가 없었다니, 핑계도 후지다. 카타르더러 찍소리도 못하더니, 프랑스에서는 입 털 만하구나. 트럼프는 수많은 자기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이브한 좌파들의 덕을 볼 것이다. 프랑스 올림픽 개막식의 뻘짓이 미국 공화당에 이익이 되는 게 글로벌한 이 시대의 특징이다. 
 


내 주변 유대인들은 이게 왜 스캔들이냐는 반응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몰라서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이야기도 신화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더 열받네. 아무튼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는, 유대인 신화대로라면 벳샨에서 자랐다. 젖 먹여 기른 유모 니사가 여기 묻혔다. 그래서 벳샨의 헬라식 이름이 니사-스키토폴리스다. 예수님이 주로 다니신 데가볼리(10개 도시) 중 유일하게 요단 강 서쪽에 있던 도시다.

 
디오니소스는 출생 스토리가 남다르다. 제우스의 사생아인데, 어머니 세멜레는 페니키아 공주로 제우스 신전의 여사제(!)였다. 세멜레의 아버지 카드무스는 테베의 영웅이다. 우리나라야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가 남들 이야기지만, 이 지명들은 다 이스라엘 땅과 관련 있다. 제우스는 아내인 헤라 몰래 세멜레를 찾아와 불륜을 저지른다. 열받은 헤라는 세멜레에게 임신시킨 남자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세멜레는 신분을 숨긴 제우스에게 정체를 알려달라고 조르다 결국 죽게 되는데, 그게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연상시킨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20)
 
제우스의 얼굴을 본 세멜레가 불에 타 죽은 것이다. 제우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디오니소스를 꺼내 자기 허벅지에 넣고 키운다. 히브리 성경은 자녀가 아버지의 허벅지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창 46:26). 물론 이 단어는 남성의 생식기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창세기 본문이 뜨악하긴 하다. 자식 많기로 유명한 사사 기드온의 70명이나 되는 자식도 문자적으로 아비의 "허벅지에서 나왔다"(삿 8:30)
 

우리에게는 굳이, 싶지만 디오니소스를 예수의 내러티브에 등장시키는 건 반종교주의자들의 흔한 레토릭이다.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이 디오니소스가 어쩌고 하면 그건 남의 신화를 모방하는 거지만, 필리페 카트린이 디오니소스를 예수 앞에 앉히면 반종교다. 그는 모르지 않았다. 마침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아로 소개하신 것도, 디오니소스 축제 현장에서였다 (마 16).
 
디오니시아, 즉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는 비극을 상연했다. 배우들은 디오니소스의 사제들로 간주됐다. 며칠에 걸쳐 공연했고, 마지막날에는 우승자에게 담쟁이넝쿨 화환을 씌워주었다.
 
디오니시아 축제 기간 사람들은 디오니소스의 꼬붕인 염소 비슷한 사티로스(Satyrs or Silens)로 분장하고, 거리를 마구잡이로 달리며 음란한 행동을 했다. 왜냐, 이분들은 그게 항상 서 있었기 때문에. 아테네는 아직도 이런 기념품을 파는데, 처음 디오니소스 동상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거부했지만, 이후 남성의 생식기에 전염병이 돌자 받아들여 덕분에 낳았단다. 그래서 남근을 들고 행렬을 했다고. 디오니시아는 아테네에서 파나테나이아와 함께 양대 축제였다. 이게 유럽 카니발의 기원이다. 이 의식이 로마로 전해져 바카날리아가 됐다.
 

승마용 액세서리로 출발한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는 소유주 이름이지만 상업과 무역의 신 헤르메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역시나 제우스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오월의 여신 Maia다. 이 브랜드가 그리스 신화를 추구하는 건 뭔가 그럴 듯한데, 그리스 신화를 차용하는 게 좀 억지스러운 브랜드도 있다. 저 백이 특히 그렇다. 
저 버클의 양쪽 대가리가 타이거란다. 디오니소스가 이쪽 지방 출신인데 호랑이는 말도 안 된다. 원산지에 충실하면 팬더고, 백번 양보해도 레오파드다. 아무튼 디오니소스가 팬더를 타고 강을 건너는 그리스 신화는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그래서 저 핸드백은 호랑이 문양을 따로 수놓았다. (저게 아시아 고객을 겨냥한 마케팅이라고 설명한 사람 있었다.) 신화를 설명하려는 태도는 어쨌든 촌스럽다. 그냥 던져놓고 모르면 말고, 했어야 한다. 저 브랜드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졸부 이미지인 것도 어쩌면...아니다. 
 

 
이스라엘에서 다시 그리스 신화를 꺼내볼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런 뉴스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 "해당 군 수장이 와서 마굿간 청소하기를 바란다." 부패 청산을 뜻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Seriously? 헤라클레스의 12가지 업(노역) 중 하나가 아우게아스 왕의 마굿간 청소였다는 걸 모르면 이해가 안 된다. 히브리어가 모국어인 유대인들은 당연히 이 표현을 알고 있다. 여기가 그러니까, 헬레니즘 제국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다스렸던 땅이지 않나.  
 
최근에 우리나라 드라마를 접하게 된 유대인들이 하는 말도 있다. 한국 드라마는 그리스 신화의 재해석이란다. ??? 권선징악 류의 쾌감 때문인가. 특히 상간녀의 혼외자 출산과 조강지처의 권위가 그렇단다. 이스라엘이 드라마 제작 편수가 적기는 하지만 10년 넘게 살면서 이런 주제의 드라마나 영화는 한번도 못 봤다. 사생아에 대한 율법의 가혹한 처벌 때문이다. 왜 한국의 상간녀는 자식을 낳는가. 출산율이 0.8명이라며. AI에게 물어보았더니, 개인이 자녀를 낳는 이유는 다양하단다.     
 
헤라클레스 영웅담에는 그보다는 선명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불륜은 대가를 치른다. 제우스가 알크메네 공주를 통해 아들을 낳자 결혼의 신 헤라가 열받아서 헤라클레스에게 저주를 걸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헤라클레스는 아내와 자식들을 모조리 죽인다. 정신 차리고 아폴론에게 상담하자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를 섬기라 한다. 헤라의 주문대로 미친 왕은 헤라클레스에게 12 노역을 내렸고, 영웅은 그 불가능한 임무를 모두 돌파한다. 이런 헤라클레스의 이름은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역시 조강지처다. 헤라클레스의 생모 알크메네는 아들을 괴롭힌 에우리스테우스를 독살한다. 역시 어머니는. 어딘지 K-스토리 같지 않나.

루벤스의 갤럭시의 탄생. 은하수는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젖먹이다 말고 뿌리쳐서 만들어졌다고.
헤라를 상징하는 공작이 이끄는 수레와 음침하게 쳐다보는 이 사태의 원흉, 제우스 (독수리와 번개로 형상화됐다).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Glykon(!), Farnese Heracules vs.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참볼로냐, Heracules beating Centaur 
 
유럽에 유대인 역사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 신화 공부도 할 필요가 있다. 모처럼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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