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갈무리할 무렵이었다. 아직 휴전 이야기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오테프 가자에 공습 경보가 울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거의는 절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날도 공습이 있었고, 그 쩨바 아돔이라는 소리가 나자마자 온몸이 딱 얼어붙었다. 그래도 그날 거기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원래 스데롯 경찰서 건물이 있던 곳이다. 스데롯에 자주 오는 건 아니지만, 스데롯 맛집들이 다 이 근처라 여기 주차를 하곤 했다. 경찰서 앞 꽤 넓은 공간이 전부 무료 주차였다. 그게 은근히 스데롯 경찰서에 애착을 갖게 했다. 아니, 이 도시는 뭔가 특이하고 정감 가는 면이 있는데, 그 사실이 꽤 어색하다. 그날, 2023년 10월 7일, 이 경찰서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 손에 넘어가고 그로 인해 경찰 20명, 민간인 50여 명이 살해되었다. 너무 잘 아는 풍경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그 황망함, 결국 경찰서는 불타 잿더미가 돼 버렸다.


1년 2개월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스데롯 주민들은 거의 타지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어느 시점인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경찰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을 철거하고 추모비를 세웠다. 유대인들이 추모 장소에 기록하는 성경 구절은 그 장소의 정체성과도 같다. 에스겔 16장 6절. 절로 눈물이 핑 돈다. 너는 피투성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으라. בְּדָמַיִךְ חֲיִי
예레미야와 에스겔 중에 누가 더 비참한지 토론한 적이 있다. 예레미야는 주전 586년 성전 멸망 전후를, 에스겔은 주전 593년 포로기 삶에 초점을 맞춘 선지자다. 에스겔 역시 성전 멸망의 끔찍함을 목격하긴 했다(겔 33). 두 선지자는 개인적인 삶의 비참함에서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하나님은 예언 행위를 위해 예레미야에게 아내도 자식도 갖지 못하게 하셨고, 포로로 매맞고 갇히고 협박에 시달리게 하셨다. 에스겔의 아내는 하루 아침에 죽이시고(이걸 하나님이 하셨다고 해야 할까?) 애곡도 하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건, 정말 만만한 게 아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기를 바랄 정도로 버거운 삶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예레미야에게 더 유리한 면이 있다고 봤는데, 버거운 삶을 오래 버틸 필요없이 일찍 죽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성전 멸망 이후로도 너무 오래, 이 지긋지긋한 민족의 운명에 시달렸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주신 명령이 바로 이것, 피투성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으라, 였기 때문이다. 아뇨. 됐고요. 그만 살겠습니다. 에스겔의 절규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살아내야 했다. 그를 통해 멸망한 성전이 재건되는 환상을 알리셔야 했기 때문이다.

스데롯에 사는 Swissa 가족 이야기는 온 나라를 오열하게 만들었다. 돌레브와 오다야는 30대 초반의 부부로, 6살 로미와 3살 리아 두 딸과 함께 로켓 공격을 피해 탈출하려다가 스데롯 외곽 지역에서 테러리스트를 만났다. 운전 중이던 돌레브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오다야는 차 안에서 비명을 질렀고, 근처에 있던 베두인 아메르 아부 살리야가 그 광경을 보고 이들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 테러범들의 총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달렸는데, 다름아닌 스데롯 경찰서로 온 것이다. 벌써 경찰서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대상이었고, 빈 도로 위에서 아부 살리야와 오다야는 총에 맞아 사망한다. 격전이 벌어진 후 이스라엘 경찰들이 도로 위 버려진 차에 접근해보니, 놀랍게도 뒷좌석 바닥에 로미와 리아가 엎드려 있었다. 문을 연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6살 로미가 물었다. 당신들은 이스라엘 편이에요?אתם של ישראל 경찰은 두 아이를 차에서 구출해 근처 낯선 집의 방공실에 맡긴다. 조부모들이 연락을 받고 도착하기까지 하루가 걸렸다. 아부 살리야의 시신은 16일이 지나서야 가족에게 확인됐다.

그런가 하면 이날 아침, 13명의 은퇴자 주민들이 사해로 여행을 떠났다. 하필이면 대절한 밴의 타이어가 구멍이 났고, 운전사가 그걸 교체하는 동안 사람들은 주위에 앉아 있다가 공습 경보를 들었다. 그런데 정류장 옆의 방공호는 열리지 않았다. 스데롯은 워낙 공습 경보가 잦기 때문에 스마트 방공호를 운영하는데, 평소에는 잠겨 있다가 경보가 울리면 자동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아니, 그렇게 광고를 한다. 그런데 이날 열리지 않았고, 마침 이 길로 테러리스트 밴이 지나가다가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한다. 현재 가족들은 스마트 방공호 관리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중이다. 이들이 만약 방공호에 들어갔다면, 지나가던 중이던 테러리스트들이 멈춰서서 공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이들의 불운은 너무 공교로웠다.

후무스 쉘 트히나, 스데롯의 반짝이는 Jem같던 곳인데, 전쟁 이후 줄곧 버려져있다.
후무스 쉘 트히나, 스데롯
스데롯은 독특한 도시다. 다른 형용사가 안 떠오른다. 참 특이한 곳이다. 일단 가자 지구에서 가장 많이 로케트를 날려보내는 이스라엘 도시다. 아니지, 가자 지하디스트들이라고 텔아비브를 맞
jy4kids.tistory.com

추모비 앞 건물에 새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갑자기 사자? הֶן-עָם כְּלָבִיא יָקוּם, וְכַאֲרִי יִתְנַשָּׂא 이 백성이 암사자처럼 일어나고 숫사자처럼 일어서리라. 민수기 23장 24절 말씀이다. 발람이 저주 대신 어쩔 수 없이 털어놓게 된 이 민족의 미래다.

과연 이 부서진 폐허 속에서 스데롯 사람들은 다시 일어서는 중이다. Oryosss, 이게 커피숍 이름인데 읽기가 힘들다. Or Yossi면 요시(요셉)의 빛인 줄 알 텐데, 뒤에 S가 하나 더 있다. 쉐프 이름이 오르 쇼크론이다. TV 서바이벌 게임에 출연해서 꽤 유명하다. 하지만 텔아비브 부띠크 제과점에 익숙하다면, 막 제과 기술을 배운 초짜처럼 보일 수도 있다. 뭔가 서툴고 투박한 게 나는 좋았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러 여기 오는 것 같진 않다. 다들 엄청난 사연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상하게 마음이 열려 여러 사람과 신상을 나누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공습이 울리면 어디로 가지 꽤 열변을 토했는데, 다행히 먹는 동안에는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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