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100년 만에 가장 건조한, 비오지 않는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농업 분야에는 매우 불길한 뉴스다. 지구가 마이 아파 그런 거니, 손쉬운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매일 염려만 하고 살 수도 없다. 각성한 시민 운동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다. 그저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는 것으로 자기 몫은 한다고 본다.
그래도 유난히 이 세상에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는, 나는 신앙인이라 기도를 하는데, 이 기도가 참 오묘하다. 골방에서 하면 금방 잠이 온다.ㅋ 나는 '몸'도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데, 좁은 곳에서 다리 저림을 느끼는 그게 기도 같지 않다. 성경 속 수많은 인물들이 자연 속에서, 한적한 곳에서 신을 불렀다. 성지 이스라엘에는 '한적한 곳' 에레모스라는 지명조차 있어서 방문할 수 있는데, 거기서 느낀 점이다. 우리가 영으로 신께 다가갈 때, 우리의 몸은 웅크리는 대신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 한다. 구속을 떨쳐내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무속 전통이 강해서 이조차 이상하게 해석될 수 있으니 조심스럽긴 하다.
'에레모스'는 북쪽 갈릴리에 있어서 쉽게 갈 수 없다. 중부지역에서 한적한 곳을 찾자면 쉐펠라에 많은데, 계곡과 계곡이 이어지며 이 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곳이 35번 고속도로다. 아슈켈론에서 헤브론을 연결하는 도로다. 아슈켈론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하나였고, 헤브론은 다윗의 유다 지파가 자리잡은 곳이다. 바로 이 길 위에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대립이 펼쳐졌던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길의 위치는 여간하면 바뀌지 않는다. 고속도로가 아니더라도 이 길을 고대 사람들이 왕복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물론 현대에 들어 헤브론이 팔레스타인 정부 손에 들어가면서 길은 막혔다. 헤브론 가까이 접근하면, 여지없이 테러의 현장이다. 언제 이곳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까.
아무튼 이 길은 사람도 많지 않은데, 듬성듬성 자리한 키부츠와 모샤브들이 엄청난 뷰를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겨울의 한자락, 막 꽃이 피기 시작하면 드라이브 코스로 가히 이 나라 최고다. 사람은 제각각 취향이 다르니 애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슈켈론에서 헤브론 중간 지점이 쉐펠라의 최남단 골짜기 벳구브린이다. 약 5000두남의 광활한 자연공원이다. 한여름을 제외하면 학교와 여행객들이 언제나 붐비는 곳이다. 그나마 한적한 시간이 욤쉬쉬, 샤밧 전의 오전 시간이다. 차를 세워두고 한참 트래킹을 한다.
위쪽으로 가면 Bell Caves가 나오고,
이쪽으로 들어서면 St. Anne's Church를 지나 Sidonian Cave로 이어진다.
12세기 십자군이 세운 St. Anne 교회의 Aps가 남아 있다. 안나는 마리아의 어머니다. 그리스 정교회는 물론 꾸란에서도 마리아를 숭상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부모 안나와 요아킴은 아랍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벳 지브린의 아랍 거주민은 이곳의 지명으로 Sandahanna를 지켰다. 이곳에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얼마나 많았을 텐데, 그걸 이겨내고 일부나마 버티고 선 장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12세기 유물, 그것도 교회 건물이 뭐 대단히 중요할 리가 없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덕분에 나의 힐링 장소가 되었다. 로마형 아치가 반절이나마 엄청난 에코를 만들어내서 노래 연습을 하는 데도 좋다.
벳 구브린은 히브리어로 'house of strong men'의 뜻이다. 로마 시대 이 도시 이름이 Eloitropolis, city of free men이었던 것과 관련돼 있다. 무슬림 시대에는 아랍어로 벳 주브린으로 불렸고, 십자군은 이를 라틴화해서 Jiblin이라 불렀다.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지, 스튜디오 지브리와 상관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본어 지브리는 Ghibli, 사하라 사막에 부는 바람을 뜻한다. 저분들은 발음은 저렇게밖에는....
그런데 로마인이 당도하기 전 헬레니즘 시대 이 근처에 유대인 거주지가 있었다. 마레샤מראשה다. 히브리어 머리ראש와 관련된 이름이다. 마레샤는 하스모니아 왕조의 중요한 요새였다. 헤롯대왕의 아버지 안티파스는 유대교로 개종하고 마레샤에 머물렀다. 마레샤에서 발견된 안티고누스의 동전에는 7촛대 메노라가 새겨져 있는데, 동일한 이미지를 현재 이스라엘 동전 10agorot에 사용한다. 마레샤 유적지는 공원 입구쪽에 더 가깝다. 아랍어로는 Tel Sandahanna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유물청이 운영하는 고고학 발굴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라, 돈 내고 땅 파러 오는 팀들로 시끄러워서 나는 즐겨 찾지 않는다.
벳구브린 공원에 동굴이 대략 500개인데, 이런 동굴도 포함되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아니, 할 수 있지 않나? 답은 듣지 못했다. 쉐펠라 지형에 동굴이 많은 것은 이곳 지반이 라임스톤, 석회암이기 때문이다. 쉽게 물에 용해된다. 생각없이 지나다 보면 잘 보이지 않아서 은신처로 더할나위 없다. 다윗이 500여 갱스터와 함께 은신한 아둘람도 이 근처다. 여지없이 Stalatites 종유석 동굴도 있다.
한여름에 여기 들어가서 앉아 있으면 시원하다.
Bell Caves다. 대형 동굴 3개가 나란히 있는데, 워낙 독특한 풍경이라 촬영 이벤트 장소로 좋다.
10세기 역사학자 알무카다시는 "벳구브린에는 대리석 쿼리가 많다"고 썼다. 벨 동굴은 자연 동굴이라기보다 Quarries에 가깝다. 만들어지는 원리는 이렇다. 지표상 두툼한 바위에 둥글게 shaft를 만든다. 그 아래 지면은 부드러운 chalk인데, 그래서 끌로 쉽게 깎아낼 수 있다. 벨 동굴에 이런 끌 자국이 많다. 벨 모양으로 깎아나간다. 지표상에 있던 바위는 제거한다. 그래서 꼭대기 부분에 구멍이 생기고 그곳으로 빛이 들어온다. 비둘기들이 이 구멍으로 이동해서 그 밑으로 배설물이 쌓인다. 여기는 공원이라 정기적으로 청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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