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건설된 아후잣 하바이트는 일 년 후 이미 텔아비브로 불리고 있었다. 테어도어 헤르쩰이 독일어로 쓴 "유대인 국가"의 히브리어 번역본 제목이다. 그러니까 텔아비브는 유럽의 시오니스트들이 세운 나라의 이름인 셈이다. 아무튼 이 신도시의 성공을 지켜본 유대인 상인들이 역시나 비슷한 방식으로 협회를 구성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과 유대인 기구를 접촉한다. 하지만 은행의 창시자인 유대인이라도 가난하면 융자를 받을 수 없다. 이 나라의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혐오 정서는 이처럼 원천적이다. 당시 사람들은 분노를 터트리는 데 언론을 이용했다. 필명이 랍비 비냐민인 기자가 은행과 유대인 기구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보다 부자를 편애한다고 고발했다. 마침내 1914년, 나할랏 비냐민이라는 거리가 닦이고 1층 주택들이 세워졌다. 텔아비브 최초의 거리가 헤르쩰 Street, 그 다음이 헤르쩰의 히브리어인 '비냐민'의 유산 street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할렛 비냐민 거리는 북쪽이 좀 더 유명하다. 중간쯤에 레빈스키 시장이 있고, 그 아래쪽은 거의 할렘 수준이었다. 최근 gentrification 영향으로 제법 멀쩡하게 재건축되었고, 그에 비례해 월세가 엄청 뛰었다. 그런 동네에 집을 구매한 친구를 찾아간 날이다.
게토. 텔아비브는 이스라엘 다른 지역과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예루살렘과는 절대 상종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다수다. 아마 일년에 한번도 예루살렘에 가지 않는 텔아비비안들이 많을 것이다.
shoetossing, shoefiti. 이날이 2024년 6월 15일이었다. 재기 넘치는 고발정신보다는, 많은 이들의 죽음을 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스라엘처럼 문화층이 다양한 곳에서는 선뜻 의미를 헤아리기 어려워서, 슈피티가 유행하기 어렵다.
한낮에 친구가 내놓은 리몬첼로. 리몬첼로는 술이 아니란다. 아니, 이름이 이탈리안 리쿼인데? 나폴리와 아말피 이야기를 한참 했다. 폼페이 고고학 박물관에서 지내면서 해가 지면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 하는 삶에 대해서도. 이탈리아도 유대인을 반기지 않을 테지만. 참, SSC 나폴리 서포터스 이름이 '처녀들의 목소리'다. parthenope.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세이렌 중 하나의 이름. 1899년 이스키아 해에서 시작된 Russo 패밀리의 피스타치오 디스틸토리.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맛이다. 테라스 밖으로 문 닫은 상점들이 보인다. "내가 나를 위할 때 나는 무엇인가?"
그리스 이민자들이 만든 동네라는 걸 보여주는 건물이다. 1층은 상점들이고, 그 위로 주거지다. 베란다의 뚫린 구멍은 그리스 주택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더운 지방에서 자연 환기 역할을 했다. 비가 오면 빗물이 잘 빠지게도 도왔다. 최근에는 베란다도 넓혀서 사용해야 하니 막아버린 집도 많다.
냉장고에 알콜만 즐비하지 먹을 게 없다. 바로 옆에 레빈스키 시장이 있다. 사실 여기 생긴 베트남 반미 먹으러 오라고 초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샤밧인데? 맞다. 전쟁 시작하고 재택 근무만 해서 요일 개념이 없어진 터였다. 그래도 나가보자고, 레빈스키 시장을 돌아다녔다.
언제 여기 다시 활기가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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