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미구닛מיגונית은 보호장치를 가리키는 '미군'에 이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ית를 첨가한 형태로, 이동식 콘크리트 방공호다. 외국인이 이런 용어를 배워야 하는 나라는 새삼 얼마나 기구한지. 네게브나 가자 인근에는 이런 미구닛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외관이라도 예쁘게 하자며 지역사회가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곤 한다.
가자 인근 키부츠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232번에는 교차로마다 미구닛이 있다. 알루밈, 브에리, 레임 순서인데, 이들 미구닛을, 그날 2023년 10월 7일 있었던 일 때문에 미구니옷 하마베트מגוניות המוות, 죽음의 방공호라고 부른다. 6시 30분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기습과 함께 노바 음악축제 현장에서 빠져나온 많은 이들이 미구닛에 몸을 피했다가 대부분 살해됐기 때문이다. 올해 이스라엘을 대표해 유로비전에 출전하게 된 유발 라파엘은 브에리 미구닛에서 살아남았다.
유발 라파엘, 그날의 생존자
올해도 이스라엘은 유로비전에 출전할 대표자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 세계, 특히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강렬해진 마당에,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대표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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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 교차로의 이 미구닛에는 27명이 있었다. 노바 축제 경비원 중 하나였던 오사마 아부 아사, 오르와 에이나브 레비 부부, 리도르 레비, 니짠 라훔, 아디 카우프만, 아네르 샤피라, 헤르쉬 골드베르그-폴린, 아옐렛 아르닌 (TV 뉴스 11 기자), 아미트 벤 아비다, 이타이 반조, 카린 슈바르츠만, 안토니오 마르시아스, 타마르 사멧, 요아드 파르, 샤니 쿠퍼바세르, 세게브 키즈네르, 이본 루비오, 지브 아부드, 에이탄 할리, 이타마르 샤피라, 아감 요세프슨, 알론 오헬, 엘리야 코헨.
아네르 샤피라가 가장 마지막에 방공호에 들어섰다. 아네르는 나할 전투병으로 복무중이었는데 휴가를 맞아 음악 축제에 온 것이었다. 예루살렘 출신인 아네르의 외조부와 외조모는 모두 히브리 대학교의 교수들이다. 증조부인 하임 모셰 샤피라는 하포엘 하미즈라히 정파의 지도자로 이스라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7명 중 하나이다. 아네르는 예루살렘의 종교 시오니즘 고등학교 Himmelfarb 출신이다. 헤르쉬 골드베르그-폴린도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이 학교는 2023년 테러와 전쟁으로 이미 11명의 졸업생을 잃었다.
테러리스트들은 7시 50분 여기 도착했다. 몇 분 뒤 아랍인 오사마 아부 아사가 나와서 이들을 살려 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카메라에는 테러리스트들이 그를 때리고 결국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게 고스란히 녹화되었다. 야네르 샤피라는 깨진 병을 들고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자 테러리스트들이 수류탄을 집어던졌다. 리도르 레비가 가장 먼저 죽었다. 야네르 샤피라는 8번이나 수류탄을 집어 밖으로 나와 던졌고, 결국 RPG 로켓에 맞아 사망했다. 9번째 수류탄을 다른 누군가 밖으로 던졌다. 하지만 10번째 수류탄은 결국 터졌고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했다. 테러리스트들은 부상당한 헤르쉬 골드버그-폴린, 알론 오헬, 엘리야 코헨, 오르 레비를 끌어내 픽업 트럭에 태워 가자 지구로 납치했다. 영상에서 헤르쉬의 왼손이 잘려나간 모습이 확인됐다. 피아니스트인 알론 오헬은 눈과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27명 중 16명이 살해되고, 4명이 납치되고, 7명이 살아남았다.
아옐렛 아이닌은 기자답게 약 3시간에 걸친 학살과 납치 과정을 자기 전화기로 녹화했다. 아옐렛이 살해되고도 배터리가 소진될 때까지 녹음이 이어졌다. 레임 미구닛의 학살을 진두지휘한 무함마드 아부 아티위는 하마스 누흐바 부대 사령관이자 UNRWA의 직원이었다.
2024년 9월 1일 헤르쉬 골드버그-폴린은 다른 5명의 인질과 함께 가자의 지하 터널에서 총살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IDF 군대가 가까워지자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을 죽이고 탈출한 것이다. 2025년 2월 8일 인질 협상에 따라 오르 레비가 풀려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홀로코스트 생존자" 같이 보인다고 했던 3인 중 하나이다. 오르는 마중나온 형 미할에게 헤르쉬 골드버그-폴린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이들은 다같이 지하 터널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고문받았는데, 한 팔을 잃은 미국 시민권자인 헤르쉬가 먼저 나가서, 당연히 인질 협상에 따라 풀려난 줄 알았던 것이다.
오르가 돌아오면서 함께 끌려간 알론과 엘리야의 생존 사실도 전해졌다. 엘리야의 여자 친구 지브는 그날 축제 현장에서 함께 탈출해 같은 미구닛에 몸을 숨겼고 시체 더미 속에 숨어 있다가 구조됐다. 엘리야는 지브가 살아있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오늘, 2월 10일은 알론 오헬의 24번째 생일이다. 납치될 당시 22살이었던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헤르쉬 골드베르그-폴린의 부모 존과 라헬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all for all 교환을 제안했다. 남은 76명의 인질을 여전히 쇠사슬에 묶어둔 채, 일주일씩 기다려 기념비적인 사건마냥 의식을 치르는 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거냐고 묻는다. 이스라엘 인질들의 생명을 미국 대통령에게 구걸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워싱턴에서 네탄야후 부인은 새로 산 샤넬 백을 자랑했다나 보다. 있는 것도 차려 입을 의욕이 안 나는 이 시국에. 저분이 마이애미 럭셔리 호텔에 체류하며 각종 화려한 이벤트에 참석한 2개월 반 동안의 경비에는 의류비도 포함이다. 전부 다 세금이다. 아니, 하찮은 샤넬백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그나마 살아 있는 인질들을 구출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해외언론은 그날 하마스에 의해 벌어진 잔혹행위를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덕분에 하마스 범죄가 이스라엘이 꾸며낸 거짓이라고 여전히 믿는 '개인적 정의감의 소유자'가 많다. 만약 이 전쟁의 결과로 팔레스타인 국가가 세워진다면, 저런 범죄로 세워진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울까. 올해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하려는 신청자가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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