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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법원

 

 
이스라엘은 문화계 인사를 조망하는 다큐를 잘 만든다. 건축가 아다 카르미-멜라메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를 역시 건축가인 딸 야엘이 제작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하다 보니 자신도 어머니도 다큐에 깊이 관여하게 됐다고 한다. 제목이 Ada: My Mother the Architect다. 
 

어머니가 딸에게 말한다.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 딸이 말한다. 엄만데 당연하죠? 그러자 어머니는 사과한다. 널 오래 떠나 있었잖아. 자녀는 개차반이라도 부모에게 사과하는 법이 없지만, 부모는 자기 삶을 택했다는 이유로도 자녀에게 죄스러운 법이다.
 

 
아다 카르미-멜라메드는 Paul Benny가 그린 상상화 속 유일한 여성이다. 가정을 떠난 게 대순가. 미국에서 테뉴어십을 얻지 못한 터에 이스라엘 공모에 당선돼 돌아왔고, 아직 저학년이었던 자녀들은 남편과 함께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단다. 이스라엘 대법원 건축은 벤자민 로스칠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95년 시작됐고, 2005년 완성됐다. 공모 당선작이 람과 아다 카르미 남매의 설계였다. 카르미 가족은 몇 대에 걸친 건축가 가문이다. 그림에서 두 남매만 흰색 셔츠를 입고 있다. 그 오른쪽에 엘리에제르 라하트 프로젝트 매니저가 서 있다. 건축가들로부터 프레젠테이션을 받는 두 인물이 당시 대법원장 메이르 샴가르와 자금을 댄 제이콥 로스칠드다. 반대편에서 몸을 기울여 건물을 살펴보는 이는 당시 대법원 서기 슈무엘 쭈르 판사, 그 양쪽으로 깐깐한 뿔테 안경은 옥스포드 철학과 교수 아이자야 베를린 경, 하얀 수염은 로스칠드 재단 책임자인 아서 프리드다. 존재감을 과시하는 뒷모습은 이 건축의  초석을 마련한 테디 콜렉 예루살렘 시장과 당시 정부를 이끈 이츠하크 라빈 총리다. 뒷쪽으로 공동 정부를 구성한 시몬 페레스와 당시 대통령 하임 헤르쪼그가 서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걸어갈 수도 있지만, 시네마 시티 건물에서 "대법원 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도 있다. 비루한 세속에서 비범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신선함을 준다. Dorothy de Rothschild의 히브리어 이름을 따라 Ma'alot Devorah로 불린다. 

 
원과 직선을 결합한 대법원 입구는 반대쪽 끝에 뭔가가 있다는 의미심장함을 더해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입법기관인 하크네셋 건물과 직선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의 사법부와 입법부가 정원으로 연결돼 이쪽과 저쪽으로 대칭을 형성하는 것이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그래봤자 52% 지지를 받은 거면서, 사법부를 능가하는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대중독재관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철학일 거다. 애초에 민주주의는 허점이 많은 제도이고, 대중의 선택은 몹시 우매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본 카리스마 넘치는 통치자들이 트렌드인 세상이다. 역사는 저 카리스마가 독재의 아우라임을 증명하지만.   
한편 이스라엘 국회 건물은 1957년 독일 출신 Joseph Klarwein의 설계로 건설을 시작했는데, 유럽 국가들의 국회 건물이 대개 그렇듯, 민주주의의 원형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하누카 명절은 헬레니즘 제국에 대항한 유대인의 유구한 역사의 표현이다. 그런 나라에 떡하니 그리스 양식의 신전이라니, 너무했다. 반발이 커지자 건축자 도브와 아들 람 카르미 부자의 수정안이 채택됐다.     
    

대법원 입구 로비다. 1932년 수케닉 교수가 발굴한 하맛 가데르 회당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다. 1993년에 복원되면서 대법원 건축 당시 마침 핫한 아이템이었다. 리스 안에 새겨진 아람어 비문은 회당 건설에 자금을 댄 이들의 명단이다. 마찬가지로 이 건물 역시 기증자들이 있다는 의미겠다. 신박한 자본주의 반영이다.
 

 
로비를 통과하면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온다. 한쪽은 콘크리트 벽, 다른 한쪽은 예루살렘 스톤 벽이다. 뭔가 대비와 견제의 아우라가 물씬 한다. 뭔가를 감추고 있는 계단 끝에는 예루살렘 풍경이 펼쳐진다.
 

 
도서관을 구성하는 구조물이 피라미드다. 갑자기? 건축에서 원과 사각에 이은 또 다른 구성요소가 삼각형이다. 피라미드가 없었다면 이 구조물이 불완전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바닥 디자인으로 삼각형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축에서는 삼각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던데, 적어도 중동에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텔아비브의 랜드마크인 아즈르엘리 건물도 세 가지 형태로 되어 있고, 주전 1세기 헤롯이 세운 예루살렘 성채의 탑도 세 가지 구조물이었다. 

Foyer, 다섯 개의 법정 앞에 있는 휴게실이다. 법정이 5개인 이유는 출애굽기 18장 이드로의 조언을 근거로 한다. 모세 외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 재판 담당으로 세워진 것이다. 법정의 크기는 모두 다르고, 따라서 참관할 수 있는 대중의 수도 모두 다르다. 
 

이게 중간 사이즈 법정이다. 천정의 구멍을 통해 재판관 석을 비추는 빛이 들어오는데, 당연히 정의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시 85:11)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어느 날 갑자기 독립하느라 국가 시스템을 전부 갖추지 못했다. 모방이 불가피했는데 이전 통치자인 영국이 적절했다. 특히 법률 시스템이 그랬다. 일반 법원인 샬롬, 상위 법원인 마호짓, 대법원으로 구성되는데 3심제도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소송액수나 범죄 형량에 따라 마호짓 법정에서 재판을 시작하는 경우, 대법원에서 2심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대법원은 재판이 너무 잦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인구 대비 법조인 숫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심심하면 소송한다. 게다가 이스라엘 대법원은 항소심을 위한 재판 외에도 바가츠, 즉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특이한 법정이 있다. 이스라엘 국민뿐 아니라 외국인도 가능하다. 이스라엘 정부가 내게 부조리한 일을 했으면 이스라엘 바가츠에 소송하는 것이다. 소송비가 2500셰켈 정도인데, 형편이 어려우면 면제도 해준다. 다만 이렇게 소송이 많다보니 이스라엘 대법관들은 격무에 시달린다. 이스라엘에 헌법이 없는 것도, 헌법을 구성할 만한 국가적 합의의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데 (물론 이들은 합의할 의사가 없지만), 이런 제도적 불완전함 때문에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유대인에게 재판 제도는 70인 장로제도(민 11)가 있고 이것이 하스모니아 왕조 시절 산헤드린으로 이어진다. 탈무드는 70년에 한 번 사형을 선고해도 살인재판소라면서, 재판을 통해 목숨을 빼앗는 데 거부감을 표한다 (그래서 자기들은 예수를 죽인 적이 없다고...). 이스라엘 사법부도 이 전통 속에서 사형을 처벌의 방법으로 여기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아돌프 아이히만이 교수형에 처해져 바다에 재로 뿌려진 바 있다. 2023년 10월 7일 테러리스트에 대한 처벌을 검토하면서 새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포로 교환을 통해 석방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요즘 이스라엘 대법원은 네탄야후 재판으로 더욱 분주하다. 곱게 재판받고 처벌받을 의사가 없는지 재판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구차한 시간을 끌고 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유죄 증거가 확실한데도 감옥에 안 갈 것 같다. 재판이 굽는 것은 그 사회가 부패했다는 대표적 증상이다. 감옥 가야 하는 사람이 감옥 안 가려고 사법부를 농락하는 것도 요즘 세상의 공통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빠지지 않으니, 선진국 맞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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