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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ister Anne, Maronites Church

프랑스어 하시는 수녀님들 너무 좋다. 내가 못 알아들어도 크게 구애받지 않으신다. 굳이 말로 의사를 소통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게 대단히 힙해 보인다. 실브플레 이시,에 환하게 웃어 주시더니, 엉코르 윈뿌아, 하거나 말거나 가버리신다. 

레바논 국기가 들어왔으면 해서 인물을 작게 찍었다가, 다시 보니 십자가까지 들어와야 했다. 이쪽 나라들은 어지간하면 기원전 1300년부터 시작한다. 은유와 상징의 카테고리가 넘쳐날 수밖에. 

 

마론파 교회는 창립자 St. Maro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주후 4세기 안디옥 근처 산에서 수도사로 살기로 결심한 인물이다. 역사상 최초로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던 지역에서 태동한 것이다. St. Maron은 일평생 금욕적인 삶과 기도로 보냈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남다른 카리스마를 보였다. 그의 생활 방식을 본받기 위해 그가 살던 곳 주변으로 많은 수도원이 생겨났다. St. Maron은 410년경 사망했지만, 그의 정신과 메시지는 수세기 동안 살아남으며 발전하고 번성해 왔다.


451년 가을, 교회는 칼케돈에서 공의회를 열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밝힌다. 창시자가 죽은 지 40년 가량지났지만 마론파 공동체는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칼케돈 공의회 안에서 재확인했다. 레반트 지역의 교회들, 시리아,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 등 역사적 예수의 기억을 간직한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칼케돈 공의회를 이탈한다. 이후 마론파 공동체는 주변 정교회에 의해 수도원이 강탈당하고 수도사들이 살해되는 긴 핍박의 시간을 맞이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이 이슬람 침략을 계기로 깊숙한 레바논 산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수세기 동안 살면서 수도원의 전통과 자신들만의 신학적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097년 십자군은 예루살렘보다 안디옥에 먼저 도착했고 일부 마론파가 십자군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마론파는 유럽의 기독교, 특히 프랑스 및 교황청과 관계를 강화했고, 오늘날까지 로마 가톨릭에게서 단절되지 않았다. 

1291년 십자군이 Acce를 탈출하면서 이집트의 Mamluke이 새로운 레반트의 주인이 된다. 

1367년 이슬람에 의한 새로운 핍박이 시작되고 수많은 수도사들이 살해된다. 마론파 일부가 Quadisha 계곡으로 피신한다.

1510년 오토만의 통치가 시작돼 1918년까지 이어진다. 마론파는 레바논 산 전역으로 흩어졌고 일부는 전혀 다른 세계, 유럽으로 이주했다. 오토만은 마론파의 상대적 자율성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고, 마론파 근처에 사는 Druze와의 사이에 갈등을 부추긴다. 결국 1860년 대학살이 일어난다. 360개 마을, 560개 교회, 50개 수도원이 파괴되고 20,000명이 사망했다. 그 결과 마론파는 전 세계로 흩어졌다(*유대인만 디아스포라가 아니다.) 이어지는 1차 세계 대전에 마론파의 3분의 1이 죽거나 망명했다. 종전 후 그들의 정체성과 독립은 다시 한번 위협을 받지만, 당시 총대주교 엘리아스 호와예크(Elias Howayek)는 프랑스의 위임통치 하에서 레바논의 자치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1922년 레바논의 독립이다. 

중세 이후 마론파는 뛰어난 양육 방식으로 "길러졌다." 16세기 말 로마에 마론파 대학이 설립되는데, 당연히 사제 양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제들이 18세기 서방 선교사들이 오기 전 레바논 교육의 중개자였다. 레바논의 기독교인, 특히 마론파는 나중에 이 지역의 아랍 르네상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론파는 동방 기독교 공동체지만, 로마 교황청과 긴밀한 유대를 갖고 있었고 라틴식 전례를 채택했다. 최근에 전례 개혁 운동이 일어나면서 크게 수정되었다. 시리아 안티옥 교회는 전례 언어로 시리아어를, 예루살렘 마론파 교회는 아랍어를 사용한다. 

현재 마론파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데, 약 백만 명의 가장 큰 공동체는 여전히 레바논에 있다. 총대주교는 Maronite patriarch of Antioch and all the East라는 칭호를 가지고 전 세계 마론파 교회를 이끄는데,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Bkerke에 거주하며, 여름에는 Quadish Valley에 있는 Diman으로 들어간다. 

(*Bechara Boutros al-Rahi, 현재 추기경이자 마론파 총대주교이다. 헤즈볼라의 위협을 무릅쓰고 2014년 프란체스칸 교황 방문에 맞춰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Holy Land에서 마론파는 주로 갈릴리 지역에 있는 9개의 회중 공동체에 약 7,500명의 신자로 파악된다.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영토, 요르단을 총괄하는 총대주교가 하이파에 있고, 예루살렘 마론파 교회는 올드시티 안에 있다. 

 

레바논이 1차 독립을 할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의 협약을 맺었다. 마론파가 대통령, 이슬람 수니파가 총리, 이슬람 시아파가 국회의장을 맡는다는 것이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진다(이게 흔들렸을 때 레바논 내전이었던 거다). 2022년 10월 31일 현 대통령 Michel Aoun의 임기가 끝나 국회의 간접선거로 새로운 대통령이 뽑힐 예정이다. 요르단 대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 Tracy Chamoun이 후보로 나서고 있다. 트레이시 샤문은 공개적으로 헤즈볼라를 비판했는데, 무슬림에 암살당한 아버지와 형제들처럼 될까 봐 걱정이다.  

 

레바논 종교의 다양성은 안타깝게도 이 나라를 내전으로 몰아넣은 일차적인 원인이었다. 1975년 레바논 내전은 마론파와 이슬람 및 드루즈 및 팔레스틴 난민들의 대립이었다. 이스라엘은 1982년 남부 레바논에서 국경을 넘어와 테러를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파다윤을 소탕할 목적으로 레바논 영토를 침범했다. 그리고 끝이 없는 나락으로 끌려가다가 2001년 퇴각했고, 결국 2006년 다시 2차 레바논전쟁을 치렀다. 지금은 헤즈볼라와 싸우는 중이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영화 Waltz with Bashir를 보시라. 

 

예루살렘 올드시티에 있는 마론파 수도회 안에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와 순례자들을 위한 호스텔이 있다.  

마론파 교회 엠블럼에는 라틴어와 시리아어로 이사야 35장 2절 일부가 기록돼 있다. "레바논의 영광을 얻을 것이다." 이때 주어는 광야와 메마른 땅이다. 한가운데 있는 레바논 백향목을 상징화한 것이 마론파의 십자가(with 3 horizontal bars)다. 총주교좌를 상징하는 crosier, a pastoral scepter가 보인다.

 

                      레바논 백향목이 새겨진 교회의 제단.                                여기가 식사 자리이다.

 

사실 마론파 수도회의 가장 큰 장점은 3층에 있는 발코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특히 샤밧이 시작되고 온 천하가 휴식에 들어간 것처럼 고요해지는 때, 이 발코니에 앉아 주님 교회들을 바라보는 건 벅찰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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