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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누가 유대인인가?

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에는 기본법이 있다. 이 기본법은 이스라엘 국가가 유대인의 역사적인 고향이고, 현재 유대인의 유일한 민족 국가라고 선포한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인, 베두인, 드루즈인, 체르케스인 등 다양한 소수 인종은 이스라엘 국가가 Jewish Peoplehome이라는 진술에 불편함을 느낀다. 논란 끝에 2011년 이스라엘의 기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결론은 여전했다. 이스라엘의 애국가 하티크바의 적합성, 이스라엘 공용어에서 아랍어 배제 등은 대단히 논쟁적이다.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민족 국가라면, 그럼 유대인은 누구일까?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혈통적 인종적 특징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에 있다. 유대인 국가에서 유대인 부모에게 태어나 이스라엘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당연히 유대인이다. 문제는 이민자이다. 유대인은 누구나, 어디에서 태어났든 이스라엘 시민이 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이것이 귀환법 Law of Return. חוק השבות이다. 이민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1950년 처음 제정됐는데 유대인은 이스라엘로 이민할 수 있고 이민자 비자를 받는다고 적혀 있다. 아무도 유대인을 규정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죽는 마당에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이라고 나설 사람이 있겠나? 다시 말해 당시 유대인은 상식적으로 판단했다. 유대교 할라하 규정을 따른 것이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이다.

 

유대인 규정이 없지는 않았다. 이들을 조직적으로 멸절하고자 했던 나치가 정한 규정이다. 유대인의 외모적 특징을 숫자로 표기했던 나치는 가계도를 따져서 조부모 4명 중 세 명이 유대인이면 유대인이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 수상 벤구리온은 여기에 도전하는데, 네 명의 조부모 가운데 한 명만 유대인이어도 유대인이라면서, 이런 사람의 이스라엘로 이민을 허용한 것이다. 초창기 귀환법의 문제점은 오히려 다른 단서에 있었다. 질병이 있는 사람은 이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건강을 잃은 이들을 겨냥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핑계로 국가를 세웠으면서 정작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외면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이 귀환법의 단서를 든다.

 

하지만 벤구리온의 입장은 확고했다. 끔찍할 정도로 비곤했던 그 시절,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여 국방비 지출이 막대한 신생 국가로서, 재정 부담을 상승시키는 요인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미 이스라엘은 전 국민에게 의료 혜택을 무료로 시행하는 시스템을 운영중이었다. 귀환법은 선호하는 이민자를 분명히 규정했는데, 젊고 건강한 남성, 구체적으로 군대에 가서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음이 의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이었다. 국가를 지키고 건설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귀환법의 허술함은 문제점을 노출한다. 이민자 중에 종교적 비유대인, 다시 말해 기독교 개종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유럽에서 많은 유대인 어린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독교 기관에 맡겨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독교인으로 길러진 경우도 있고, 스스로 개종한 경우도 있었다. 이 복잡한 문제가 기독교 수사로서 성지에 있는 기독교 기관에 살기 위해 이민을 신청한 유대인으로 인해 폭발한다. 오스왈드 루페이슨, 다니엘 형제로 알려진 카르멜 수도회의 수사이다.

 

אח דניאל (אוסולד רופאייזן) נספח לפרק "מיהו יהודי"

אוסוולד רופאייזן נולד בפולין בשנת 1922 להורים יהודיים ונתחנך על ברכי היהדות. בנעוריו היה פעיל בתנועת נוער ציונית והיה כשנתיים בהכשרה חלוצית כהכנה לעלייתו ארצה. כשפרצה המלחמה בין גרמניה לרוסיה, ביוני 1941, הוא נכלא על-ידי הגסטאפו, אך ברח. לאחר שהצליח להשיג תעודה המעידה שהוא גרמני-נוצרי, הוא עבד כמזכיר וכמתורגמן בתחנת המשטרה הגרמנית בעיר המחוז מיר. כשהיה במיר הודיע ליהודים פעמים רבות על מזימות הגרמנים ועל תוכניות פעולותיהם נגד היהודים. כאשר נודע לו שהגרמנים עומדים לחסל את גטו מיר, הודיע על כך ליהודי העיר והסביבה וסיפק להם נשק. על סמך ידיעות אלה נמלטו רבים מהגטו והצטרפו לפרטיזנים. מישהו הלשין עליו, והוא נחקר על-ידי הגרמנים ונכלא, אך שוב ברח

במשך תקופה ארוכה הוא מצא מקלט במנזר, ובהזדמנות הראשונה הצטרף אל הפרטיזנים הרוסים. בשנת 1942, כשהיה במנזר, הוא התנצר, ובשנת 1954 לבש מדי כומר, וניתן לו הכינוי "האח דניאל". הוא בחר להיכנס למסדר הכרמליטים, כי רצה  להצטרף למנזר הכרמליטים בארץ. בזמן מלחמת השחרור, ופעמים רבות לאחר מכן, ביקש לעלות לארץ, אך הרשות ניתנה לו רק בשנת 1958. בכל פניותיו לשלטונות הפולניים הדגיש האח דניאל כי אף-על-פי שעבר לדת הנוצרית, הוא לא חדל להיות יהודי לאומי הקשור בלבו ובנפשו לעם היהודי. הפולנים העניקו לו תעודת מסע מן הסוג הניתן רק ליהודים העולים לישראל והעוזבים את פולין לצמיתות". כלומר, מבחינת ארץ מוצאו הוא עלה לישראל כיהודי

 

오스왈드 루파이센은 폴란드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대교 배경 속에서 교육받았다. 폴란드 미르 지역에서 독일 기독교인 신분증을 위조해 게슈타포를 위한 통역자로 일했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유대인에게 전달했다. 결국 동쪽에 있는 더 깊숙한 수용소로 옮겨져 죽을 운명이었던 미르의 유대인들은 루파이센의 정보 덕분에 살아남아 파르티잔 활동에 합류한다. 결국 루파이센은 신분이 드러나 체포됐지만 탈출해서 수도원에 몸을 숨긴다. 그곳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다니엘 형제가 된다. 1954년 수사의 삶을 선택했고 이스라엘 땅에 있는 카르멜 수도회에 입회한다. 이스라엘로 이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이민을 요구했던 루파이젠은 1958년에 가서야 허가를 받는다(당시 폴란드는 희생된 유대인 300만 명의 재산권 등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여력이 없었고 국가 건설의 동력인 인구를 빼앗기는 이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1957년 극적인 협정이 체결되는데 이스라엘로 이민하는 유대인은 폴란드 국적을 포기하는 것이다).

1958년 마침내 이스라엘에 도착한 다니엘 형제는 신분증에 유대인으로 표기되기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그의 유대인 권리를 거부하기로 결정한다. 다니엘 형제는 최고 인권 법정 바가츠에 항소했고, 재판관 4대 1의 판결로 거부된다. 이때 다니엘 형제를 유대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판사의 논리가 가장 법리학적이었다. 역사는 진화하고, 유다 민족은 가장 큰 역사적 변화로서 국가를 창설했는데, 당연히 유다 민족의 가치와 정의는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환법에는 누가 유대인인지 결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들어 있지 않아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문제점이 있고, 법 자체가 규정하지 않는데 그 때문에 누군가를 그 법의 효력으로부터 배제해서는 안 되므로, 다니엘 형제의 종교나 소속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 국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1970년 귀환법을 개정한다. 유대인이란 '어머니가 유대인인 자'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서가 첨가되는데, 자발적으로 종교를 개종한 인물은 귀환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 다니엘 형제는 이미 폴란드 국적을 포기했기 때문에, 당장 유대인 국가의 시민권을 얻지 못해 무국적자가 됐다. 카르멜회 수사로서 영주권을 먼저 얻고 그 이후 이스라엘 국적을 얻었다. 유대인 국가로부터 유대인이라는 인정은 끝내 받지 못했다.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드바쉠은 다니엘 형제가 유대인을 구원한 공로를 인정해 '열방의 의인'으로 선정했다. '외국인'에게만 주는 상이다. 

 

귀환법은 유대인의 정체성 외에도 복잡한 사회적인 시대상황으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이스라엘로 이민을 이용해 법의 처벌을 피하려는 범죄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당시 라스베가스를 주름잡던 마피아 중에 메이어 란스키가 있었다 (하비 키텔이 란스키 역을 맡은 영화도 나왔다). 미국 연방법에 따라 수배된 란스키는 귀환법을 이용해 이스라엘로 도피했다. 미국은 당연히 수배자 신병 인도를 요구했고, 이스라엘은 코너에 몰렸다. 결국 란스키는 미국으로 송환됐고 죄값을 치렀지만, 이스라엘은 향후 사태를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고,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의 이민을 거부하는 수정안을 마련한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을 인종주의 논쟁으로 몰고가는 의견들도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나 독일 같은 나라도 선호하는 이민자 그룹을 법으로 규정해 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법체계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의 귀환법을 쉽게 비판하기는 어렵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기독교 사제의 삶을 산 이는 다니엘 형제만이 아니다. 2021년 욥바의 카톨릭 성베드로 교회의 사제 그레고르 파블로프스키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폴란드 고향에 닥친 나치에 부모와 형제들은 살해당하고 9살 소년 혼자 살아남아 여기저기 도망치다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로 성장한 것이다. 그의 유대인 뿌리를 되찾아주자는 크라우드 펀드가 마련됐다. 88세에 사망한 그레고르 신부의 운구는 이들의 도움으로 폴란드 고향으로 옮겨져 유대교, 기독교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이야기는 신부의 딸이 등장하는 다소 파격적인 전개를 맞는데, 2018년 작성된 고인의 유언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욥바의 아파트와 자동차와 예금을 폴란드에 있는 딸에게 모두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교회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요즘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צוואת הכומר היהודי: הירושה תועבר ל"בתו" בפולין או לכנסייה?

ימים לאחר הלווייתו של גרגור פבלובסקי בפולין, הוגשה בקשה דחופה לרשם לענייני ירושה וממנה עולה כי הותיר צוואה משנת 2018 ולפיה רכושו שכלל דירה בי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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