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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다롬 아돔, 2월의 네게브 축제

가자 스트립 인근의 네게브 지역은 로켓포 공격을 자주 받는다. 로켓이 날아오면 아이언돔이 마주 발사돼 공중에서 폭파해야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사이렌이 울린다. 아이언돔이 100퍼센트 방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렌 소리가 참, 심란하다. 절대 적응되지 않는다. 암튼 그 사이렌이 울리면 거리에 따라 짧게는 10초, 길게는 1분 안에 마마드라고 하는 두꺼운 벽이 있는 보호소로 들어가야 한다. 최근에 지어진 집들은 모두 마마드를 구비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역사가 100년 넘는 텔아비브 같은 도시에 마마드를 갖춘 집은 거의 없다. 우리 집에도 없다. 그래서 밤중에 사이렌이 울리면 옷을 주워 입고 최근 재건축으로 마마드를 구비한 옆집으로 뛰어가는데, 1분 안에만 가면 된다. 잠귀가 어두운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사이렌 소리에 잠을 못 깰 일은 없다. 그 정도로 끔찍한 소리다. 옆집 마마드에 모이는 사람이 대략 15명 정도다. 사전에 그 집으로 뛰어가겠다고 미리 연락을 해놓은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전부 도착한 것 같으면 철문을 닫는데, 아이언돔이 발사되거나 공중 폭격은 그대로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내 느낌에는 지진과 비슷하다.

 

이스라엘 중부나 북부는 가자의 로켓포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덜하다. 그래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남부 네게브가 로켓포 공격을 받는 중'이라는 것이다. 남부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들 고유의 축제에 차용했다.

즉 겨울이 끝나고 봄이 다가오는 2월 한 달, 남부지방에서 피기 시작하는 칼라니트, 즉 아네모네 맞이 축제를 '다롬 아돔' 붉은 남부라고 표현한 것이다. 트라우마라고는 OO 줘버린 대단한 분들이다.

 

꽤 여러 해가 지나서 적응이 된 줄 알았지만 올해 '다롬 아돔' 축제에서도 여지없이 흠칫한다. 며칠 전 예루살렘 일대에 테러가 번지면서 이스라엘 공군에 의한 가자 공습이 있었고, 그에 대한 로켓포 공격으로 남부 지방에 사이렌이 울렸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사이렌이 울리면 차 왼쪽에 엎드려야 하나, 차를 돌아가서 오른쪽에 엎드려야 하나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그런 곳을 왜 가냐고? 글쎄, 인간이 죽을 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삶은 어쨌든 계속돼야 하니까. 

 

여차여차 꽃은 대충 보고 친구 집에 들렀다. 코하브 미하엘이라는 이름의 모샤브다. 미하엘 소벨이라는 어마어마한 영국 부자의 이름을 딴 모샤브다. 1960년대 이스라엘의 재정을 책임졌던 핀하스 사피르는 전 세계 부유한 유대인을 끌어다 이스라엘 모샤브나 키부츠와 자매결연을 맺게 했다. 덕분에 많은 모샤브가 부유한 유대인의 기금을 받아 운동장이나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을 갖출 수 있었다. 자선 행위는 유대교 미츠바의 일부기 때문에 어쨌든 해야 하는 의무이므로, 기왕이면 유대인 나라에 하시라, 그런 취지였던 것이다. 

 

최근에 코하브 미하엘에 Caravaggio란 이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생겼다. 코로나로 다들 문을 닫는 마당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다롬 아돔 축제 기간에 그야말로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음식 맛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모샤브다운 소박함이 편안하다.

'미하엘의 별'이란 이름의 모샤브에 왜 갑자기 카라바조일까. 화살을 날리는 큐피드가 제격인데. 하긴, 식당 이름이 큐피드면 너무 노골적이긴 하다.  

 

얼핏 멸치볶음 같아 보이지만 아티쇽이다.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

포카챠. 오랜만에 집에서 포카챠를 구워볼 생각을 갖게 했다. 

연어 Carpaccio. 카라바조에서 카르파초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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