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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반기독교 테러

비아 돌로로사의 두 번째 처소인 Church of the Condemnation and Imposition of the Cross (저주를 받으며 십자가 진 장소)에서 테러가 일어난 건 2023년 2월 초였다. 유대계 미국인 관광객이 벌인 일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미디어는 공식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SNS로 소문만 들었다. 거의 매주 새로운 순례팀이 도착할 때라 머지 않아 이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쓰러진 동상은 그대로 제단 앞에 놓였고 빨간 스카프들이 둘렸다. 아직도 세상의 저주를 받고 있는 왕이신 그분. 사실을 알 리 없는 순례자들이 동상이 왜 저러냐고 묻는데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답니다.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이런 말을 즐겨 한다. “중동에서 기독교인에게 안전한 곳은 오직 한 곳, 이스라엘 국가뿐이다.” 여전히 이 말이 옳다고는 여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예수 믿는다고 말도 못 꺼내는 거 맞으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느끼는 안전함이 10년 전과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 나라는 변하고 있다. 

 

특히 수사복을 언제나 착용해야 하는 정교회와 라틴교회 사제들이나 수녀들은 상시적으로 테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아르메니안 수사들과 교회에 대한 하레딤의 조롱과 괴롭힘은 이미 뉴스거리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라틴교회에 대한 미움은 교회 건물과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난다. 바티칸이 소유하고 있는 성지의 부동산들에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일 테니까.      

 

그중에서도 기독교 묘지가 주요 테러 대상이다. 경비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니까. 시온산에 있는 개신교 공동묘지에 유대 종교인 청년 두 명이 밤중에 들어와 30구가 넘는 묘지를 파손하고 갔다. 카메라가 있어서 범인들을 잡긴 했는데, 미성년자란 모양이다.  

 

이 테러가 어이 없었던 것은, 첫째 유대인이 시온 산 묘지의 중요성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 여기는 마이클 알렉산더, 사무엘 고바트 같은 개신교 사제들 외에도 플린데스 페트리, 콘라드 칙, 제임스 스타키 같은 성지 고고학의 대가들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단지 기독교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은 역사적 인물들이다. 적어도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이라면 이곳을 타종교 묘지 이상의 역사적 공간으로 볼 줄 아는 문화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

 

사순절이 시작된 주일 아침에는 그리스 정교회 사제들이 마리아 무덤 교회 앞에서 테러를 당했다. 27살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는데, 충격이 적지 않았다.  

 

물론 어느 나라에나 정신병자는 있기 마련이고, 정부가 개별적인 사건사고를 다 책임질 수도 없다. 이스라엘 경찰 역시 이런 일을 저지른 이들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인물들이고, 연속된 테러 공격에는 연관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반기독교 테러가 우파 정부 이후 확산됐다는 것은 통계가 말해준다.

 

매우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자신들에게 보호자가 있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전에도 그들은 이런 일을 하려고 생각했겠지만 경찰의 통제가 강하고 정치가들의 후원을 받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감히 하지 못했다. 우파 정부가 들어서고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이 주먹을 들어도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곧 고난주간이다. 테러 위험이 있으니 기독교 행사 시 유의하라는 안내문이 도착했다. 기가 막히다. 그래도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은 참을 것이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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