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이다. 2023년 7월 24일.
올해 1월 초부터 29주 동안 끌어온 이스라엘의 사법개혁안이 법제화되는 날이다. 그동안 정부는 한다고, 반대측에서는 하지 말라고 29주 간 씨름해 오면서 천사 같은 말만 오가진 않았다. 원래 싸움이 길어지면 안 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은 23주였다. 우리는 충분할 만큼 쪼개졌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나.
이스라엘 국회의원이 연설을 하다 말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 백성이 이렇게까지 극렬히 쪼개진 것은 2차 성전 붕괴 이후 처음이란다. 마침 다가오는 수요일 저녁부터 그 멸망의 참사를 기념하는 티샤베아브다. 그때 주후 70년 여름, 유대인은 하나되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았다. 적어도 시기를 늦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메시아니즘에 사로잡힌 이들은 예루살렘 성문을 걸어잠그고, 식량고를 불태우고, 도망쳐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을 난도질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 죽어야 메시아가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20년 앞선 바울은 메시아가 언제 다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메시아를 기다리느라 손놓고 있는 사람들을 나무라기도 한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왜 메시아가 와서 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길 기대했을까. 히브리어 표현이 있다. שהמדינה הזאת תישרף 이 나라가 불타버리길. 이 말을 한 사람이 현 총리의 부인이다.
ביבי הוא מנהיג שהוא גדול על כל המדינה הזאת, הוא באמת מנהיג בקנה מידה לאומי. במדינה הזאת כולם רוצים להישחט ולהישרף? יאללה למה הוא צריך להתאמץ כל כך? נעבור לחוץ לארץ. שהמדינה הזאת תישרף. המדינה בלעדי ביבי לא תחזיק מעמד. אנשים כאן יישחטו
비비(베냐민 네탄야후)는 이 나라 전체보다 더 큰 지도자, 진정 국가 차원의 지도자다. 이 나라에서 모두가 도살당하고 불태워지는 꼴을 보고 싶어? 어서 해봐. 왜 비비가 이렇게 노력을 해야 하지? 우리는 외국으로 나갈 거야. 이 나라가 불타버리길 바래. 비비 없이 이 나라는 지탱할 수 없어. 이곳 사람들은 도살당할 거야.
때는 2002년 9월, 리쿠드가 둘로 쪼개질 때였다. 결국 아리엘 샤론이 선거에서 이기고 비비는 정치판에서 사망한 것처럼 보였다. 2008년 하레딤과 미즈라힘이 구원해주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 정치가의 아내로서 사라 네탄야후가 겪어야 했을 스트레스에 공감한다. 하지만 자기 남편을 저버린다고 이 나라가 다 불타버리길 바랄 정도면 정치를 그만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본인이 심리학 석사니 잘 알아서 하겠지만. 당시에 부부가 모두 부적절한 언사에 대해 사과했지만, 이 말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장기집권하는 총리는 점점 더 자주 위기를 만났고, 그때마다 이 말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가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고난을 감내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망친 것 다 불바다가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지난주, 그러니까 나라의 절반이 28주차 길거리 데모에 나가 있는 동안 네탄야후 총리 부부는 갈릴리 바다에서 보트를 즐겼다.
총리도 쉬어야지. Lido 일식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크루즈로 옮겼단다. 갈릴리 바다에서 나는 생선은 걍 구워 잡숴.
40도에 육박하는 대낮에 모자도 안 쓴 저분들 패기 봐라. 다음날 총리는 병원에 입원한다. 국민 여러분은 모자도 쓰고 물병도 소지하시라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그의 문제는 심장이었다. 다음주 pacemaker를 부착하는 수술을 받는다. 아무 이상도 느끼지 않고 건강하단다. 그래 보이지 않는데. 뭐, 총리의 건강 문제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이니 그걸 뭐라 할 건 아니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물씬한 29주차 샤밧,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하고 간사케르에 텐트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밤샘 시위를 하는데, 총리는 법제화를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국방부장관과 라마트칼과 전직 샤바크 안보 인사들이 이라믄 안돼 하는데 굽힘이 없다. 무슨 소신이면 나라가 이 모양인데 그래도 밀어붙일까? 그럴 가치가 있어서?
헤르쪼그 대통령이 나섰다. 지난주 워싱턴 가서 기립박수 받고 오셨다. 받은 건 돌려줘야 하니 총리와 야당 대표를 중재하고 나섰다. 소용이 없다. 이 와중에 네 단어가 미디어에 떠돈다. אדוני הנשיא חנינה או מדינה 대통령 각하, 사면 아니면 국가올시다. 네타냐후는 자신의 재판이 계속되는 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무너져도 상관 없는 게 아닐까.
원래 이 백성은 민주주의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십만 명의 우파가, 정착민들이 대부분으로 보이지만, 텔아비브 카플란에 모여 법제화를 지지한다고 집회를 가졌다. 나는 이들의 진심도 이해가 간다. 민주주의 대신 신정정치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여성이 페미니즘에 물들어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는 걸 응징해야 한다는 사람들이다. 랍비의 권위가 여성 재판관보다 가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이들이다. 게이나 레즈비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정죄와 저주부터 받아 마땅하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말이지 민주주의가 밥맛일 것이다. 지금 네탄야후 총리는 이들과 한편에 서 있다. 그걸 가장 끔찍해 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네탄야후 본인이라는 게 패러독스지.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까지 행진했다.
75년 동안 숱한 위기를 통과해온 이 나라를 그런 이들의 뜻대로 둘 수 없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과거 불법의 대명사였던 벤그비르나 슈모트리치가 다스리는 법치의 현재와 미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들이다. 데리와 가프니와 골드크노프 같은 하레딤 정치꾼들이 약점을 가진 총리로부터 자기 몫을 받기까지 협잡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이들이다. 아마도 그 몫은 현재의 불평등이 계속되는 것이고, 무지한 종교적 신념을 강요당하고 무엇보다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은 개나 줘버리는 현실이 될 것이다. 모두 이 나라의 비용으로 말이다.
이 마당에 정신 차려야 할 사람들은 우리 총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를 시전하는 리쿠드 유권자들이다. 그들의 믿음은 만트라다. 심리학적으로 "확증 편향"에 가깝다. 선택적 정보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거나 편향된 방식으로 정보를 해석할 때 발생하는 편향이다. 과도한 자신감을 유도하고 증거가 모순적인데도 신념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편향으로 인한 잘못된 결정은 정치적 맥락에서 매우 흔하다.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 지긋지긋한 후보단일화 과정을 몇 번 겪었다면 충분히 알 것이다.
나는 지쳤다. 내 나라가 아닌데도 너무 내 나라같은 익숙한 풍경에 넌더리가 난다. 공황 장애가 이런 건가 싶게 숨을 쉴 수가 없다. 23일 카플란에서 연설한 이번 정부 저 놀라운 장관들의 수준에 누구보다 숨막혀할 사람이 네탄야후일 것이다. 자기 내각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혐오를 느끼는 당사자일 테니. 네탄냐후는 정말 사면을 원해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역사에 자기 이름이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도 정말 상관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속시원히 알고나 싶다.
국회 표결을 앞두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물대포부터 쏘면 나라가 이상한 거다.
안보와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쏟아지는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라마트칼을 만나지도 않고, 통치자로서 카메라 앞에서 해본 적 없던 행동까지 불사하며 네탄야후 총리는 이 법을 통과시켰다. 마침 이날은 아브월의 6일, 367년 전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가 한 철학자에게 헤렘, 공동체 추방을 선포한 날이다. 바루흐 스피노자, 무지한 종교의 저주를 받았지만 그의 철학과 사상은 성서 비평의 출발이 되었고 정치와 신학과 윤리의 관계에 이정표를 세웠다. 그의 말을 되새긴다.
I took great pains not to laugh at human actions, or mourn them or curse them, but only to understan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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