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보다 정확히는 도쿄 올림픽 전후로 스기하라 지우네(국립국어원 표기는 참 중구난방이다)는 유태인을 구한 홀로코스트 영웅으로 떠올랐다. 도쿄의 교육위원회가 2018년 발행한 "(학생들의) 일본인으로서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선조들의 뛰어난 업적"을 담은 유인물 대부분이 스기하라에 관한 내용이다. 1939-1940년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외교관이었던 스기하라가 1940년 유럽을 탈출하려는 유태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나치의 연맹이었던 일본은 이제 와서 희한할 만치 유대인과의 연대에 힘을 쏟는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를 내세워 같은 희생양으로 그려지길 바라는 것 같다. 전 세계 사랑받는 일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집착 같기도 하고.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한 놀라운 영웅은 언제나 기억되고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게 의도적인 과장과 선동의 일부라면 엄정한 조사는 불가피하다. 쓰루가 항구는 유대인 난민이 도착한 곳인데 이곳에 2017년 스기하라의 박물관이 세워지고 그의 동상이 만들어졌다. 현대사 교과서에도 실렸고 만화 시리즈와 영화로도 만날 수 있다. "역대 최고의 일본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부 카톨릭 신자들은 스기하라가 성인으로 시성되기를 희망한다.
이렇게까지? 일본의 수퍼 히어로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부득이하게 늘어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일본이 자신들의 2차 세계대전 행적에 대한 비판을 면피하기 위해 스기하라를 인도주의의 상징으로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원래 외교관으로서 스기하라의 업무는 비자 발급을 포함하지 않았다. 1939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부임한 그의 업무는 소련의 군사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통과 비자 소문이 나자 이를 바라고 유대인 무리가 스기하라의 집 밖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스기하라는 2140건의 통과 비자를 발급했는데, 일부는 전 가구에 적용되었다. 하지만 모든 비자가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이 숫자를 근거로 스기하라가 6000-7000명 사이의 유대인의 탈출을 도왔다는 주장은 무리다.
스기하라의 통과 비자는 유대인 난민의 탈출을 돕는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 일본을 경유하는 유대인에게 일본은 어쨌든 최종 목적지 허가증을 요구했고, 비자 면제 지역으로의 이주에 도장을 찍어준 당시 카우나스의 네덜란드 영사 Jan Zwartendijk의 업무가 유대인 구출에 더 결정적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또 이들의 이주과정은 돈을 댄 유대인 단체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스기하라는 이 기간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한 유일한 영사가 아니었고 비자를 발급한 모든 영사가 영웅이 되지도 않았다.
일본이 전후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새로운 영웅이 필요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능하면 위안부 문제 같은 껄끄러움을 피하면서 그 일을 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 여기에 이스라엘의 협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68년 홀로코스트 기념관 Yad Vashem은 스기하라를 Righteous Among the Nations 메달 후보로 지명한다. 하지만 최초 지명 이후 16년 동안 영예를 얻지 못했다. 야드바쉠이 이 메달 수여에 전제로 삼는 것은
첫째, 몇 명이든 유대인의 목숨을 구하되
둘째, 이에 상응하는 어떠한 대가를 받지 않고
셋째, 자신의 목숨이나 직업적 지위를 위험에 빠뜨렸는가 여부다.
스기하라의 경우 셋째 기준이 모호했기 때문에, 그가 받은 것은 그의 행동에 대한 인정 증명서였다. 새로운 증거와 생존자들의 증언이 제시되고 마침내 스기하라는 1984년에 의인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1984년이면 레바논과의 갈등 속에서 이스라엘의 이미지가 바닥을 칠 때였다. 일본은 적군파 인연으로 레바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야드바쉠이 열방의 의인을 지명하는 데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주장은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만하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스기하라를 인정한 것은 2000년 스기하라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 때부터다. 2012~2020년 아베 신조 총리 재임 기간 스기하라의 영웅화 과정이 절정에 이른 것이다.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활동에 대한 수정주의적 견해와 일본 군비 증강에 대한 열망이 가장 컸던 시기이다.
연구자라는 직업은 세상 만물에 의문을 갖고 여기 도전하는 게 일이다. 찝찝한 걸 어쩌겠나.
'Peop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너드 번스타인, 영화 마에스트로 (0) | 2023.08.18 |
---|---|
이레네우스 1세 (0) | 2023.08.16 |
예루살렘 추기경 임명 (0) | 2023.08.01 |
네탄야후 총리는 뭘 바라나 (0) | 2023.07.25 |
크리스 프룸,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0) | 2023.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