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한 이스라엘 대사 투비아 이스라엘리가 한국 TV 방송이나 기독교 라디오 채널에 출연해, 이스라엘 호감도를 높이려고 애쓰는 모양이다. 영어도 잘하고(이분이 원래 미국 사람인 거지만ㅋ), 매너도 훌륭한 외국 대사가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 같으니 호감이라는 평이 과연 많다. 과거 이스라엘 출신 대사들이 안보를 우선으로 행보를 해 왔다면 (우리나라에는 친팔레스타인 조직도 많으니까), 요즘은 상황이 좀 더 여유로운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나는 내막을 모르지만) 이스라엘 대사의 행보 변화는, 주일본 이스라엘 대사의 영향일 수도 있다. 길라드 코헨 주일본 대사는 그 보수적인 일본 방송에 출연해 일본 요리를 해 가면서 자신이 일본을 사랑한다고 최선을 다해 알리는 중이다.
길라드 코헨 대사 트위터에서
이 사진 보고 깜놀! 히로시 아베가 언제 적.. DCU deep crime unit 라는 TBS 주말극이다. 저런 영어가 일본인에게 최선의 조합인가. 이스라엘 대사가 트윗도 하고 그래서 어지간하면 보려고 했는데, 어휴. 2022년 일본은 이스라엘과 캐나다와 외교관계 70주년을 기념했다. 코헨 대사 옆에 있는 매트 프레이저는 캐나다 대사관에서 Public affairs를 책임지는 인물이다. 일본어를 잘해서 자주 화제가 되는 인물이다.
아무튼 코헨 대사의 열과 성의 덕분에 2022년 이스라엘과 일본의 현안들이 많이 해결됐다. 일단 직항. 드디어 새해 3월부터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일본 도쿄 간 직항이 개통된다. 이스라엘이 직항을 갖는다는 건, 그냥 항공사와 제휴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스라엘 정보요원의 활동을 보장받았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항공기를 타는 승객들에 대한 정보가 완전 공개되는 것이다. Defense MOU가 전제다. 외교관계 70년이나 됐는데 이제야 두 나라가 직항 개통하는 수준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 친팔레스타인 정책과 정서가 압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도 10년 전에 한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까지 팔레스타인이 우리 우방이었다).
2022년 5월 28일 일본 적군파 창설자 Shigenovu Fusako가 20년 형기를 마치고 석방됐다. 1974년 헤이그 주재 프랑스 대사관 납치 및 살인 미수 배후로 지목돼, 25년 수배 생활 끝에 2000년 11월 일본에서 체포됐었다. 남에게 비치는 인상을 중시하는 일본이 해외에서 악명을 떨친 테러조직 수장에게 고작 20년형을 언도한 것도 이상하지만, 그 인물이 풀려났다고 심상치 않은 환영인파가 몰린 게 놀라웠다. 명문대 출신으로 이뤄진 적군파에 대한 일본 사회의 동경과 향수가 남아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시게노부 석방 기사를 다루기는 했을 것이다. 운동권 출신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이스라엘만큼 관심을 받진 못한 것 같다. 이스라엘은 시게노부의 행보를 여전히 주목하고 있다.
70년대 강경파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으로 블랙셉템버(검은 9월단)와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PFLP가 있었다. 블랙셉템버는 요르단에, PFLP는 레바논 베카 계곡에 근거를 두었는데, 이들의 주된 활동이 항공기 납치와 이후 몸값 교섭으로 조직의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이 테러 방식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클 때라 일본의 적군파도 이를 모방한다. 일본 항공을 납치해 평양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다. 어찌어찌 우리나라 김포 공항에 착륙해 인질들은 풀려나고 테러리스트는 북한으로 갔다(이 사건 왜 영화로 안 나오나). 이후 입지가 줄어든 일본 적군파는 산악투쟁을 내세우며 북쪽으로 침투했다가 1972년 2월 아사마 산장 사건을 마지막으로 검거된다. 시게노부와 남편 오쿠다이라 쓰요시가 이끄는 일본 적군 19명은 레바논으로 가서 아랍 적군의 일원이 된다.
1970년대는 항공기 공중 납치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대다. 이스라엘은 당시만 해도 전 세계 1/4 나라들의 공식적인 적대국이라 항공기 납치의 주요 타겟이었다. 1972년 5월 8일 이스라엘 국제공항에 벨기에 항공기 Sabena 571편이 강제 착륙한다. 블랙셉템버가 브뤼셀에서 비엔나를 거쳐 이스라엘로 오는 항공기를 납치했고, 인질 가운데 유대인을 따로 분리해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팔레스타인 포로 31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때 이스라엘은 납치범과 협상을 진행하는 척하면서 Isotope로 불리는 구조 작전을 펼쳐 4명의 납치범을 진압한다. 이 작전에 투입된 특공대 사예레트 마트칼에 에후드 바락과 베냐민 네탄야후가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이후 재판을 통해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1982년 레바논 전쟁으로 인한 포로 교환으로 다 풀려났다.
이스라엘은 Sabena 사건 이후 당연히 국제 공항의 보안을 강화했다. PFLP는 이를 우회하기 위해 일본 적군파 3명을 발탁한다. 1972년 5월 30일 로마에서 출발한 에어프랑스 편으로 오카모토 코조, 오쿠다이라 쓰요시, 야스다 야스유키가 도착한 다. 점잖은 정장을 갖춰 입고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있는 일본인들이 테러리스트일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외국인 승객 대부분이 성지를 찾은 순례객들이었고, 특히 푸에리토리코의 단체 순례자들이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스라엘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등장에 의아함을 느끼긴 했다고 한다. 세 명의 일본인은 가장 먼저 수하물을 찾는 곳에 도착해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 들어있던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꺼내 사람들을 향해 난사했다. 푸에르토리코의 순례자 중 17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 시민 8명, 캐나다 시민 1명까지 전체 26명이 살해됐고, 부상자는 71명이나 되었다. 테러리스트 야쓰다는 동료 오쿠다이라가 쏜 총에 맞았고, 오쿠다이라는 수류탄이 터지면서 사망했다. 일본의 할복 관습에 익숙한 이들은 이것을 자살 폭탄 테러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남은 테러리스트 오카모토 코조는 활주로로 나가 막 착륙한 다른 비행기를 향해 발포하다 총에 맞고 체포됐다.
이때 희생된 이스라엘 승객 중에 국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국립 과학원장 아하론 카찌르가 있었다. 그의 동생 에프라임 카찌르가 바로 다음해 이스라엘 대통령이 된다. 당시 이스라엘 공항에서 승객들이 수하물을 찾는 곳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항 바깥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가족이나 지인들을 맞기 위해 공항에 나온 사람들은 입국장 바깥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도착하는 것을 먼저 눈으로 맞이했다. 지금은 이 사건의 여파로 입국장이 삼엄한 감시 속에 있지만, 당시만 해도 고국에 도착한 기쁨을 서둘러 맛보도록 이런 낭만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리창 너머에서 가족의 도착을 기다리다 이 살인 테러를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이 많다. 아하론 카찌르 교수의 가족들도 그랬다. 카찌르 교수는 국가 VIP이기 때문에 승무원에 의해 가장 먼저 입국 절차를 밟도록 인도되었고, 가족들과 창문 너머로 재회의 기쁨을 나누자마자 맨앞에서 테러리스트들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체포된 오카모토 코조는 이후 이스라엘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스라엘은 사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체포 직후 신원을 확인하러 온 일본 외교관에게 오카모토는 범행 동기를 진술했는데,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아무 유감도 없지만, 국제 혁명군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감옥에서 유대교로 개종을 신청하고 손톱깍기를 사용해 스스로 할례를 했다고 전해진다. 13년을 복역하고 난 1985년 레바논 전쟁에서 포로가 된 이스라엘 군인들을 데려오기 위한 포로 교환으로 풀려나 레바논으로 갔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성공적인 테러를 벌였다는 이유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도 아흐메드로 바꾼 채 50년 동안 레바논에 거주하며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2022년은 이스라엘 공항 테러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테러를 일으키며 온갖 폐를 끼친 일본 적군이 대략 50명에 달하는데 이중 일본 정부가 체포에 성공한 이들은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희생자와 자신들을 동일시하느라 애쓰는 일본은 이스라엘 공항에서 자국민이 일으킨 테러에 대해 상당한 피해 보상금을 전달했다. 일본인의 범죄 때문에 일본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대개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자국의 사회적 모순으로부터 발생한 테러 조직에 그 나라 정부와 국민이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져야 하나?
시게노부 후사코는 외모가 뛰어난 명문 대학 출신이라는 것으로 큰 관심을 받곤 했다. 됴코대학 야스다 강당을 불태우는 학생 운동 시절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는 전공투의 마돈나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국제적인 테러 활동을 벌일 때는 테러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외모와 학벌만 우선시하는 나라들은 테러리스트의 여성성조차 희한하게 다루는 법이다. 레바논으로 건너갈 때 오쿠다이라 쓰요시와 결혼관계였지만 위장 결혼이라는 설이 있고, 오쿠다이라가 이스라엘 공항 테러로 숨진 지 9개월 후에 태어난 딸 메이 시게노부의 아버지는 PFLP의 팔레스타인 요원이었다고 한다. 시게노부는 1975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주재 미국 영사관 테러에 관여한 혐의로 인터폴의 수배를 받기 시작했는데, 숨어 살아야 하는 어머니 덕분에 딸 메이는 어머니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레바논에서 학업을 마쳤다. 2000년 시게노부가 일본에서 체포된 후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시민권을 얻었다. 영어와 아랍어에 능숙한 뛰어난 미모의 시게노부 메이는 일본에 있는 중동 방송국의 언론인으로 일한다는 모양이다.
올해 76세의 시게노부 후사코는 자신의 석방 순간을 담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 지난날 자신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사과했다. 시게노부가 말한 무고한 사람의 범주에 이스라엘 시민이 들어가지 않나 보다.
반 년 만에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시게노부를 인터뷰했다. 테러리스트에게 스피커 노릇을 해주는 언론이 있다는 데 친일본 이스라엘 대사 길라드 코헨은 놀란 것 같다. 네, 일본에서 적군파는 그런 존재랍니다. 게다가 이 인터뷰에서 시게노부는 "부고한 희생자들에게 사죄한다"고 했던 석방 당시 멘트와 달리, "학살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네, 원래 저분들의 본심은 심장 깊숙한 곳에 있어요.
시게노부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화학자 아하론 카찌르가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인 화학 물질을 개발했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다. 길라드 코헨 대사의 트위터가 다시 분주하다. 긴 말 할 것 있나. 카찌르 박사의 유가족은 어서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하시라.
이스라엘이 일본을 사랑하고 일본 문화를 높게 평가하는 거 충분히 이해한다. 좋은 걸 어쩌겠나. 사쿠라 흩날리는 하루노 닛폰에 직항 타고 가는 즐거움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해외여행을 기피하는 이들의 방문을 진흥시키려고 "섬세한 일본인들을 보다 정중히 맞아야 한다"고 특별 기고하는 게 외교의 출발이다. 그러나 길라드 코헨 대사여, 조금 더 겪어 보고 말씀하시라. 그때까지 간바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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