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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

최근에 책방에 잘 안 간다. 재미가 없다. 전에는 안 그랬다. 모든 편집인이 영혼을 팔아 제목을 뽑았는지, 히브리어 타이틀이 전부 너무 대단했다. 여기에 이런 단어를 쓰는구나, 그렇게 히브리어 공부를 했다. 그 다음에 어린이책 코너로 가서 일러스트를 보았다. 히브리 어린이 문학 자체도 대단하지만 이스라엘의 일러스트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책은 한국에 소개하면 좋겠다, 찍어놓곤 했다.

 

그림책의 세계는 잔인할 만큼 인구 비례다. 제작비에서 상당한 고정비를 차지하는 일러스트를 사용해 3천 부 카피가 고작이라면 수지를 맞추기는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1쇄 천 부 찍는 게 고작이다. 히브리어 시장이 그렇게 작다. 유발 하라리 책도 영어판이 대박 안 났으면 3부작 못 채웠다. 그런데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미 비주얼아트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넘어간 작가들도 많지만 일종의 재능 기부로 책을 낸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전만 못하다. 쇠락하는 모든 것은 가슴 아프다.

 

 

 

ממוזגת החלב ועד המוות של דודו גבע: כשתולדות האיור הישראלי קיבלו טוויסט

זאב אנגלמאיר (שושקה), קרן כץ ולילך רז חוגגים את גדולי האמנים הישראלים דרך "ההיסטוריה המטורפת של האיור הישראלי", סדרת צילומים קומית ששחזרה רגע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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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논쟁적인 행위 예술가 제에브 엥겔마이어와 포토그래퍼 리라흐 라즈, 케렌 카츠가 색다른 "이스라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를 선보였다. 이들의 천재성과 유머에 웃다가, 이들의 코믹에 대한 애정에 뭉클해진다. 이런 재능이 세상을 그래도 살 만하게 느끼게 해주지 않나. 예술로서 사진의 영역은 또 이렇게 확대된다. 이런 장르를 일컫는 용어가 곧 생기겠지. 레퍼런스 포토쯤?

 

이스라엘 최고의 만화가이자 Haaretz의 카투니스트 두두 게바는 2005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향년 54세. 자신의 자화상인 캐릭터 요세프와 독특한 부리를 지닌 오리를 창조했다. 그런데 이 죽음을 프랑스 혁명 시기 좌파 몽타뉴 파의 지도자 장폴 마라의 암살에 견주었다. The Death of Marrat (1793). Marat가 들고 있는 편지에서 유명한 구절 "당신의 자비를 구해야 한다니 나의 불행으로 충분하다"가 두두 게바에게도 적용되어야 할까?

 

 렘브란트의 1632년 작 "니콜라스 툽 박사의 해부학 수업"을 오마주한 "미쉘 키슈카의 첫 번째 코믹 수업"이다. 해부학과는 달리 참고 도서가 따로 없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미쉘 키슈카는 벨기에 출신으로 1974년 이스라엘로 이민해서 히브리대의 예술대학 베짤렐 아카데미에서 가르쳤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아버지로 유명하다. 

 

예수가 싫어 죽겠다는 유대인 나라 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사진으로서 이 작품의 심오함은 비율에 있다. 이런 장테이블을 찍으려면 천장을 다 날려야 하는데 콘트리트 건물을 용케도 구했다. 내용은 더욱 심오하다. 한가운데 (그분 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이 디자이너 유발 사아르이다. 2014년 일러스트레이션 위크를 창설한 인물이다. 전 세계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일러스트레이션을 소개하고 전시하며 작품을 구입하게 이끄는 장이었다. 과거형이 된 이유는 폐지됐기 때문이다. 2018년 11월, 재정 지원 부족으로 제5차 전시전이 취소됐음을 알리는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요즘은 텔아비브 시청 온라인으로 명맥을 실낱처럼 유지하고 있다. 

 

1818년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차용한 인물은 다비드 폴론스키, 2008년 이스라엘 애니메이션 영화 "바쉬르와 왈츠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의 스튜디오에 있는 이미지들도 동 애니의 풍경을 담고 있다. 레바논 전쟁의 트라우마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성공은 이스라엘 일러스트레이션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이 사진 때문에 엄청 웃었다. 작품 제목이 "다니 케르만(*담배 문)과 요시 아불라피아가 카페 카씨트에서 만나다"이다. 카씨트 카페는 텔아비브 디젠고프 거리에 있던 전설적인 문학가들의 단골 카페다. 지금은 spicehaus라는 바로 변신했다. 오마주 작품인 에드가 드가의 랍생트 (L'Absinthe)와 비교해 봐야 웃긴 지점을 알 수 있다. 드가의 작품은 "카페에서"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랍생트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받아 놓고 있는 술의 이름인데, 환각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이를 즐겨 마신 예술가들은 불행한 종말을 맞이했다. 파리의 퇴폐적이고 암울하며 단절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다니 케르만과 요시 아불라피아의 카페 테이블에는 딸기와 꼬치가 놓여 있다. 또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있다. 각자 자기 작품을 보고 있지만. ㅋ 다니 케르만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 것에 번역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중고품 가게를 찾은 피븐을 담고 있다. 오마주한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 (1964). 이스라엘 일러스트레이터 하누흐 피븐은 인물의 초상화를 제작하기 위해 다양한 물건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 본인은 며칠이고 특정 물건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 어느 날 피븐이 가게에 들어서다 초상화 인물의 코를 사과로 사용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피븐과 르네 마그리트의 숨은 연관성이 이 작품 때문에 비로소 이해되었다.  

 

하누흐 피븐은 이런 작품 활동을 한다.

폴 매카트니, 호나우지뉴, 스티븐 호킹, 아인슈타인, 카스트로, 프로이드 정도는 알아볼 만하다.

 

그랜트 우드의 "아멘리칸 고딕"(1930)을 오마주한 "이스라엘의 이미지를 신경쓰는 이들" (1972)이다. "아메리칸 고딕"은 아이오와에 있는 고딕 양식의 집에 살 것 같은 사람들을 작가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구현한 건데, "청교도적 옹고집으로 꽉 막힌 인물"을 표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드는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찔려서 오해하는 거라고 말해서 더 열받게 만들었고.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표현의 자유와 애국주의 사이에서 언제나 갈등을 빚기 마련이다. 외부에 비치는 모습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못 견디는 부류도 있다. 국뽕 예술에 매진하는 이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제에브 엥겔마이어의 찰라의 표정 연기에서도 어딘지 도른자의 면모가 엿보인다. 코믹 작가인 제에브 엥겔마이어는 1990년대 '쇼슈케'라는 캐릭터를 발표했는데, 체온이 일반인보다 높기 때문에 언제나 알몸이다. 독특한 개방성과 행복한 충동성 때문에 꽤 인기를 얻었는데, 10년 후, 2000년대 3D로 진입해 현실 세계에 나타났다.  

 

텔레토비로 변신한 이스라엘 수상 비비, 모음 하나 붙여서 바이바이로 만들었다. 3D 쇼슈케는 데모 현장에서는 스타지만, 알몸의 쇼슈케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외설이나 성적 모욕감 등을 호소하기 때문에, 종종 체포되기도 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아담을 만들었다는 영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것이 제에브 엥겔마이어가 쇼슈케와 공감하고 있는 씬으로 표현했다. 천사들 역할의 줄무늬 수용복은 의도된 거였을까?

 

그저 감탄이 나온다.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쇼슈케의 알레고리를 전달하는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작품이 'Salon de Paris'의 엄격한 고전주의 규격을 벗어난 탈락품 Salon des Refusés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외설성과 퇴폐성으로 공격을 받은 것도 공통점이다. 신화나 종교나 역사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그린 점에서도 그렇다. 사실성 없이 애매한 배경을 그린 것도 쇼슈케의 비현실성과 닿아 있다. 그러면서도 오직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 여성처럼 쇼슈케는 자기 세계와 소통하지 못하면서도 대중의 공감을 기대한다. 

 

Uri Fink의 Zbeng 코믹 시리즈의 탄생을 묘사하는 장면은, Vermeer의 the Art of Painting에서 레퍼선스를 갖는다. 우리핑크의 대표 캐릭터가 Sabraman인데, 마블이 제작할 캡틴 아메리카에 여성 캐릭터 사브라가 등장한다. 고소를 했나 안 했나. 

 

페르미어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은 데 비해 재료값을 엄청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the Milkmaid의 압권은 하녀의 파란색 앞치마를 표현하기 위해 lapis lazuli 청금석을 썼다는 것이다. 왜 이 작품일까. 일라나 자프란은 고양이 스파게티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그린 칼럼으로 유명하다. 고양이를 위해 우유를 붓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묘사하는 헨리 퓌슬리의 "악몽"을 재현했다. 가위 눌림, 혹은 수면마비 현상의 원인을 섬뜩하게 그린 작품이다. 내 악몽 속에 방문해 나를 누르는 괴물의 존재라니, 진짜. 그런데 이 레퍼런스를 이용한 작품이 얼마 전 작고한 "아리에 모스코비치가 치포포 꿈을 꾸다"는 제목이다. 치포포는 코피코와 함께, 타마르 보른슈타인 라자르가 창조한 유명한 원숭이 캐릭터다. 아리에가 그린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이야기를 잘 바쳐주었다. 아리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IDF의 휘장들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레퍼런스 삼아 "사람이 없는 작은 마을을 건너는 나훔 구트만"이라는 제목을 내놓았다. 나훔 구트만이 1959년 발표한 그림책 제목은 "작은 도시와 적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떤 성격의 사람이 착안할 수 있는 걸까. 

 

이 정도면 웃기지도 않는다. 이 작가들은 그냥 천재다. 2000년 다니엘라 런던 데켈이 내놓은 그림책이 "하무디"다. 작가가 엄마가 되고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연재를 시작했다가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은 캐릭터다. 쿠파트 홀림 클랄리의 상업 캐릭터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 탄생을 라파엘의 Sistine Madonna에 비하다니. 두 꼬마 엔젤 putti를 생략한 게 좀 아쉽긴 하다. 엥겔마이어와 쇼슈케가 할 순 없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