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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바에트하난 (신 3:23-7:11)

신명기 말씀에서 자기 개발 코드를 찾아낸다면 아마도 '기억의 파워'일 것이다. 잊지 않는 것의 유익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들의 긴 역사를 다시 또 다시 반복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해석을 덧붙인다. 유대인이 아닌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왜"를 떠올린다. 왜 이 백성이어야 했을까. 놀라운 일과 두려운 능력으로 다른 민족에게서 탈출해 나온 전대미문의 민족, 불 가운데서 말하는 신의 음성을 듣고 살아남은 민족, 게다가 긍휼이 많으셔서 그들을 버리지도 멸망치도 잊지도 않으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민족이 왜 하필 이들이었을까.

 

왜라는 질문은 사명과 연관돼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사명은 무엇일까. 그들이 사명감을 느끼기는 할까. 유대교는 세상을 개종시키라는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개종하겠다는 세상도 반기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그들은 세상에 영감을 주는 데서 존재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잘난 우리 좀 보세요, 뭐 느끼는 것 없나요, 으쓱. 물론 불리한 조건에서 작은 민족이 살아남아 번창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는 게 왜 중요한 일이 아니겠나. 신명기는 아예 이 작음이 여호와의 선택을 받는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큰자가 아닌 작은 자를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선호하셨다. 창세기에 반복되는 동생의 우세, 다윗의 아들 중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도 연결된 내용이다. 언더독의 반전은 복음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작기에 여호와의 성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커지려고 하는 것, 그것이 위험하다. 

 

티샤베아브에 신명기의 두 번째 파라샤 바에트하난을 읽는다. 바에트하난ואתחנן은 히트파엘 동사의 바익톨 형태로 바에트하넨에서 울티마에 강세를 받아 모음이 열렸다. 

 

1알리야 3:23-4:4
"그때에 나는 여호와께 간청했다ואתחנן."

모세는 누구보다 여호와의 크심과 권능을 알았다. 요르단 강 동쪽에 자리 잡은 둘과 반 지파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허언을 한 게 아니다. 그는 여호와를 알았다. 그래서 자신도 요르단 건너편을 보게 해 달라고 간청했었다. 신명기는 하나님이 모세의 간청을 거절한 게 모세의 잘못이 아니라고 본다. 이 백성 때문에 모세도 구세대의 일원으로 청산되어야 했다. 모세의 남은 사명은 후계자 여호수아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가르침, 모세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는 반복의 말씀인데도 특별한 울림이 있다. 모세는 선포한다. 율법을 가감없이 준행하는 것만이 이 백성이 살고, 약속의 땅을 얻는 길이다. 마침 좋은 시청각 교재가 있다. 그들이 머문 곳이 벳브올בית פעור, 하나님이 바알브올을 따르던 자들을 다 쓸어버리신 곳이다. 

 

2알리야 4:5-40
토라의 준수에서 기억만큼 중요한 게 없다. 모든 것은 보고 느낀 것을 기억하는 데 달려 있다. 자신들도 기억해야 하지만 자자손손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호렙에서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계시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여호와의 직통 계시를 경험했는데, 결정적으로 여호와의 형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여호와는 당신이 유일한 하나님으로 그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알리시기 원하셨기에 당신의 외형을 비쳐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백성을 끌어당긴 끝없는 유혹은 물체화되어 나타날 수 있는 이방신이었다. 대개 우리 신앙의 암초는 하나님이 이것만 해 주시면 잘 믿을 텐데 싶은 바로 그것이기 마련이다. 

 

3알리야 4:41-49
요단 동편의 세 도피성, 베셀 בצר, 길라드의 라못 רמות, 바산의 골란 גולן이 소개된다. 
여기까지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세운 율법이다. וזאת התורה אשר שם משה לפני בני ישראל 

4알리야 5:1-18(또는 5:1-2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 호렙 산에서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상기시킨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백성 모두와 맺은 언약이다. 하나님은 산 꼭대기 불 가운데서 그들과 대면해 말씀하셨다. 백성은 이 불을 무서워해 산에 오르지 못했고 모세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여호와의 말씀은 십계명이다. 출애굽기 20장을 신명기 5장보다 원조로 여긴다. 히브리어로 십계명은 עשרת הדיברות이지만 두 돌판 모양에 써 있다 해서 לוחות הברית라고 한다. 각 계명을 숫자로 읽지 않고, 처음 히브리어 두 자로 부른다. 즉 1계명은 아노히 하쉠, 2계명은 로 이히예, 3계명은 로 티싸, 4계명은 자호르(샤모르) 에트, 5계명은 카베드 에트, 6계명은 로 티르짜흐, 7계명은 로 틴아프, 8계명은 로 티그노브, 9계명은 로 타아네, 10계명은 로 타흐모드다. 첫 알파벳으로만 쓰기도 한다. 

 

 

  1. 나는 여호와다.
  2. (너에게 다른 신을) 두지 말라.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라. 출애굽기 십계명은 '기억하라'지만 신명기 십계명은 '지키라'이다. 그래서 샤밧에 켜는 촛불이 두 개이다. 샤밧 촛대가 파모트פמוט인데 항상 복수형 파모팀으로 쓴다. 
  5.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훔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샤밧을 위해 가정마다 갖추고 있는 장치: 두 촛대 파모팀, 키두쉬 포도주 잔 가비야, 할라 빵과 덮개

 

5알리야 5:19(23)–6:3
하나님이 불과 구름 속에서 큰 음성으로 산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주신 두 돌판에 이 말씀을 새기셨다. 지파의 수장들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백성에게 전해 달라고 한다.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6알리야 6:4-25

  • 슈마 이스라엘과 바아하브타(6:4–9)는 대구다. 여호와가 한 분이심을 들었다면 그 다음에는 마음과 힘을 다해 그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

שְׁמַע, יִשְׂרָאֵל:  יְהוָה אֱלֹהֵינוּ, יְהוָה אֶחָד

וְאָהַבְתָּ, אֵת יְהוָה אֱלֹהֶיךָ, בְּכָל-לְבָבְךָ וּבְכָל-נַפְשְׁךָ, וּבְכָל-מְאֹדֶךָ

 

 

 

  • 슈마 이스라엘과 바아하브타는 자기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자녀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서도 강론하고 길을 갈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손에 매어 표를 삼아야 한다. 또 문설주מְזֻזוֹת 에도 써야 한다. 그래서 유대인의 방방마다, 건물의 입구마다 메주자가 달려 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야포, Jaffa 게이트에 있는 메주자. 이렇게 반듯한 것은 스파라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아슈케나짐 스타일이다. 자파 게이트가 만들어질 때 통치자는 오토만이었고 그들은 스파라딤 유대인의 랍비 수장, 리숀레찌온만을 인정했다. 메주자에 써 있는 히브리어 알파벳 쉰을 슈마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샤다이' 전능자를 가리킨다. 메주자를 적합하게כשר하게 만드는 것이 이 속에 집어넣는 클라프קלף이다. 원래 양이나 염소의 가죽이지만 현대에 들어 특수 코팅한 종이에 영구적인 잉크로 적는다. "슈마 이스라엘" 구절 외에도 (신 6:4-9) 외에도 별도의 메주자 명령 (신 11:13-21)을 깨알같이 기록해 돌돌 말아 집어 넣는다. 아무나 쓸 수는 없고 소페르 스탐(סופר סת"ם 스탐이 토라 스크롤, 테필린, 메주자의 약자모음이다)에게 비싼 값을 주고 의뢰해야 한다. 새 집에 메주자를 거는 예식이 하누카, 봉헌이다.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배부르게 될 때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잊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경배하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을 권면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을 따르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7알리야 7:1-11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일곱 민족 즉 헷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 그들과 통혼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에게서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이고 그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프타라 이사야 40:1-26

티샤베아브 후에 돌아오는 샤밧을 샤밧 나하무 (위로의 샤밧)라고 한다. 나하무로 시작되는 이사야 본문을 읽기 때문이다. 슬픔의 성에서 밤새 눈물 흘린(애가 1:1-2) 백성에게 주어진 화답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2차 성전 붕괴 당시 유대인의 신아트 히남(שנאת חינם 이유 없는 미움)만큼이나 심각한 반목과 대결과 갈등으로 진영이 쪼개져 있다. 종교적 열심으로 불타오르는 이들은 גּוֹיִם כְּמַר מִדְּלִי 통의 한 방울 물밖에 안 된다며 열방을 조롱한다.

슈마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명령의 일부다. 믿음이 특권이면 믿지 않는 자를 경멸해도 되는가. 공의와 사랑에 있어서 최상의 존재이신 신의 존재가 히브리 신앙의 근본 교리라면,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그분께 예배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정의와 사랑의 실천에 있다. 내가 아니라 스피노자가 한 말이다. 유대교는 그런 스피노자를 헤렘했지. 세상의 핍박 가운데서도 유대교를 고급 종교로, 지상에 더 나은 세상을 가져온 유익한 종교로 붙들어준 그 근본적인 태도를 바꿀 참이라면, 논란 많은 다른 종교와 다를 게 뭔지 부디 대답해 보시라. 이 고이, 이방인이야말로 당신들이 퍼붓는 조롱과 참소로부터 위로가 필요한데. 

 

  נַחֲמוּ נַחֲמוּ, עַמִּי--יֹאמַר, אֱלֹהֵיכֶם
 דַּבְּרוּ עַל-לֵב יְרוּשָׁלִַם, וְקִרְאוּ אֵלֶיהָ--כִּי מָלְאָה צְבָאָהּ, כִּי נִרְצָה עֲוֺנָהּ:  כִּי לָקְחָה מִיַּד יְהוָה, כִּפְלַיִם בְּכָל-חַטֹּאתֶיהָ
קוֹל קוֹרֵא--בַּמִּדְבָּר, פַּנּוּ דֶּרֶךְ יְהוָה; יַשְּׁרוּ, בָּעֲרָבָה, מְסִלָּה, לֵאלֹהֵינוּ

- 유대인 DNA와 브라질리언 템포와 포르투기스 액센트가 모여 완성된, 레오나르도 곤살베스의 히브리어 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