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인데 파라샤를 읽고 있다. 다들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그러게. 토라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거나 가까이 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 건 아니다. 파라샤 읽기 8년차인데 파라샤 에케브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매년 휴가 때 맞이하는 파라샤니 건너뛴 해가 많았던 것이다. 내용 자체도 고만고만해서 몇 번을 읽어도 와닿는 게 없다. 신명기 말씀인데, 예수님이 제일 많이 해설하신 책인데 왜 이러지?
에케브는 우리말로 "-니까"에 해당하는 이유 접속사다. 너희가 이 모든 법들을 듣고 지켰으니까, 그 결과 여호와가 하실 일들, 즉 복의 내용이다. 상당히 포괄적인 일반 은총이다. 그러니 복인데도 무덤덤하다. 마침 에케브는 명사로 발꿈치의 뜻도 있다. 형의 발꿈치 잡고 태어난 인물이 야아코브(야곱)이다. 랍비의 파라샤란 대개 이런 워드 플레이에 역점을 두는데, 라쉬는 이 '발꿈치' 부분이 우리가 발로 밟고 있는 계명, 즉 토라에서 덜 중요하게 여기는 계명이라고 보았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사소한 요구사항이 많아지는 것처럼 하나님은 토라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별 자잘한 걸 다 요구하신다. 일종의 타블린, 향신료 같은 계명들이다. 앞선 파라샤 바에트하난에 등장하는 십계명과는 달리 임팩트가 별로 없어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것이다.
1알리야 7:12-8:10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면, 농업과 목축업에서 생산성이 향상되고 인구가 증가하고 질병이 퇴치된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넘겨주신 백성은 모두 먹어야(!) 한다ואכלת. 그들의 신을 섬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방의 신은 이스라엘 백성에 올무מוקש다. 가나안 백성이 많다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여호와가 애굽에 행하신 일처럼 이들에게도 똑같이 행하시고 특히 왕벌הצרעה을 보내시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을 천천히 쫓아내실 텐데 야수들이 번성해 이스라엘을 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진멸에는 전리품 처리 문제가 따른다. 이방의 신상은 불태우고 은과 금을 입힌 것을 간직해서는 안 되며 가증한 것תועבה은 집에 들여서는 안 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만나의 시험이다. 이스라엘은 만나를 통해 사람이 떡으로만לֹא עַל-הַלֶּחֶם לְבַדּוֹ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도 사는 줄 배웠다. 떡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이 살려면 떡도 있어야 하지만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필요하다. 광야를 통과하고 나면 아름다운 땅הארץ הטובה에서 모자람과 부족함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 아름다운 땅에는 밀과 보리,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 올리브와 꿀이 난다.
- 올무 מוקש : 이스라엘은 계명을 잘 준행한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번성의 복을 받게 된다. 이방 민족을 정복하는 것도 먹는 행위로 묘사된다. 그런데 섭식 활동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방의 신들은 이스라엘에게 올무다. 모케쉬는 지뢰로도 옮기는 단어다. 이방의 풍요는 마치 지뢰와 같아서 잘못 건드리면 터지게 되어 있다. 왜 그런지는 다음 알리야에 나온다. 그것이 내 손으로 이룬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이루었지만 그럴 수 있었던 능력이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 왕벌 : 쏘는 침이 있는 hornet, wasp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동맹을 뜻하는 비유다.
한때 밀과 보리가 비슷한 줄도 몰랐다. 세갈래 딴 머리 같은 spike가 보리고, 더 복잡한 게 밀이다. 꿀은 타마르, 대추열매다.
2알리야 8:11-9:3
만나의 시험은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 살 때를 위한 예행 연습이었다. 그것은 내 손의 힘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믿지 않기 위한 경고였다. 그게 모케쉬, 지뢰다. 묻혀 있는 줄 모르고 건드렸다가 터지는 올무. 내 손으로 이룬 것 같지만 그 능력이 여호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기억해야 한다. 게다가 이 능력은 여호와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주셨다.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다.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그분이 주신 만나를 저버린 이들은 틀림없이 멸망할 것이다. 교만이란 단순한 품성이나 인격의 문제가 아니다. 지뢰를 안고 사는 일이다. 지뢰는 밟은 사람만 희생시키지 않는다.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한 은유다.
3알리야 9:4-29
이스라엘이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들이 가진 미덕 때문이 아니다. 여호와가 이 땅의 현재 거주민들을 쫓아내신 이유는, 첫째 그 거주민들의 사악함 때문이고, 둘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기 위해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종일관 여호와를 노엽게 했을 뿐이다.
- 호렙 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 모세는 산에 올라 40일 밤낮 빵과 물을 먹지 않다가 여호와가 주시는 언약을 새긴 돌판 두 개를 받았다. 그동안 백성은 우상을 부어 만들었는데, 두 돌판을 들고 산을 내려오던 모세는 이를 보고 그들 눈앞에서 두 돌판을 깨뜨렸다. 다시 하나님 앞에 가서 40주야를 금식했을 때 여호와가 모세의 말을 들으셨다. 이때 아론조차 망할 뻔했는데 모세가 중재했다. 모세는 송아지 우상을 불살라 빻아 먼지로 만들고 그 먼지를 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에 뿌렸다.
-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하다아와에서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
-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을 때 그들은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았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기로 작정하셨는데, 모세가 40일 동안 엎드려 생각을 바꿔 달라고 기도했다. 이들이 여호와의 백성이고 여호와의 지분נחלה이기 때문이다.
4알리야 10:1-11
모세는 돌판 두 개와 나무 궤ארון עץ 를 만들어 산에 오른다. 여호와가 모세가 깨뜨린 처음 돌판에 있던 십계명을 다시 새겨주시고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둘째 돌판을 궤에 넣었다.
모세라 מוסרה (호르 산)에서 아론이 죽고 엘르아살이 대신하여 제사장이 되었다. 굿고다와 욧바다를 지난다. 굿고다는 민수기 33장에서 '홀하깃갓'으로 나왔다. 희한한 발음은 차치하고 이 두 지명이 왜 중요했을까? 여기에 시내가 많았고, 이곳에서 레위인이 구별돼 언약궤를 메고 성막에 섰기 때문이다. '욧바다'란 이름 자체가 스포일러이다. 야타브יטב 아름답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아름다운 땅으로 들어섰음을 가리킨다.
5알리야 10:12-11:9
이스라엘아,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마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וּמַלְתֶּם, אֵת עָרְלַת לְבַבְכֶם이다. 심장에 포피라니, 그걸 베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랍비 문학은 마음에 쌓이는 정욕을 잘라내고 정화하는 작업으로 이해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길로 행하며, 그분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것은 고아와 과부를 위한 정의, 나그네를 위한 사랑으로 표현된다. 낯선 이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보편적인 미덕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구원 경험으로 소급하는 것은 이스라엘밖에 없다.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행하신 그분이 이스라엘의 찬송תְהִלָּתְךָ이다. 트힐라는 할랄, 할렐루야와 관련된 단어지만 '시편 모음집'을 가리키기도 한다. 시편에 그분을 향한 영광과 감사만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좌절과 탄식과 원망을 그분께 흘려 보낸 결과 역시 트힐라다.
여호와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로 이스라엘이 목격한 그 큰 일이 요약된다.
- 애굽에서 바로와 그 온 땅에 행하신 일이다.
- 애굽 군대를 홍해 물에 덮으신 일이다.
-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이다.
- 다단과 아비람 일당을 땅이 입을 벌려 삼키게 하신 일이다.
앞의 세 가지 사건에 비해 민수기 16장 고라 반란은 결이 확 다르다. 왜 이게 한 카테고리에 묶여야 했을까? 그게 택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애굽의 바로가 아닌 모세인지, 왜 애굽의 군대가 아닌 이스라엘의 오합지졸인지, 왜 애굽 노예가 아닌 광야 자유인의 삶인지, 장자인 르우벤 반역의 무리가 아닌 아론과 레위인지. 이를 목격했으니 여호와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분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고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אֶרֶץ זָבַת חָלָב וּדְבָשׁ에서 장수할 것이다.
6알리야 11:10-21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이 묘사된다. 그곳은 비를 흡수하는 땅, 하나님이 돌보시는 땅이라는 극찬이다. 관개시설에 의존하는 애굽과 대조되는 땅이다 (얼핏 관개시설이 대량생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 텐데 본문의 핵심은 인간이 피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계명을 잘 지킨다면, 즉 여호와를 전심으로 사랑하면, 이른 비יוֹרֶה 와 늦은 비מַלְקוֹשׁ가 적당히 내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דגן תירוש ויצהר이 모일 것이다. 이 세 소산물이 인간에 미치는 유익은 시편도 주목한다(시 104:15).
따라서 여호와의 계명을 잘 기억하도록, 즉 여호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하도록, 손목과 미간에 표טוֹטָפֹת를 삼아야 한다. 언제나 강론하고 문설주에도 붙여야 한다. 그러면 하늘과 땅이 존재하는 한 그들과 그들 자녀의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 토타포트가 뭔지는 모호하다. 현대 유대교 용어는 테필린이다. 두 개의 상자와 가죽끈인데 하나는 머리에 다른 하나는 덜 쓰는 팔 심장과 가까운 곳에 착용한다. 상자 안에 네 개의 성경 구절을 넣게 되어 있다. 박스에 히브리어 알파벳 쉰ש이 써 있고 가죽끈 묶는 방식과 결합해 샤다이, 전능자가 된다.
- 테필린을 사용해 기도하는 이유는 이것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7알리야 11:22-25
여호와의 율법을 지킬 때 따르는 유익이 요약된다. 약간 터무니없지만 그들이 발로 밟는 모든 땅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광야(south)에서 레바논(north)까지, 유프라테스(east)에서 바다(west)까지이다.
하프타라 이사야 49:14–51:3
히브리어 첫 구절을 따서 Vatomer Tzion이라고 부르는 본문이다. 시온이 하는 말은 여호와가 자신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여호와의 반론이다. 시온은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שָׂשׂוֹן וְשִׂמְחָה יִמָּצֵא בָהּ, תּוֹדָה וְקוֹל זִמְרָה
Zion spricht: Der Herr hat mich verlassen, der Herr hat mein vergessen. Kann auch ein Weib ihres Kindeleins vergessen,
daß sie sich nicht erbarme über den Sohn ihres Leibes? Und ob sie desselbigen vergesse, so will ich doch dein nicht vergessen. Siehe, in die Hände hab ich dich gezeichnet.
라이프치히에는 소년 소프라노로 구성된 성 토마스 합창단이 있었는데 그 음악감독은 바하 시대 루터 교회의 가장 영향력있는 포지션이었다. 1615-1630년 성 토마스 합창단의 음악감독 J.H.Schein이 이사야 49장 14절 이하를 가사로 만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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