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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쇼프팀 (신 16:18-21:9)

파라샤 쇼프팀을 읽는다. 쇼프팀שֹׁפְטִים은 재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체데크, 정의가 이 파라샤의 아젠다다. 하나님은 지파마다 쇼프팀을 두고, צֶדֶק צֶדֶק, תִּרְדֹּף 정의를 쫓으라고 하신다. 정의는 기다리거나 맞이하는 게 아니라 찾아 헤매야 한다. 저절로 실현되는 정의는 없다. 정의를 힘써 찾지 않으면 구경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파라샤에서는 그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방도로서 재판관, 왕, 레위인, 선지자 등에게 주어진 미츠바와, 도피성, 증인, 전쟁, 미해결 살인 등 제도의 규범들이 제시된다.

 

1알리야 16:18-17:13 
재판관이 필요한 이유는 뇌물 없는 공평하고 공정한 통치를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역할의 재판관이 부패했다고 상상하면 참 답답한 노릇이다. 여호와를 위한 제단 옆에 아세라와 마쩨바를 세우지 말라는 명령이 이어진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17장은 체데크를 훼손하는 가증한 것들 즉 토에바를 열거한다. 선천적으로 기형인 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경우, 다른 신 특히 일월성신을 따르는 행위(메소포타미아의 우상 숭배)가 토에바다. 토에바를 발견했다면 진상 조사를 하고, 증인을 채택해 사형을 집행한다. 증인이 먼저 돌을 들어 쳐죽이는 lapidation סקילה다.

상해 등의 법적 사건이 난처한 경우, 여호와가 택하실(아직 택하지도 않으신) 장소로 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הכהנים הלוים과 재판관에게 묻는다. 레위인과 제사장이 한 직급으로 통폐합된 데다 레위인에게 판결 권한이 주어졌다. 느헤미야서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런데 악의를 가지고בזדון 판결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처형해야 백성이 주제넘게 행하지 않을 것이다.

 

2알리야 17:14-20
을 세우기로 했다면 이스라엘 사람이어야지, 외국인은 안 된다. 왕이 많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은 말, 여자, 은금이다. 왕은 이 토라의 복사본מִשְׁנֵה הַתּוֹרָה(이 토라가 신명기 저자가 알고 있는 초본이다)을 직접 써서 평생 곁에 두고 읽어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이 율법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 그러면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고 율법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 결과 그의 자손들의 통치가 영원할 것이다.

3알리야 18:1-5
성전에서 근무하는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주어지는 몫이 소개된다. 제사장은 많은 책무를 지지만 지분חלק ונחלה이 없다. 오직 백성이 여호와께 드리는 희생제물을 받아 생활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נחלה이기 때문이다. 제물의 팔זרע과 볼לחיים과 위קבה가 제사장 몫이다. 왜 이 부위를 주었을까. 음식정결법으로는 이들이 스타미סתמי, parve에 속한다고 본다. 거룩한 곳에서만 먹어야 하는 등 조건 없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부위라는 것이다. 갖다붙이기 좋아하는 랍비문학에서는 창을 들고(앞다리), 입으로 기도하며(볼=입), 미디안 여인의 배를 찌른(위) 비느하스(아론의 손자)를 상징한다고 본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첫 열매, 처음 깎는 양털도 성전 근무에 대한 보상이다.

*유대인에게도 소나 양 곱창 요리가 있다. 키슈카קישקע라고 하는데, 순대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하민 혹은 촐렌트와 함께 아슈케나짐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이다. 

 
4알리야 18:6-13
시골 기반의 레위인이 성전에 왔을 때는 기존의 성전 근무 레위인과 동급의 대우를 해야 한다. 실천적으로 차별이 있으니 이런 조항이 생겼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쫓아내는 나라들의 가증스러운 행위, 토에바를 본받지 말아야 하는데, 자녀를 불사르는 일, 점쟁이, 길흉을 말하는 이, 요술사, 무당 계열 꾼들이다. 이 땅의 주민들이 이런 토에바를 향했기에 하나님이 쫓아내신 것이다. 그들은 적합하여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완전תמים해야 한다. 

 

5알리야 18:14-19:13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하나님이 일으키시므로 백성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선지자는 호렙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 않도록 요청했을 때 생긴 직무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주는 역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지 않으신 말씀을 말하는 선지자는 죽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아닌지 분별하려면 그 말씀의 성취 여부를 보면 된다. 
백성은 그 땅에 정착해서 세 군데의 도피성을 따로 떼어 놓아 실수로 살인한 자가 피신하도록 해야 한다. 훗날 율법을 충실히 지킨 결과 하나님이 영토를 넓혀 주시면 또 다른 세 성읍을 더한다. 의도치 않게 살인한 자가 그곳으로 도망쳐서, 불필요한 보복의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다. 의도치 않은 살인의 예는, 나무를 베다가 도끼를 휘둘렀는데 도끼가 자루에서 날아가 이웃을 쳐서 죽이는 경우다.

고의로 살해를 저지르고 도피성으로 도망하면 장로들은 살인자를 잡아 피의 보복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무죄한 피를 흘린 데 대해 불쌍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6알리야 19:14-20:9

  • 이전 세대가 세운 경계표, 토지의 소유권 마크 גבול를 옮겨서는 안 된다.
  • 유죄 판결은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 위증죄는 재판관이 조사를 통해 모함을 밝혀내고 죄를 제거해야 한다.
  • 생명에는 생명,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lex talionis다.

전쟁 시 제사장이 할 일이 있다. 군대를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로서 자기 사명에 한계를 느끼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구절에 해법이 나와 있는데, 그가 할 일은 그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뿐이다. "슈마 이스라엘, 오늘이 전쟁하는 날이니 마음 약해지거나 두려워하거나 떨거나 속으로 겁먹지 말아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걸으시고 너희를 위해 싸우시며 너희를 적에게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책임자들שוטרים이 할 일도 있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쇼트림이 경찰이다. 집에 보낼 사람들을 고르는 것이다. 

  •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하지 않은 경우: 전사하면 그 집이 남의 것이 되니까.
  • 포도원을 가꾸고 수확하지 않은 경우: 전사하면 그 열매가 남의 것이 되니까.
  • 약혼만 하고 결혼하지 않은 경우: 약혼은 지참금이 든다. 돈만 내고 남에게 뺏기니까.
  •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경우: 남도 낙담시키니까. 

이제 남은 자들로 군대를 꾸리고 군대 지휘관שרים을 세운다. 

 

7알리야 20:10-21:9 
구체적인 병법이 제시된다. 도시에 접근하면 먼저 화평을 제안한다.

항복하면 조공을 받고 노예로 삼으며, 항복하지 않으면 공성전을 해서 남자는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전리품으로 탈취한다.

백성의 땅에서 멀리 있는 도시, 즉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의 성들은 진멸חרם한다. 

공성전이 길어질 때는 포위한 도시의 과실수는 그대로 두고 일반 수목은 잘라서 전쟁 도구로 사용한다. 이어서 유명한 표현이 나온다. 키 하아담 에츠 하싸데 כִּי הָאָדָם עֵץ הַשָּׂדֶה 일종의 수사학적 질문으로 들판의 나무는 사람과 같지 않다는 뜻이다. 나무는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 아니라 식량 자원이므로 과일 나무는 베지 말라는 것이다. 

 

샬롬 하누흐의 노래 키 하아담 에츠 하싸데는 인간이 바로 나무라고 해석한다.

나무들의 로쉬 하샤나로 불리는 투비슈밧에 불린다.

 

21장 앞부분은 범인을 알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해법이다. 에글라 아루파עגלה ערופה 목이 부러진 암송아지 조항이라고 불린다. 살해 희생자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를 측정해서 해당 도시의 장로들과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멍에도 매어보지 않은 암송아지를 데리고 골짜기로 간다. 언제나 물이 있어야 하지만 경작지여서는 안 된다. 거기서 암송아지의 목을 꺾고 손을 씻는다.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로부터 자신들이 무고함을 선포하는 것이다. 로마인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하고 자기 손을 씻었다.  

 

하프타라 이사야 51:12-52:12

첫 글자를 따라 "아노히 아노히" 본문이라고 한다. 아노히는 하나님의 자기 소개, 즉 십계명의 첫 계명이기도 하다. 분노의 잔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예루살렘을 위로할 이는 바로 아노히,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시고 시온을 백성 삼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이제 일어나 스스로 목줄을 풀고 옷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 이제 하나님이 나서시기 때문이다. הִנֵּנִי 여호와가 시온으로 돌아오신다. 땅 끝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Anochi Anochi,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מַה-נָּאווּ עַל-הֶהָרִים רַגְלֵי מְבַשֵּׂר מַשְׁמִיעַ שָׁלוֹם מְבַשֵּׂר טוֹב מַשְׁמִיעַ יְשׁוּעָה אֹמֵר לְצִיּוֹן מָלַךְ אֱלֹהָיִךְ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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