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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키 타보 (신 26:1-29:8)

파라샤 키 타보를 읽는다. 토라에서 재미있음과 없음을 가르는 기준은 뭘까. 앞의 파라샤들이 대박 지루한 데 비해 이번 파라샤는 파닥파닥의 연속이다. 당연히 문체의 차이다. 내용적으로 "그 땅에 들어가면" 지켜야 할 내용들이다. 기약 없는 광야 생활의 가상적 규례가 아니라, 본격적인 정착 생활에서 현실화된 법규들이다.

 

유대인들은 세속인도 바르 미츠바 때 회당에서 낭독한 파라샤를 소중히 여기는데, 이상할 만치 파라샤 키 타보라는 사람이 많다. 일년 열두 달 출생연월에 따른 바르미츠바 파라샤가 유독 9월 첫주에 몰린 건가? 13살 아이가 회중 앞에서 혼자 토라를 낭독하는 일은 자칫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긴장된 순간이다.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보아온 어른들이 갸륵한 눈길로 보고 있는 자리에서 실수라도 할까봐 악몽을 꾸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니 야쉐르 코아흐ישר כוח 즉 토라 리딩에 뿌듯하게 성공했다면 그 순간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파라샤 키 타보는 그 성공을 보장하는 본문이다. 흥미진진하니까. 바르 미츠바 소년은 대개 하프타라를 낭독하는데, 이번 파라샤의 하프타라는 쿠미 오리 이사야서 60:1-22이다. 시문이라 운이 맞춰져 읽기 편하다. 

 

1알리야 26:1-11

약속의 땅이란 여호와가 땅을 선물로 주셨다는 의미다. 이 땅이 내 땅도 네 땅도 아닌 하나님의 땅이라는 개념은 엄청난 윤리적 의무를 지운다. 살 만해서 여기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그중 가장 큰 의무가 수확을 하고 나서 토지의 모든 소산 맏물을 바구니째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밀과 보리의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 칠칠절에, 소산의 맏물로서 초실절 비쿠림의 의미를 첨가한 게 신명기 본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맏물이라는 기독교 신앙 역시 신명기 구절에서 기인한다.

 

이스라엘의 농사 공동체에게도 이 구절은 대단히 의미심장했다. 사실 초실절, 혹은 칠칠절은 종교적 의미로는 유월절이나 초막절만 못한 게 사실이다.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성공한 시오니즘이 그 의미에 새롭게 주목했다. 지금도 키부츠나 모샤브는 칠칠절 오후에 온 공동체가 모여 바구니 들어올리기נושאים טנא를 한다. 테네는 주로 버드나무 같은 유연한 나뭇가지로 엮은 바구니를 말한다. 테네 속에 넣어 들어올려야 할 가장 중요한 소산의 맏물은 그해 태어난 아기들이다. 

 

아빠들도 맏물의 결실을 기념하고 싶어한다. 이에 무심한 대한민국 육아 방식이 이상한 거지.

 

테네를 제사장에게 건네 제단에 놓고 나면 암송구절을 외워야 한다. 내 아비가 "방황하는 아람 사람"이어서 애굽에 내려가 큰 민족을 이루는 데 성공했지만 애굽인에게 학대를 받아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드디어 여호와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사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두려움=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 주셔서, 이제 여호와가 주신 땅의 첫 소산을 가져왔노라고. 

אֲרַמִּי אֹבֵד אָבִי

וַיֵּרֶד מִצְרַיְמָה, וַיָּגָר שָׁם בִּמְתֵי מְעָט

וַיְהִי-שָׁם, לְגוֹי גָּדוֹל עָצוּם וָרָב

 וַיָּרֵעוּ אֹתָנוּ הַמִּצְרִים

וַיְעַנּוּנוּ

וַיִּתְּנוּ עָלֵינוּ, עֲבֹדָה קָשָׁה

 וַנִּצְעַק, אֶל-יְהוָה אֱלֹהֵי אֲבֹתֵינוּ

וַיִּשְׁמַע יְהוָה אֶת-קֹלֵנוּ

וַיַּרְא אֶת-עָנְיֵנוּ וְאֶת-עֲמָלֵנוּ וְאֶת-לַחֲצֵנוּ

 וַיּוֹצִאֵנוּ יְהוָה, מִמִּצְרַיִם, בְּיָד חֲזָקָה וּבִזְרֹעַ נְטוּיָה, וּבְמֹרָא גָּדֹל--וּבְאֹתוֹת, וּבְמֹפְתִים

 וַיְבִאֵנוּ, אֶל-הַמָּקוֹם הַזֶּה

וַיִּתֶּן-לָנוּ אֶת-הָאָרֶץ הַזֹּאת, אֶרֶץ זָבַת חָלָב וּדְבָשׁ

וְעַתָּה, הִנֵּה הֵבֵאתִי אֶת-רֵאשִׁית פְּרִי הָאֲדָמָה, אֲשֶׁר-נָתַתָּה לִּי, יְהוָה

 

첫 구 '내 아비가 방랑하는 아람 사람'과 마지막 문장 "이제 내가 맏물을 가져왔습니다"를 제외하고 모든 동작이 11개의 바익톨 형태로 맞춰졌다. 내 아비가 한 일, 애굽인들이 행한 일, 여호와가 행하신 일, 우리가 겪은 일에 이어서, 여호와가 땅을 주셨다는 내용이 순차로 이어진다. 애굽 땅을 나와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건 우리 모두지만, 맏물의 소산을 들고 온 것은 '지금'의 '나'라는 게 특이하다. 신앙행위의 개인성이자 제의의 현재성으로 이해한다. 남이 어떻게 하는지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 구원의 사건을 같이 겪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받았다 해도 그에 대한 반응으로서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일이다. 나태한 신앙행위의 핑계도 댈 수 없거니와 남의 신앙행위를 판단할 근거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단독자다. 또 구원의 행위와 그 보답으로서 비쿠림의 테네는 그때 한번 드리고 마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제ועתה로 현재화되어야 하는 제의, 예배이다. 

이 기쁨을 만끽할 때는 레위인, 객과 고아와 과부 등 상대적 빈곤층도 챙겨야 한다.     


2알리야 26:12-15
일단 무척 짧아서 읽는 맛이 있다. 제삼년은 특별 십일조의 해로서 레위인,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십일조를 돌리는 해이다. 그 의무를 다했으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고한다. 내가 거룩한 것을 내 집에서 꺼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었고, 주의 명령을 하나도 범하지 않았으니, 주의 거룩한 처소에서 보시고 이스라엘과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בִּעַרְתִּי הַקֹּדֶשׁ מִן-הַבַּיִת

וְגַם נְתַתִּיו לַלֵּוִי וְלַגֵּר לַיָּתוֹם וְלָאַלְמָנָה, כְּכָל-מִצְוָתְךָ, אֲשֶׁר צִוִּיתָנִי

לֹא-עָבַרְתִּי מִמִּצְוֺתֶיךָ

וְלֹא שָׁכָחְתִּי

 לֹא-אָכַלְתִּי בְאֹנִי מִמֶּנּוּ

וְלֹא-בִעַרְתִּי מִמֶּנּוּ בְּטָמֵא

וְלֹא-נָתַתִּי מִמֶּנּוּ, לְמֵת

שָׁמַעְתִּי, בְּקוֹל יְהוָה אֱלֹהָי--עָשִׂיתִי, כְּכֹל אֲשֶׁר צִוִּיתָנִי

הַשְׁקִיפָה מִמְּעוֹן קָדְשְׁךָ מִן-הַשָּׁמַיִם

וּבָרֵךְ אֶת-עַמְּךָ אֶת-יִשְׂרָאֵל

וְאֵת הָאֲדָמָה,אֲשֶׁר נָתַתָּה לָנוּ--כַּאֲשֶׁר נִשְׁבַּעְתָּ לַאֲבֹתֵינוּ, אֶרֶץ זָבַת חָלָב וּדְבָשׁ


이 간구도 의미심장하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코데쉬, 즉 tabooed 손대지 말아야 할 것(하나님의 소유)을 내 집에서 내놓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준 사람은 '나'다. 행한 이는 나지만 그 행위의 결과로서 여호와의 복은 이스라엘과 이 땅에 임하기를 바란다. 참으로 사심없는 신앙이 아닌가. 토라를 지키는 건 나 잘되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3알리야 26:16-19
여기도 짧다. 신명기 26장 한 장으로 세 번이나 알리야를 한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명기의 총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히브리어의 문장 특성상 우리말 번역으로 보면 뭔 소리인가 싶다. 요즘 사람들 문해력도 떨어진다는데, 히브리어를 배우는 게 성경을 제대로 읽는 방법일 수 있다.

הַיּוֹם הַזֶּה, יְהוָה אֱלֹהֶיךָ מְצַוְּךָ לַעֲשׂוֹת אֶת-הַחֻקִּים הָאֵלֶּה--וְאֶת-הַמִּשְׁפָּטִים

וְשָׁמַרְתָּ וְעָשִׂיתָ אוֹתָם, בְּכָל-לְבָבְךָ וּבְכָל-נַפְשֶׁךָ

אֶת-יְהוָה הֶאֱמַרְתָּ, הַיּוֹם

לִהְיוֹת לְךָ לֵאלֹהִים וְלָלֶכֶת בִּדְרָכָיו, וְלִשְׁמֹר חֻקָּיו וּמִצְוֺתָיו וּמִשְׁפָּטָיו—וְלִשְׁמֹעַ בְּקֹלוֹ

וַיהוָה הֶאֱמִירְךָ הַיּוֹם

לִהְיוֹת לוֹ לְעַם סְגֻלָּה, כַּאֲשֶׁר, דִּבֶּר-לָךְ

וְלִשְׁמֹר, כָּל-מִצְוֺתָיו וּלְתִתְּךָ עֶלְיוֹן, עַל כָּל-הַגּוֹיִם אֲשֶׁר עָשָׂה, לִתְהִלָּה, וּלְשֵׁם וּלְתִפְאָרֶת

וְלִהְיֹתְךָ עַם-קָדֹשׁ לַיהוָה אֱלֹהֶיךָ, כַּאֲשֶׁר דִּבֵּר

 

(여호와)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법들을-이 규례들을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너)그러니 그것들을, 네 전심으로 네 전 영혼으로 지키고 행하라. 

(너)너는 오늘 공표하라. 여호와가 네게 하나님이 되심을, 그의 길로 행하기를, 그의 법과 명령과 규례들을 지키기를, 그의 목소리를 듣기를. 

(여호와)그럼 여호와가 오늘 공표하실 것이다. 네게 말씀하신 대로 네가 그분께 선택된 백성이 됨을,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기를, 창조하신 모든 나라 위에 찬송, 명예, 영광에 있어서 네게 뛰어남을 주시기를, 말씀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한 거룩한 백성임을. 

 

이 개인 번역에서 '공표하다'는 헤에미르האמיר 동사를 옮긴 흡족하지 않은 우리말이다. 영어로 avow, avouch 뜻이다.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가격이 상승한다는 의미라 헷갈린다. 기본 원형은 말하다, 강동사는 선포하다니까 히프일 동사는 문자적으로 '선포를 야기하다'가 된다.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선포 행위를 뜻하는 게 아닐까. 예외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이 세상을 무신론자로 산다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조금씩 신을 느끼며 산다. 그런 마지못함이 아니라, 나도 확증하고 남도 그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럴 때 여호와도 적극적으로 우리를 선민이자 성민으로 확증해 주실 테고.      

   
4알리야 27:1-10
모세와 장로들은 백성에게 명령을 쏟아낸다. 명령의 조건이 첨가되면서 그 의미가 선명해진다.

  • 일단 이 명령들을 지키라.
  • 요단 강을 건너면 큰 돌을 세우고 회반죽을 바르고 거기 토라 말씀을 기록하라.
  • 요단 강을 건너면 에발 산에 큰 돌을 세우고, 회반죽을 바르고, 돌 제단מזבח אבבים을 쌓고, 쇠 연장을 대지 말라. 거기에서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그러고 나서 토라 말씀을 또렷이באר 기록하라. (동물 기름이 돌 조각 파내는 촉진제 역할이라도 하나. 조각을 또렷이 한다는 것도 양각인지 음각인지 애매하다. 어느 쪽이 더 선명할까.) 

이번에는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과 함께 백성에게 그냥 말로 한다. 

  • 조용히 하고 들으라
  •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됐으니 1)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라 2) 그의 명령과 규례를 행하라. 

존재의 변화는 행동 변화를 촉구하기 전에, 절대자 앞에 머물러 있기를 요구한다. 모든 사명은 하나님의 목소리 듣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에발 산 여호수아 제단은 허술한 구석이 많긴 하지만 진지하게 믿는 분들도 있다. 각자 이유가 있다. 나로서는 돌 제단에 토라 말씀을 또렷하게באר 적는다가 해결이 안 됐다. 

 

5알리야 27:11-28:8

에발과 그리심 제의가 묘사된다. 요단 강을 건너면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은 축복의 산 그리심 산 위에על 서고, 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는 저주의 산 에발 산에ב 선다. 두 산의 위치를 표현하는 전치사가 하나는 꼭대기를 뜻하는 알, 다른 하나는 중턱을 의미하는 베다. 그리심 산 꼭대기에서 바라볼 때 에발 산이 중턱이 되는, 다시 말해 에발 산이 그리심 산보다 높다는 지리학적 특징을 담았다. 

낭독자는 축복의 산에 있는 레위인들이다. 저주ארור의 내용은 12가지이고 복ברוך의 내용은 6가지다. 

저주의 내용은 다소 낯뜨겁다. 우상 제작, 부모 경시, 남의 경계표 이동(탐욕), 맹인을 호도(사기), 객과 고아와 과부의 권리 침해 (송사 왜곡),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간음), 수간, 여동생과 동침(근친상간), 장모와 동침, 동포 살해, 뇌물, 계명 무시다.

각각의 저주 선포가 끝날 때마다 백성은 "아멘"이라고 화답해야 한다. 
대신 하나님께 순종하고 모든 계명을 충실히 지킬 때 이들은 다른 모든 이방 나라들 위에 세워질 것이다.

도시와 시골에서 복을 받고, 자궁과 땅과 소떼와 양떼가 번식하고 바구니와 반죽 그릇이 복을 받으며, 그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 복을 받는다. 

6알리야 28:7-69
이번에는 복의 내용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긴 저주의 내용이 이어진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적을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번영을 주시며, 그분의 성민이 되어 모두가 두려워할 것이다. 복을 받은 이스라엘은 소산이 많고, 축적도 많고,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저주하신다. 도시와 시골에서 저주를 받고, 자궁과 땅과 소떼와 양떼가 소산이 없고, 바구니와 반죽 그릇이 비며, 그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 저주를 받는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더 상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저주와 관련된 엄청난 어휘들이 쏟아진다. 

하는 일마다 재난과 공포와 좌절이다. 결핵과 열병과 염증과 폭염과 가뭄과 역병과 곰팡이를 당한다. 하늘을 구리로, 땅을 철로 바꾼 것 같다. 비는 먼지가 되고, 그들은 적 앞에서 패주한다. 애굽에 임했던 재앙들을 당할 것이다. 신부값을 치른 아내를, 자기 손으로 지은 집을, 직접 심은 포도원을 빼앗긴다. 자기 소를 잡고도 먹지 못하고, 나귀는 압수되고, 양떼는 적들의 차지다. 자녀들도 넘겨지고 이 땅의 소산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백성이 먹을 것이다. 미칠 때까지 학대와 억압을 당하고, 무릎과 넓적다리에 염증을 달고, 알려지지 않은 나라로 쫓겨나 나무와 돌로 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모든 민족 사이에서 이야깃거리가 된다.

아직 한참 더 남았다. 메뚜기가 씨를 먹고, 벌레가 포도원을 먹고, 감람나무가 감람나무를 떨어뜨리고, 아들딸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귀뚜라미가 이 땅 모든 소산을 점령하고, 낯선 사람이 그들 위에 올라 머리가 되고, 그들은 꼬리가 될 것이다. 풍족할 때도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그들은 이제 굶주림과 목마름과 헐벗음을 겪을 것이다. 그들이 언어를 알지 못하는 포악한 민족이 먼 곳에서 와서 그들의 가축과 토지의 소산을 먹어치우고 그들이 의지하는 견고한 성벽이 무너질 때까지 그들을 포위할 것이다. 포위된 그들은 자기 아들딸의 살을 먹을 것이다. 극소수만 남을 때까지 엄청난 재앙과 질병이 있을 것이다. 한때 하나님이 그들을 번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듯이, 이제 그들이 멸망하고 쇠퇴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민족 중에 흩으시니 그 나라들 중에도 쉴 곳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침에 저녁이 되기를 바라고 저녁에는 아침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 자신들을 노예로 팔려고 내밀었지만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다.
28장의 69절은 우리말성경이 29장 1절로 옮겨놓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호렙 산에서 맺으신 언약에 첨가된, 모압에서 맺으신 언약이다. 29장부터 또다른 모세의 설교가 시작된다.

7알리야 29:1-8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 말한다. 애굽에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를 보았고, 40년 광야 생활에서 옷과 신이 해어지지 않고 굶주리지도 않았다. 이는 여호와가 그들의 하나님심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이스라엘은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쳤고 그들의 땅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했다. 따라서 앞으로 모든 계명을 충실히 준수하면 그들이 맡은 모든 일에서 형통할תשכילו 것이다.

 

하프타라 이사야 60:1-22

히브리어 첫 구절을 따라 "쿠미 오리" 본문으로 부른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를 의미한다.

 

 

Kumi Ori 이사야 60

신명기의 일곱 번째 파라샤 키 타보(כי תבוא)를 읽는다. 신명기 26-29:8, 첫 단어가 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들어갈 때'이다. 26장 첫 번째 알리야: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가 첫 곡식과 과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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