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샤베아브 직전 샤밧, 샤밧 하존에 파라샤 드바림을 읽는다. 모세 오경, 토라의 마지막 책이다. 책 제목이기도 한 드바림은 things 또는 words로 옮겨진다. 고대 근동 언어가 '이런 일들'을 "이런 말씀들"과 동의어로 여기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문자는 고급 엘리트만이 알고 있는 무기였다. 아마 왕들도 문자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서기관이 왕 앞에서 낭독하곤 했다(왕하 22:10). 즉 사건의 내막은 '말'로 전달되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들은 그러니까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헬라어 성경은 신명기를 Deuteronomy, 두 번째 nom, 법으로 보았다. 해석한 것이다. 왜 두 번째일까.
내용적으로 두 번째 율법서에서 모세는 출애굽 이후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다시 더듬고 있다. 왜 그래야 하지? 민수기에서 끝나지 않은 뭐가 남았나? 모세가 죽고 요단 강을 건너 정복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와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민수기 다음에 여호수아를 읽어 보면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걸 느끼게 된다. 두 책은 같은 장르가 아니다. 광야 방랑기와 가나안 정복기는 서로에게 의지할 필요 없는 독립된 이야기들인 것이다. 신명기의 존재 이유는 그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내용은 민수기를 보조하고, 사용된 어휘나 분위기는 여호수아와 비슷하다.
신명기의 주제는 명확하다. 율법을 지키면 살고, 율법을 어기면 망한다. 신명기를 읽을 때 하프타라는 대부분 이사야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직 유다 왕조가 짱짱할 때, 나라가 망할 조짐을 보이기 100년 쯤 전에 왕실을 위해 예언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래저래 해야 망국을 피한다는 말이 없다. 안 망할 줄 알았나? 주전 701년 산헤립은 예루살렘에 신하들을 보내 히스기야 왕에게 똥을 먹였다. 이게 망할 징조가 아니었을까?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죄와 허물을 들추고 꾸짖고 책망하지만 안 망할 비법 같은 건 안 가르쳐준다. 그보다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유대인은 항상 질문한다. 그런 분이 우리한테 왜 그러신 거예요?). 신명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찾으려면 호세아서를 보면 된다. 마치 세트 같은 느낌이다. 호세아서는 망하기 직전 북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이다.
아마도 율법을 지키는 삶이 보장해주는 부국강병의 신학은 북이스라엘에서 생성됐을 것이다. 망한 나라의 엘리트들은 남아 있는 반쪽 국가로 넘어왔고 그곳에서 새로운 신학적 모색을 꾀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히스기야 왕은 예루살렘을 확대하고 왕국의 국경을 강화했으며 앗수르에 모반을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정치적으로 아버지와 다른 선택을 했고, 충직한 앗수르의 분봉왕으로 55년이나 유다를 통치한다.
악인은 대개 무병장수한다. 므낫세가 제명대로 살다 죽고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는데 그의 신복이 쿠데타를 일으켜 암살한다. 이때 '국민'이 나타난다. 암 하아레츠עם הארץ, 이들이 반역자를 분쇄하고 아몬의 아들 8살짜리 요시야를 데려다 왕으로 삼는다. 이 국민의 정체는 신명기 신학의 주제 중 하나다. 요시야 왕은 즉위한 지 18년째 성전 수리를 명한다 (주전 622년). 성전을 청소하다 율법책ספר התורה을 발견하는데 '책'이란 용어가 들어 있지만 두루마리 형태였을 것이다. Codex는 헬레니즘 시대에 가야 등장한다.
성전에서 나온 율법책, 세페르 하토라는 이런 모양을 가리킨다.
왕이 듣고 옷을 찢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은 신명기 법전(12-26장)으로 통칭되는 율법의 모음집이었을 것이다. 이 땅과 여기 사는 백성이 살아야 하는 방법이 총망라된다. 이게 충격이 된 이유는 그들은 전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그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발견된 율법책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보내져 검수를 받는다. 왕의 옷을 만드는 살룸의 아내였다. 왕의 옷을 아무나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율법을 해석하는 권위가 여성에게 주어진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나라 꼴이 그 지경이라 멀쩡한 남성이 거의 남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 여선지자의 거주지가 예루살렘 둘째 구역בַּמִּשְׁנֶה이라는 게 흥미롭다. 북이스라엘에서 피난민들이 밀려오면서 히스기야 왕이 넓힌 예루살렘 서쪽 동네이다. 훌다의 출신이 그쪽은 아니었을까. 훌다 여선지자는 신명기 신학과 같은 맥락의 해석을 전한다. 이 나라는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다윗 왕가의 신화,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결코 허물지 않으신다는 믿음에 도전한다.
하지만 왕은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도 새롭게 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앗수르를 떠나 야훼만을 섬기는 종교 개혁을 결단한다. 이 개혁의 시행자들이 더한 새로운 신학적 관점이, 율법의 준수로 인해 운명이 달라질 복과 저주의 길이다 (신 1-11장, 27-30장).
이게 끝이 아니다. 왕은 13년 후 어이없이 죽는다 (주전 609년). 앗수르와 애굽의 대결전에서 바벨론의 부상을 지켜보며, 유다 역시 독자적으로 살아남는 길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율법을 따랐던 왕은 므깃도 전장에서 사망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죽음 때문에 고뇌했다. 악인이 의인을 삼키는데도 여호와께서 잠잠하시다고 원망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말씀하신다.
세페르 드바림은 지평이 넓은 책이다.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재해석에 가깝다. 그렇지만 본문이 향하는 것은 광야 40년을 끝내고 약속의 땅을 앞둔 시점이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알리야 1:1-10
11일이면 되는 거리를 40년 동안 헤매고 나서 모세는 요단 동편에서 백성에게 이야기한다. 호렙 산에서 하나님은 이제 때가 되었으니 (오래 머물렀으니) 아라바, 산지, 쉐펠라, 네게브, 해안평야, 즉 가나안 땅을 지나 레바논과 유프라테스 강까지 정복하라고 하셨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하늘의 별 같이 많아진 백성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2알리야 1:11-21
그래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과 조장을 임명했었다. 모세는 공정한 재판을 당부하며 너무 어려운 문제는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명한다. 여기 그 유명한 표현이 나온다.
לֹא-תַכִּירוּ פָנִים בַּמִּשְׁפָּט, כַּקָּטֹן כַּגָּדֹל תִּשְׁמָעוּן 재판할 때 외모를 보지 말고, 작은 자나 큰 자의 말을 다 들으며
לֹא תָגוּרוּ מִפְּנֵי-אִישׁ, כִּי הַמִּשְׁפָּט לֵאלֹהִים הוּא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 말라, 재판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성경에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장자와 재판과 전쟁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을까. 그것들의 운명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뜻이다.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마침 재판과 관련된 법개정 과정에 있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기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사법부에게서 권위를 제거하고 투표로 당선된 자신들이 재판을 좌지우지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저 종교인들은 샤밧 하존에 이 구절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3알리야 1:22-38
신명기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을 보내는 게 백성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한다. 디테일을 가미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세는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을 선택해 보내게 했다. 정탐꾼들은 나할 에슈콜, 즉 헤브론에 와서 그 땅 소산을 보고 좋은 땅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 땅에 사는 큰 사람들과 높은 성벽의 성읍에 두려움을 느낀다. 모세는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며, 하나님이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신 것처럼 그들 앞에 가시며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세의 믿음이 백성을 설득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세는 아직 그 땅을 못 보았으니까. 백성은 그 땅을 보고 온 정탐꾼들의 말을 신뢰했다. 자기들이 보내자고 했던 사람들, 그럼 그렇지, 모세도 직접 보면 다를걸?! 경험치라는 건 이렇게 위험하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이 악한 세대가 절대로 그 땅을 보지 못한다고 하신다. 오직 충성을 다한 갈렙만은 예외다. 모세는 백성 때문에 자신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고 말한다.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의 역할이 명시된다.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할 장본인이다.
4알리야 1:39-2:1
자기 신으로부터 단절된 백성은 비참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에 관여하지 않으신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이스라엘이 싸우는데도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신다. 아모리 사람이 벌떼처럼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호르마까지 밀어버린다.
וַתָּשֻׁבוּ וַתִּבְכּוּ, לִפְנֵי יְהוָה; וְלֹא-שָׁמַע יְהוָה בְּקֹלְכֶם, וְלֹא הֶאֱזִין אֲלֵיכֶם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울지만, 여호와께서 너희 소리를 안 들으시고 너희에게 귀기울이지 않으신다.
이렇게 슬픈 구절이 또 있을까. 이 본문을 읽는 아브월 3일 샤밧 하존은 이 백성에게 가장 큰 재앙 성전 멸망일을 앞둔 샤밧이다. 그 반역의 시작이 정탐꾼들로 인한 백성의 원망이었다. 이 일 후 백성은 광야로 돌아 세일 산으로 들어간다.
5알리야 2:2-30
- 이제 때가 되어 백성은 북쪽으로 가게 되었다. 세일 Seir에 있는 에서 후손들의 영토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노엽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먹고 마실 음식과 물을 사야 한다.
- 그 다음에는 엘랏과 에시온게벨까지 내려갔다가 모압 광야 길 Moab road로 나아간다. 모압 사람들도 괴롭히거나 자극하지 말아야 하는데, 롯 후손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 그 뒤 세렛 시내 Zered를 건넌다. 가데스 바네아로부터 38년이 지났고 이전 세대는 하나님의 맹세대로 진영에서 죽었다.
- 암몬 자손의 땅도 지나간다. 아르논 강 Arnon을 건너 헤스본 왕 시혼의 땅으로 나아간다. 모세는 먼저 사자를 보내 협상을 제안했지만, 시혼 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기시려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6알리야 2:31-3:14
- 헤스본 왕 시혼과 백성이 야하스 Jahaz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해 싸웠다. 하나님이 시혼의 모든 성읍을 이스라엘에 넘겨주셔서 아르논 골짜기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차지했다.
- 이스라엘 자손이 더 북쪽으로 올라가자 바산 왕 옥과 백성이 에드레이 Edrei에서 대적해 싸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바산의 성읍 60개를 넘겨 주셨다.
- 바산 왕 옥의 큰 체격이 소개되는데 그의 철 침대는 길이가 9규빗, 너비가 4규빗이었다.
- 모세는 헤스본 Hesbon과 바산 Bashan의 땅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다.
7알리야 3:15-22
모세는 요르단 동쪽에 땅을 장만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당부한다. 자기 땅을 이미 받았어도 요르단 강을 건너가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데 돌격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요르단 강을 건너가 만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시혼과 옥에게 행하신 것처럼 그곳에서도 행하실 것이다.
לֹא, תִּירָאוּם: כִּי יְהוָה אֱלֹהֵיכֶם, הוּא הַנִּלְחָם לָכֶם 너희는 두려워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라.
전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신다는데 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토라 읽기는 이 백성이 3000년 이상 통과해온 역사와 나란히 서 있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안다. 그 실패의 절정인 성전멸망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모세의 간곡한 당부가 더 처절하게 들린다. 하나님이 대신해 싸워 승리해 주시길 바라는 수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떠오른다. 벌써 그것들이 응답되지 않을 거라는 불안과 싸우고 있다. 불안은 우울을 동반한다.
כִּי תִּמָּלֵא הָאָרֶץ, לָדַעַת אֶת-כְּבוֹד יְהוָה, כַּמַּיִם, יְכַסּוּ עַל-יָם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것으로 땅이 가득하리라. 선지자의 외침은 피와 불탐과 수치와 강포와 우상 한복판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하프타라 이사야 1:1-27
범죄한 나라, 허물진 백성을 깨끗하게 하는 길이 소개된다. 다섯 가지 명령이다.
- לִמְדוּ הֵיטֵב 잘 배우라
- דִּרְשׁוּ מִשְׁפָּט 정의(=재판)를 구하라
- אַשְּׁרוּ חָמוֹץ 억압받는 자를 풀어주라
- שִׁפְטוּ יָתוֹם 고아를 위해 재판하라
- רִיבוּ אַלְמָנָה 과부를 위해 다투라
현대 사회에서 모두 재판과 관련될 여지가 있는 명령들이다. 이스라엘 사법개혁안을 반대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까지 4일 동안 걸어가는 데모대가 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월요일 이스라엘 국회는 이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저항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격돌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 나라와 이 백성에 무심하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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