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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발락 (민 22:2-25:9)

파라샤 발락을 읽는다. 민수기는 분량이 많지 않은 데 반해, 제노사이드 묘사로 해석이 난해한 책이다. 많은 개혁파 교단은 민수기에 드러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백성의 폭력성을 당시로 한정된 시대적 특성이라 해석한다. 우리도 하나님 백성처럼 이방 백성을 죽이러 가자, 하는 주석을 누가 받아들이나. 그런 점에서 민수기를 큐티 본문으로 삼는 것도 편치 않다. 소위 오늘의 삶에 적용할 게 미묘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히브리 성경은 책의 첫 단어를 책 제목으로 삼는다. 창세기는 브레쉬트, 출애굽기는 쉐모트, 레위기는 바이크라. 그런데 민수기 1장 1절 첫 문장은 이 책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시내 광야에서(במדבר סיני)"의 첫 단어 "광야에서"가 책 제목으로 선택됐다. 그럼 민수기 제목은 '베미드바르'일까? "베미드바르 시나이" 두 단어를 한 단어로 줄여 말하려면 '그 광야에서' 정관사를 붙이는 게 타당하다. 그럼 민수기 책 제목은 '바미드바르'일까? 히브리 성경은 모음을 표기하지 않는다. 이것도, 저것도 맞다고 생각하는 게 그럴 듯하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는다. 현대 문법의 규칙성 너머에 있는 히브리 성경의 구전 요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민수기 파라샤들은 사람 이름으로 불리는 게 꽤 있다. 고라(코라흐), 발락, 비느하스(핀하스)다. 다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다. 이게 '전설의 고향'이 아니라는 게 더 무섭다. 민수기는 형성사가 복잡하기로도 유명한 책이다. 일체의 고뇌를 제치고 본문의 맥락만 읽겠다는 주석서는 사실상 직무 유기다. 그렇지만 거침없이 써나간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소심함에 글쓰기를 미뤄오다 문득 깨달았다. 날도 더운 여름철에 베미드바르를 일독하는 유대인은 아무 고뇌가 없다는 걸.ㅋ

     

이 지도는 재현된 것이지 실제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경로는 여전히 다양한 가능성 속에 있다. 민수기 내용은 지도상 번호 8에서 15까지이다. 12가 정탐꾼을 보내는 민수기 13장, 13이 아론이 죽는 민수기 20장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21장 초반에서 아랏(Arad)을 쳤다. 하지만 다시 길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불뱀에 물어뜯겨 놋뱀을 바라봐야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르논 강, 즉 모압과 아모리 경계에 이르러 길을 열어 달라 청하지만 아모리 왕들은 겁이 없었다. 모세의 군대장관 여호수아는 시혼의 심장 헤슈본을 치고, 바산(골란고원)까지 올라가 옥의 땅을 친다. 그리고 여리고 건너편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   

 

1알리야 (22:2-12)
모압 왕 찌포르(ציפור)의 아들 발락은 번뇌한다 (קוץ).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풀 뜯어먹는 것만 봐도 경악스러웠던 것이다. 발락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를 어떻게 쳤는지 군사적 정보를 모은다. 그들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가장 합당하고 정확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메소포타미아 프토르(פתור)에서 예언자 발람을 초대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발람이 하는 말은 창세기 12장 3절을 연상시킨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 여호와가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신다는 약속이다. 이후 발람은 세 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선포하는데, 그 내용은 창 22장 아케다 이후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주신 맹세를 연상시킨다. 그건 뒤에 나올 일이고, 일단 발람의 사자들은 손에 복채(קסמים)를 들고 갔다. 발람은 일단 그 돈 때문에 이들을 하룻밤 유숙시켰다. 발람의 하나님은 그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고,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확증하신다. 

 

  • קוץ : 어원적으로 깨어난다는 뜻이다. 명사형 코츠는 가시, 카이츠는 여름이다.  
  • פתור : 앗시리아 문서에서 pitru.
  • קסמים : 신탁의 대가로 주는 비용. 에스겔서에서는 선지자의 거짓 점괘로 언급된다(겔 13:6, 7). 이 두 의미가 한 단어라는 건, 선지자의 거짓 점괘가 돈으로 매수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기도를 핑계로 크싸밈을 거래하는 건 참 익숙한 현상이니까.   

2알리야 (22:13-20)
아침에 일어나 발람은 함께 갈 수 없다며 발락의 사자들을 돌려보낸다. 보고를 받은 발락은 더 고위직 사자들을 보내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한다. 발람은 아무리 많은 은금을 주어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일단 하룻밤 묵게 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따라가라 하신다.


3알리야 (22:21-38)

아침에 일어난 발람은 나귀(אתון)를 타고 길을 떠난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칼을 빼들고 길에 서 있었다. 나귀는 이를 보고 도망가느라 길에서 벗어났다. 발람이 나귀를 때려 돌이키게 하자, 천사는 양쪽에 담이 있는 좁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좌우로 피할 틈이 없는 좁은 곳에서 꼼짝 못하는 나귀를 발람이 지팡이로 때렸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귀에게 말을 허락하셔서 나귀의 말문이 터졌다. 나한테 왜 때문에 그래요? 내가 언제 이런 적 있어요? 그러자 발람은 눈을 뜨고 칼을 빼든 천사를 보게 된다.

천사는 먼저 나귀를 옹호한다. 나귀 때문에 산 줄 알라는 것이다. 발람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한다! 온 세상 앞에 추잡스런 조작이 까발려지고도 여전히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많다. 나귀 따위가 뭘 알겠어요 우리끼리 얘기하죠, 라고 말하는 대신 발람은 천사가 길에 선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천사는 내가 하는 말만 전하라고 당부한다.

발락은 아르논 국경의 모압 도시까지 발람을 마중한다. 왜 진작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발락에게, 발람은 하나님이 그의 입에 넣어 주신 말씀만 말하겠다(הַדָּבָר אֲשֶׁר יָשִׂים אֱלֹהִים בְּפִי)고 한다.

 

  • אתון : 암나귀 (Jenny). 히브리대학교 학생연합회 기관지 이름이 "암나귀의 입"이다. 암나귀는 아톤, 신문은 이톤(עיתון)이라 만들어진 워드 플레이다. 사실 언론의 역할이란, 이 암나귀가 한 일처럼 사람들이 눈을 열고 보게 하는 것이다. 

직감(gut)을 믿으시라. 해야 할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4알리야 (22:39-23:12)
발락은 발람과 함께 키리얏 후쪼트(קרית חצות)로 간다. 밤새 소와 양을 잡아 먹고, 다음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바못바알 (במות בעל)로 인도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진영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발람은 일곱 제단에 일곱 수송아지와 일곱 수양을 바치게 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 계시를 듣기 위해 좀 떨어진 산 같은 곳(שפי)으로 간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일러주신 말씀은 티끌을 셀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백성이 많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받은 약속과 일치한다(창 22:17, 내게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발람은 자신의 마지막이 그들과 같기를 빌기까지 한다(וּתְהִי אַחֲרִיתִי כָּמֹה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데려왔더니 뭔 소리냐고 불평한다. 발람은 하나님이 그의 입에 주신 말씀만 할 수 있다고 다시 강조한다.

 

  • קרית חצות : city of streets
  • במות בעל : 우리말은 바못의 뜻을 풀어 '바알의 산당'으로 부른다. 지명으로 보는 게 낫다. 
  • שפי : 우리말은 '언덕길'이라 했는데, bare height이다. 그냥 좀 높은 곳이다.  


5알리야 (23:13-26)
쪼핌 들판(שדה צפים)에 있는 비스가 산 꼭대기(ראש הפסגה)로 이동한다. 일곱 제단에 일곱 수송아지와 일곱 수양을 바치고, 발람은 저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한다 (וְאָנֹכִי אִקָּרֶה כֹּה). 이번에는 힘이 들소 같은 이스라엘이 암사자, 수사자처럼 먹이를 움켜쥐고 그 피를 마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둘째 약속과 닿아 있다(창 22:17,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발락은 저주를 못하겠으면 적어도 축복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해야 한다고 답한다.

 

  • צפים : 전망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우리말 '소빔 들판'은 직관성을 잃었다. 
  • הפסגה : 높은 정상이라는 뜻이다. 


6알리야 (23:27-24:13)

이제 브올 산 꼭대기 (ראש הפעור)이다. 일곱 제단에 일곱 수송아지와 일곱 수양을 바치고 나서, 발람이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한다 (וַתְּהִי עָלָיו רוּחַ אֱלֹהִים).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그 벌어짐이 골짜기(נְחָלִים נִטָּיוּ) 같고, 강가의 동산 (גַנֹּת עֲלֵי נָהָר) 같다. 너를 축복하는 자들은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으리라.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는 약속과 닿아 있다(창 22:18).

 

흠, 강가 옆의 정원?

  • הפעור : 간극이 큰 골짜기를 가리킨다. 요르단 지형에서 가장 인상적인 면모로, 모압의 신 이름은 이 골짜기를 관장하는 신, 바알 브올이었다. 

 

7알리야 (24:14-25:9)
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כוכב)이 모압을 멸망시킨다는 예언이 이어진다. 에돔, 아말렉의 멸망과 겐 족속의 쇄약이 예고된다. 이렇게 발람과 발락이 제 길을 간다. 25장은 이런 엄청난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망하는지 보여준다. 모압 여인과의 음행으로 인한 우상숭배 때문이다. 다윗 왕의 모계가 모압 여인이라는 건 이 시점에서는 관심이 없다. 

이 일은 싯딤(שִּׁטִּים)에서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그들의 신 바알브올을 섬겼다. 진노한 여호와는 백성의 수령을 태양을 향해 목매 달게 하셨다 (וְהוֹקַע). 이때 철면피가 등장한다. 버젓이 미디안 여자를 데려온 것이다 (미처 정보를 못 들은 거겠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를 따라가 창으로 두 남녀를 나란히 꿰어 찍는다! 이스라엘 진영에 역병이 돌아 24,000명이 죽는다.

 

  • כוכב : 바르 코흐바는 '별의 아들'이란 뜻이다. 주후 132-135년 로마에 대한 유대인 봉기 총사령관의 이름이다.  
  • שִּׁטִּים : 아카시아 나무를 뜻하는 단어다. 사진처럼 광야 지역에 주로 나는 나무다. 
  • וְהוֹקַע : 공개 처형을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 공개 처형은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이 단어의 어근 자체는 탈구를 전제한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다는 게 이 단어다 (창 32:26). 그런데 왜 여기서 목매 다는 걸로 번역이 됐을까? 기둥에 매다는 십자가형의 일종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