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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아하레이 모트, 크두심 (레 16-20)

4월 29일 샤밧이다. 이스라엘의 현충일과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고 난 어수선한 주말, 오랜만에 파라샤를 열었다. 역시 토라를 혼자 읽기는 힘든 법이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잡았다. 아하레이 모트(레 16-18장)와 크두심(레 19-20장) 을 하나로 읽는 샤밧이다. 레위기에서 19-20장은 핵심에 가까운데 왜 이전 파라샤에 붙여 버리는 걸까.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윤달에 단독으로 읽기 위해서라고 이해해야 한다.

 

오랜만인데 이들 파라샤는 읽기가 너무 곤란하다. 각종 토에바 (abomination)와 테벨 (perversion)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둘의 차이가 뭐냐고? 호모섹슈얼은 토에바고, 비스티알러티는 테벨이다. 한국 교회에서 동성애 반대를 고집하며 레위기 18:22, 20:13 말씀을 내세우는데, 각종 (남성의) 성범죄 역시 토에바다. 교회가 (남성의) 성범죄 근절을 외치지 않는 것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현실 교회는 인간의 한계를 답습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레 18:22나 20:13을 자세히 볼 필요는 있다. 이 본문은 남성이 남성과 눕는 것을 금지한다. 그 상대가 여성 노예이거나 그 방식이 강간이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성'과 눕는 것만은 토에바라는 뜻이다. 이 본문은 남성의 '성'을 훼손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체 파라샤가 샤트네즈שַׁעַטְנֵז의 맥락 속에 있다는 것도 지적해야 한다. 함께 엮으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한 고발이다.

        

성경 해석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시대를 읽는 것과 함께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그래도 알아야 한다. 이 파라샤의 법정신은 이것이다. 여기 여성이 있다. 매물로 팔려 몸에 대한 권리를 잃은 존재다. 토라는 이 여인의 안타깝고 위태로운 상황을 설명하는 데 관심이 없다. 아마도 이 여성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녀를 노예로 팔았을 것이다. 누군가 대신 몸값을 치르고 석방시켜 주는 일은 기대할 수 없었다. 착취와 학대로 점철된 포로 생활의 끝에 강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 강간이 드러나도 '다행히' 여성은 처형되지 않는다. 강간한 남성 역시 처형되지 않는다. 이 여성은 노예이기 때문에 소유자의 재산에 가해진 피해로 셈해야 한다. ps. 남성이 이와 같은 여성의 처지가 되는 것은 토에바이다.

 

  • 이 본문은 동성끼리의 사랑이나 성관계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 여성 노예는 강간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남성이 남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성애는 토에바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
  •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고 여자의 명분은 그 열등함을 강조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여자와 누워 여자를 공격할 때, 여자는 남자의 정욕을 깨닫고 남자의 씨앗을 흡수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역할하면 된다.

 

토라에는 차별적이고 굴욕적인 법이 존재한다. 오늘날 성경 해석이 이를 토대로 종교 권력을 조작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 이 파라샤의 핵심은 동성애 금지에 있지 않다. 오히려 레위기 20:23의 선포, 아쿠츠 밤(אקוץ בם)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가증히 여기신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라고? 인간은 그럴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가증히 여기실 수밖에 없다. 가증하므로. 하나님의 방식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다른 백성으로부터 당신께 속할 한 민족을 구분해 내신 것이다.

וִהְיִיתֶם לִי קְדֹשִׁים

כִּי קָדוֹשׁ אֲנִי יְהוָה

וָאַבְדִּל אֶתְכֶם מִן-הָעַמִּים, לִהְיוֹת לִי

연결 접속사 바브의 역할이 대단히 미묘한 구절이다.

너희는 내게 거룩하라.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다른 민족들로부터 구분해 내게 속하게 했다. 

 

샤트네즈는 실과 실이 함께 엮이는 것을 말하는데, 불가타는 두 가지 색상으로 해석했다. 여기에서 스트라이프에 대한 거부감이 나타난다. 카톨릭 교회는 이를 근거로 성직자의 스트라이프 착용을 금지했다. 나치 시대 이미 독일에서는 범죄자와 매춘부만이 스트라이프를 입었고 이를 유대인에게 적용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른 백성과 같아서는 안 된다. 동화돼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레위기의 권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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