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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ha

파라샤 베샬라흐 (출 13:17-17:16)

1알리야 출 13:17–14:8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때, 하나님은 백성을 가까운 블레셋 사람의 땅이 아닌, 광야 길 얌 수프(by the way of the wilderness by the Red Sea)로 인도하셨다. 전쟁을 보면 이들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서였다. 애굽을 나설 때 모세는 요셉의 뼈를 가져갔고,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 앞에서 행하셨다.

 

TMI : 얌 수프의 영어는 Red Sea, 홍해이다. 이 '얌 수프'가 한국교회 장로교의 첫 번째 분열을 가져온 단어였다. 히브리어를 알지도 못하던 당시 장로교 지도자들 앞에서, 프린스턴에서 히브리어를 공부한 김재준 박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바다가 '얌 수프'라고 진술했고, 이를 근거로 이단으로 정죄됐다. 물론 이것은 히브리어 논쟁이 아니라,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인 김재준 박사 대 정통파 보수신학의 수호자 박형룡의 전쟁이었다. 신학 논쟁이 과연 교회를 쪼갠 과오를 덮을 만큼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무식함이란 저절로 드러나는 법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 살벌한 시대를 거치고 오히려 이단과 사이비가 활개를 치게 된 걸 생각하면, 당시 교회 분열이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더욱 씁쓸해진다. 지금도 성지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많이 만난다. 역사적으로 걸끄러운 사이의 성직자들이 성묘교회에서 부활절 기도를 누가 먼저 하느냐로 육탄전을 벌이는 일 같은 경우이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왜 우리는 아직도 이 수준일까.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변에 진을 치게 하신다. 덕분에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할 마음을 먹는다. 하나님의 목적은 백성 앞에서 당신의 강한 팔을 드러내시는 것이었다. 

2알리야 출 14:9-14
바로가 추격해오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모세에게 불평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고난이 닥치면 우선 불평부터 하고 본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실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3알리야 출 14:15-25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든 팔을 내밀어 바다를 가르게 하신다. 모세가 그대로 하자 큰 동풍이 바다를 물리며 좌우에 벽을 이루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 사이 마른 땅으로 행진했다.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병거의 바퀴가 벗겨지면서 우왕좌왕한다.

4알리야 출 14:26–15:26
하나님의 지시로 다시 모세가 팔을 내밀자 바다 물이 애굽 군대 위로 덮쳤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미리암이 차례대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며 노래를 불렀다. 모세의 노래는 쉬랏 하얌, 바다의 노래라 불린다. 미리암의 노래는 성서 본문 중 가장 고대성이 인정되는 본문이다. 얼핏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שִׁירוּ לַיהוָה כִּי-גָאֹה גָּאָה, סוּס וְרֹכְבוֹ רָמָה בַיָּם (너희는) 여호와를 노래하라 그가 높고 높으시니라.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내던지셨도다.

대충 이런 의미려니 하는 거지, 가오 가아, 라마 바얌이란 표현이 분명한 의미로 전달되는 건 아니다. 대개 이런 난해함이 본문 고대성의 근거이다. 


5알리야 출 15:27–16:10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사흘을 진행했는데 물을 찾지 못했다. 마라에 이르러 물을 만났지만 쓴 물이라 마실 수 없었다. 간발의 차이로 놓친 행운이 더 아쉬운 법이다. 백성은 모세를 원망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무토막을 물에 던지게 하시는데, 그러자 물이 단 것이 되었다. 이 단순한 행위는 성경에서 다양한 인물에 의해 반복된다. 쓴 물을 단 물로 만든 인물 중에 최고봉은 여리고의 엘리사다. 이렇게 쉽게 될 일이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마시는 물 때문에 고통을 겪은 걸까. 쓴 물로 인한 깊은 고통에 비해, 쓴 물이 단 물로 변하는 원리의 단순함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그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그 계명을 잘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질병이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치료하는 여호와, 라파엘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중세의 기독교인이 페스트 돌림병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마녀를 비롯한 색다른 믿음을 색출해 화형에 처하고 유대인의 피를 흘리는 식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엘림, 물샘 12와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는 곳에서 신 광야에 이르는데, 거기서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이번에는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늘에서 먹을 것을 비처럼 내리시고 샤밧 전날에는 두 배로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에 다가간다.


6알리야 출 16:11–3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들으셨다. 저녁에는 쓸라브(현대 히브리어로 꿩이다)가, 아침에는 만나가 서리처럼 땅을 덮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필요한 만큼 거두어들였다. 많이 거둔 사람도 남김이 없었고 적게 거둔 사람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침까지 아무 것도 남겨두지 말라고 명했지만 더러는 그대로 두었는데 그러면 구더기와 악취가 났다. 여섯째 날에 백성은 양식을 두 배로 거두었다. 그날은 아침까지 두어도 상하지 않았다. 안식일에 만나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어떤 사람은 이를 거두러 나갔다. 물론 얻지는 못했다. 


만나란 이름은 만 후, 즉 '이게 뭐냐"는 뜻이다. 가드의 씨와 같다고 했는데, 현대 히브리어로 가드는 고수 계열이다.

모세는 유리병(צִנְצֶנֶת) 하나에 만나를 넣어 영원히 보관하라고 명령한다. 광야에 유리병이라니.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7알리야 출 17:1–16
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에 진 치고 물이 없어서 이번에는 모세와 다툰다. 모세더러 왜 그들을 여기까지 데려와 목말라 죽게 하냐고 묻기조차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 산 반석을 치라고 명하시는데, 그래서 그곳이 맛사(시련)와 므리바(다툼)로 불리게 된다. 

한편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 있었는데,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가 지치자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돌 위에 앉히고 양쪽에서 그의 손을 받쳤다. 결국 여호수아는 전투에서 아말렉을 이겼다. 그곳의 이름은 '여호와 니시 (my banner)"가 된다.

 

이스라엘 국회 앞에 있는 엘칸 메노라의 모세 조각 ->


여호와는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본문은 푸림절마다 아말렉 자손인 아각 사람 하만에 대한 증오를 되새기는 데 사용된다. 이 민족은 잊을 줄 모른다. 

 

하프타라는 사사기 4-5장, 드보라와 바락의 시스라 전쟁이다. 갑자기? 하나님 백성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드보라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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