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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왜 저러나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면 누구나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자신을 좌파로 여기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기후 변화를 위한 집회에서 그레타 툰베리는 팔레스타인 출신 친구한테 마이크를 넘기며 집회의 성격을 변질시키고도 뭐가 문제인지 모른 척한다. 사회 정의 없이는 기후 변화가 없다면서. 그동안 중국에 왜 한마디 못 했는데? 수잔 서랜던은 10월 7일 세상만사에 무심하더니 며칠 후부터 안티 이스라엘 시장을 접수한 것처럼 트윗을 날리기 시작했다. 백인이지만 이토록 사회정의에 깨어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대는 미국 시민이므로. 하지만 이들에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 좌파니까 그러려니 한다. 이들의 행동이 사태의 본질을 건들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툰베리나 수잔 서랜든이나 자기 말처럼 이곳의 75년 역사를 공부나 좀 했으면 좋겠다.   

 

     

세계 최고 명문 대학, 하버드 사태는 다르다. 하버드가 대표하는 미국 지성이 훼손되고 기부자들이 떠난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나 쉽게 도덕적 나침반을 저버렸으면서 그들의 앞날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까 봐 걱정이다. 아카데믹 기관에 있으면서 미국 대학들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BDS 광풍이 불 때도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대학이 이러면 안 되잖아, 문제제기가 안 먹힌다. 

 

하버드에 유대인 기부자들이 워낙 많아서 이번 사태가 좀 더 주목을 끌었을 수도 있다. 학교에 돈줄 끊기는 것만큼 중대사가 없으니까. 하버드 최초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총장으로 부임 3개월차였던 클로딘 가이에게는 안타까운 재앙이다. 하지만 학교 행정가로서 자질은 3개월이 됐든 3년이 됐든 똑같은 싹수를 드러낸다. 미국 대학의 소수인종 할당제 시스템에서 곱게 키워진 정치학 박사가 대학 정치의 쓴맛인들 제대로 알까. 

   

10월 7일 정오, 이스라엘 남부 키부츠의 집들이 불타고, 춤추고 있던 젊은이들이 학살되고 있을 때, 하버드 대학교 33개 학생단체가 공개 서한을 공개했다. "모든 폭력 행위는 이스라엘에 책임이 있고, 이 상황의 원인은 이스라엘이다." 그 유명한 "오늘의 사건은 공백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이 편지에 등장한다. IDF는 아직 가자 지구에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하지 않았을 때였다. 충격에 빠진 이스라엘의 대응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늦었던 순간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하버드 총장이 학생단체가 보낸 편지에 자기 입장을 신속히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클로딘 가이 총장 역시 이 편지의 본질을 간과했다. 총장의 공식 대응은 3일 후에 나왔는데, 실제로 사건을 종결시키기는커녕 부채질만 했다.

 

하버드 대학생들이 이스라엘 편에 섰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왜 테러의 정의를 새롭게 해야 하지? 사건의 전말이 파악되기도 전에, 테러를 옹호해야 한다고 느낀 그들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거다. 이스라엘의 자리에 예컨대 자기 자신을 대입하고도 그렇게 할 수 있나? 10월 7일 그날 아침 수십 명의 미국 시민들이 음악 축제 자리에 있었다. 그들이 편지 속 하버드 대학생과 다른 건 유대인이라는 것밖에 없다. 사실상 유대인이기 때문에 테러의 대상이 되어도 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명문대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 그 편지에 서명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는 걸. 세상 만사 폭로하기 좋아하는 미국 미디어들은 학생들의 외부 자금 출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외부 자금 출처와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와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모양이다.

 

편지에 수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 편지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다. 며칠 뒤 하버드의 유대인 기부자 커뮤니티는 학교 당국에 서명자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특별한 주장을 갖고 있는 이들은 채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들이 누군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수년 동안 수백만 달러를 지원해 온 재단과 사업가에게 이런 권리가 없나? 초자본주의 나라의 수업료 가장 비싼 대학이여? 장학금 심사를 핑계로 별 오만 가지를 질문해 대면서?

뒤끝 쩌는 서명자 공개 요구는 과연 많은 서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편지에 서명을 철회하거나 서명하는 게 자기 의사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많은 이름 가운데 수십 명이 노출되었고, 역시나 뒤끝 쩌는 단체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광고 트럭에 그 이름들을 공개했다. 미래가 달린 일인데 무서웠을 것이다. 하버드의 특권은 이런 사소한 일로 제약받지 않는다고 믿었을 테니까. 대학의 반응은 훨씬 더 특이했는데, 이름이 공개된 학생들을 지원하는 특별 팀을 구성했다. 미국 대학의 진보 알레르기는 백인 억압에 대한 유색인종의 저항 연대에서 기인한다. 이 유일무이한 필터 속에는 아시아계에 대한 교묘한 차별도 세팅돼 있다. 당해 본 사람은 알지. 저기서 프리 팔레스타인 외치는 동북아시아 학생들 좀 만나봤으면.    

카타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현 에미르는 진작부터 미국 대학을 정복하려 애쓰던 장본인이다. 카타르의 노스웨스턴 대학은 전문 분야가 아예 저널리즘과 커뮤니케이션이다.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는 나라가 왜 저널리즘을 가르치지? 그걸로 뭐하려고? 이름조차 Education City인 카타르의 도시 전체가 미국 대학들로 채워지고 있는 사실이 우연일까. 

 

유대인 기부자들이 기부를 중단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반이스라엘, 반유대주의 성향이 두드러질지라도 대학을 존중하고, 그 교육 시스템을 믿었기 때문이다. 테러를 지지하는 학생과 그런 학생을 보호하는 학교라면 더 이상 가망이 없지 않을까. Ofer Family, Bill Ackman, Wexner Foundation이 하버드와 협력관계를 중단했다.   

주요 로펌들도 하버드 법대의 학장에게 서신을 보냈다(이 편지 좀 읽어봤으면). 신중한 법정 용어를 사용해 반유대주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하버드 졸업생의 채용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내용이란다. 실제로 인턴에 뽑힌 학생들의 취업이 취소되기도 했다. 많은 하버드 졸업생들이 자녀를 하버드에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미국 캠퍼스에는 From the River to the Sea가 울려 퍼진다. 하마스는 강에서 바다까지라는 자기 대의를 위해서 자살 공격이든 칼부림이든 총격이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유대인을 살해하라고 요구했었다. 흑인을 그렇게 공격하라고 했으면 미국 사회는 가만 있지 않았겠지. 유대인은 그래도 된다고 여기는 것인가. 

 

하버드 학생들이 자기 미래에 해를 입을까 봐 몸 사리는 거 이해한다. 그러면서 테러의 그늘 밑에 사는 삶을 그래도 마땅하다고 믿는 경도된 지성을 어떻게 좀 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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