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르덴과 알론은 3살짜리 딸 게펜을 둔 젊은 부부다.
야르덴은 코하브 야이르에서 태어났고, 물리 치료사로 노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개인적인 경험으로 이 직업군이 대단히 헌신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턴 생활을 예루살렘 셰이크 자라에서 해서 아랍어를 할 줄 안다. 평화주의자이고 취미로 암벽 등반을 하고 있다. 알론은 키부츠 브에리 출신이고 가족 대부분이 브에리에 살고 있다. 젊은 부부는 한달 전까지 브에리에 살다가 이사를 한 상태였다. 브에리의 삶은 여러 모로 환상적이었지만 가자 로켓의 스트레스를 어린 게펜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최근 야르덴의 어머니 오를리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가족은 야르덴 부모님의 집인 기바타임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야르덴의 친정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3주 동안 남아프리카를 여행했다. 10월 6일 돌아왔고 명절의 마지막 날 심핫토라를 알론의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브에리를 방문한 것이다.
10월 9일 6시 30분, 하마스 공격이 시작되고 테러리스트들이 가트 가족의 집을 부수고 들어왔다. 아버지 에쉘은 욕실에 문을 잠그고 숨는 데 성공했다. 알론의 어머니 킨네렛이 먼저 끌려갔다. 막 인도에서 돌아온 테라피스트 누나 카르멜도 밖으로 끌려갔다. 그 다음 네 명의 테러리스트가 집앞에 있던 이 가족의 픽업 트럭에 야르덴과 알론과 게펜을 실었다. 트렁크에는 다른 키부츠 주민이 실렸다. 차량이 가자 국경 근처에 도착했을 때 IDF의 탱크가 나타났다. 테러리스트들은 흠칫 놀라 차에서 뛰어내렸고, 그 틈에 부부도 차에서 뛰어내려 달렸다.
부부는 들판에서 IDF 전초기지를 발견했지만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지 않았다. 이때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을 뒤쫓아오며 총을 쏘기 시작했다. 부부는 달려야 했다. 어느 시점에서 야르덴은 딸 게펜을 알론에게 넘겨주었다. 알론이 더 빨리 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야르덴은 알론과 헤어져 테러리스트 방향으로 달려가 나무를 발견하고 그 뒤에 숨었고, 알론은 게펜을 안고 더 달려가 덤불과 나무로 가려진 구멍을 발견했다. 알론은 테러리스트들이 근처까지 수색해 오는 동안 덤불 속에서 12시간 동안 버텼다. 다음 날 거의 24시간 만에 알론은 게펜을 안고 브에리로 돌아왔다. IDF와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전투가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알론은 간신히 IDF 진영에 도착했다. 야르덴의 오빠 길리 로만은 알론이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IDF를 독촉해 수색대를 구성했고, 베두윈 안내인들까지 동원해 인근을 샅샅이 뒤졌다. 주변에서 전투가 진행중인 시점이었다. 하지만 야르덴이 희생됐다는 흔적은 없었다. IDF와 가족들은 야르덴이 다시 붙잡혀 끌려갔다고 결론 내렸다.
야르덴(35)의 형제들인 길리(39), 리리(32), 로니(25) 로만 가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야르덴은 4년을 보낸 브에리의 삶이 천국과 같았지만, 불안정한 치안 문제로 고민했고 형제들과도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 못해 힘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매우 가까운 형제였다.
3주 동안 함께 남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야르덴의 가족이 먼저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로만 가족은 여행을 계속했다. 10월 7일 아침, 아버지 요니는 야르덴이 쉘터에 있는 사진을 받았다. 야르덴은 다 괜찮다고 썼다. 가트와 로만 가족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곧 테러리스트가 키부츠를 침입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야르덴은 함께 귀국한 큰오빠 길리와 연락하고 있다고 썼다. 잠시 후 요니와 로니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위해 급히 항공편을 찾아, 15시간 거리에 있는 요하네스버그를 향해 운전을 시작했다.
그동안 알론의 어머니 킨네렛이 무장한 테러리스트들과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가 퍼졌다. 그다지 폭력적이지 않아서 인질 협상이 진행중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키부츠의 공동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수십 명이었고, 이들은 16시간 동안이나 인질로 잡혀 있다가 대부분 살해된다. IDF가 도착하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린 것이다.
10월 9일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길리는 알론의 메시지를 받는다. 게펜은 자신과 함께 있고 야르덴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마스에 대한 전쟁이 선포되었고 인질을 찾는 수색 작업은 IDF의 우선 목표가 아니었다. 키부츠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고 우선 민간인을 구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비군 대위인 길리는 군복을 입었고, 자신을 야르덴 수색 작업을 위해 동원된 예비군으로 규정했다. 브에리의 장교들을 설득해 수색작업에 나섰다. 날마다 키부츠 브에리를 담당하는 부대가 달랐기 때문에 자신이 뭘하는지, 야르덴이 어떻게 된 건지 매번 새롭게 설명해야 했다. 수색 작업은 4일이나 지속됐지만 야르덴이 가자로 다시 끌려갔다는 결론에 동의해야 했다.
야르덴이 살아 있다는 게 분명했기 때문에 로만 가족은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에게 향했다. 야르덴이 독일 시민권자였기 때문이다. 독일 총리는 독일 시민의 구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길리 로만은 하크파르 하야로크에서 평화를 위한 국제 기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과 기독교인이 함께 기숙 생활을 하는 유명한 학교다. 길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평화가 이 피비린내 나는 갈등의 공간을 단번에 바꿀 거라는 나이브하고 초현실적인 이상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갈등과 살인이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단다. 하지만 침통하게도 이제 그토록 애썼던 기반시설이 심각하게 훼손됐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타격에 대해 길리는 교육자답게 자기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야르덴이 아랍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로만 가족에게 큰 지지가 되었다. 아마도 야르덴이라면 테러리스트들과 소통하며 다른 납치자들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풍부한 지식과 공감력으로 상황 너머를 바라보며,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간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4일이 지나고 11월 29일,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4일 간의 휴전에 동의하고 다시 이틀을 연장한 마지막 날, 석방되는 5명의 청소년과 7명의 여성 인질 가운데서 야르덴은 이렇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를 안은 게펜의 미소
알론은 게펜을 20시간 이상 안고 있었다. IDF 군인들은 일요일 아침 귀신같은 형상으로 나타난 알론에게 안고 있는 아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론은 고개를 저으며 아기 엄마가 부탁한 만큼 완전히 안전해질 때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3살 아기가 20시간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조롱하는 세상의 풍토에 시니컬해질 때마다 이 이야기를 꺼내보게 될 것 같다. 로만-가트 가족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알론의 누나 카르멜은 아직도 가자에 인질로 잡혀 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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