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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다르 가족 이야기

2023년 10월 7일 아침 오프라(70)는 여느 때처럼 키부츠 브에리의 언덕을 산책하고 있었다. 공동묘지 쪽으로 난 큰 길이다.

 

 

익숙한 아름다운 풍경 너머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저게 지금 총소리인가? 오프라의 큰아들 오란은 잠을 자고 있었다. 샤밧 아침 6시 30분이었으므로. 잠을 깨운 건 2살 반짜리 아들과 함께 거실에 있던 아내였다. 키부츠에서 총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야? 공습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쉘터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테러리스트들이 그들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란은 자신이 살아남은 건 기적이라고 여긴다. 옆집에 사는 작은아들 엘아드는 어머니가 산책 나간 사실을 떠올리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 계세요?"

"여기 베두윈들이 총을 쏘았어. 나 좀 다쳤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두윈이 왜 키부츠에 와요?

"엄마 일단 거기서 좀 피해 보세요." 

"차들이 엄청 많아. 나한테 총 쏘는 건 아니겠지. 이쪽으로 오네."

엘아드가 뭔가를 더 말하려 할 때 어머니는 비명을 질렀고 전화는 끊어졌다. 지옥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프라 케이다르는 이날 비극의 최초 목격자였다. 

 

아버지 사미는 파킨슨 병에 걸려 필리핀 남성 도우미 조이와 함께 따로 살았다. 공습 경보가 울리자 사미는 언제나처럼 조이를 안심시켰다. "조이,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사미는 가자의 로켓 공격이나 공습 경보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키부츠 베테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이 집을 부수고 들어섰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 아이들은 어딨어?" 사미는 그렇게 거실에서 살해됐다.

 

어머니 오프라는 자신의 아름다운 집이 어떻게 폐허가 됐는지 보지 못했다. 최근에 장만한 새 매트리스는 완전히 불타 없어졌고, 수백 장의 엘비스 프레슬리 레코드도 잿더미로 변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정신 지체 장애자인 오프라의 딸 야엘(41)이 있었다. 가까운 스데롯 기관에 기거하는 야엘은 주말에는 집에 와 가족들과 함께 지낸 것이다. 엘아드의 아내가 혼자 있는 야엘에게 전화를 걸어, 공습 경보가 울렸고 테러리스트들이 키부츠에 들어왔으니 쉘터로 들어가 있으라고 당부했다. 야엘도 키부츠에서 자라서 이런 일에 이골이 났다. 그런데 쉘터 밖에서 아랍어가 들렸다. 야엘은 그들이 집으로 들어와 칼로 자신을 찌를까 봐 두려웠다. 10시쯤 오프라의 집이 열리지 않자 테러리스트들은 불을 질렀다.

야엘은 엘아드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 너무 무서워."

엘아드는 속삭였다. "알아, 근데 쉘터에서 문 잠그고 가만히 있어야 해."

야엘은 말했다. "여기 연기가 나. 전기도 없어."

엘아드는 다급히 말했다. "거기 수건 있지?"

야엘은 물었다. "엄마는 왜 안 와?"

엘아드는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누나, 내가 배터리가 얼마 없어. 잘 들어야 해. 수건 가져다가 문 틈에서 가까운 바닥에 깔고 엎드려 있어. 조용히 있어야 해. 그럴 수 있지?"

야엘은 말했다. "엄마 보고 싶어."

 

오후 늦게 IDF 군인들이 브에리에 들어왔다. 테러리스트들은 브에리에서 격전이 벌어지리라 믿었다. 그래서 인질들을 붙잡은 채 기다렸던 것인데,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군대는 너무나 늦게, 대부분의 테러리스트가 인질들을 죽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서야 나타났다. 어쨌든 밖에서 히브리어가 들리는 걸 깨달은 야엘은 문을 두드렸다.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당신, 누구야?"

"저는 야엘인데요."

    

키부츠 주민들은 집을 떠나야 했다. 전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오란은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정부가 키부츠를 위해 준비한 사해 근처 호텔로 옮겼다. 어머니의 휴대폰이 가자에서 발견되면서 가자로 납치됐음이 확증됐다. 이제 부상당한 채 납치된 어머니의 생환을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며칠이고 오란은 잠들지 못했다.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으로 미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바지런한 키부츠에서도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에너지가 넘쳐서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렵다는 분이다. 그런 분이 꼼짝도 할 수 없는 터널 속에서 무엇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잠시도 머릿속이 쉬지 않았다.

 

 

야엘이 머무는 스데롯 기관도 디모나에 있는 기관으로 옮겨갔다. 야엘은 천국 같았던 키부츠가 그립다. 야엘은 장애가 있지만 바보가 아니다. 살해당한 아버지와 납치된 어머니에 대해 일기를 쓴다. 무엇보다 야엘은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휴전을 약속하고 인질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18세 이하 청소년과 그 어머니들, 노인 여성들이 우선이었다. 오프라는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루, 이틀, 사흘, 브에리 사람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IDF 정보부는 당일이 되어서야 해당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석방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케이다르 가족의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는 50일 동안 미쳐버릴 것 같았다면 휴전 중인 5일 동안은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12월 2일, 드디어 소식이 왔다. 가자에서 어머니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오란과 야엘과 엘아드는 납치자 가족에서 사망자 가족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야엘은 엄마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마스 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렸지만, 이 가족의 이야기는 유독 아프다. 이스라엘 작가 론 레쉠의 표현대로 하자면, 베인 살 속으로 칼날이 더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다. 야엘을 위해 기도한다. 엄마 오프리가 그동안 베풀어준 사랑이 충분히 강해서 야엘을 붙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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