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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베트 아힘

시편 133편은 '형제의 연합'이 아름답다고 묘사하는데, 그 히브리어 표현이 Shevet Achim이다. 문자적으로 형제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아슈돗에 본부를 두고 있는 NGO 쉐베트 아힘은 미국 기독교인 Jonathan Miles에 의해 설립됐다.

 

마일스는 1994년 이스라엘로 와서 러시아계 유대인들의 정착을 돕고 있었다. 한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가 아들 안드레이의 백혈병 치료를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골수 이식만이 길이었는데 64000달러가 필요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주변 사람이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안드레이는 수술을 받았고 회복된 듯 보였다. 하지만 1년 후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안드레이는 결국 사망했다. 그를 위한 모든 기도와 노력과 치료는 그럼 헛된 것이었을까?

 

1996년 마일스는 가족과 함께 가자 지구의 라피야 옆에 있는 샤부라 난민 수용소로 거처를 옮겼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의료적 책임을 지게 됐다. 긴급 구조가 필요한 환자들도 더 이상 이스라엘로 넘어와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마일스는 많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심각한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지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 어린이들을 이스라엘로 데려갈 수 있도록 이스라엘 의사들과 협력하는 단체를 세운 것이다. 

 

마일스가 찾은 이스라엘 외과의사는 홀론에 있는 울프슨 의료 센터의 Ami Cohen 박사다. 일단 어린이들을 데려다 수술부터 하면 돈은 나중에 어떻게든 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코헨 박사가 마일스와 함께 일한 것은 이스라엘 의사로서 가자 지구의 환자들에게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쉐베트 아힘은 외국인 기독교인으로서 가자지구나 이라크처럼 이스라엘인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가서 환자들을 찾아와 이스라엘 의사들의 손에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다. 코헨 박사는 2001년 사망했다. 하지만 그의 뜻을 이어 울프슨 의료 센터는 현재까지 약 1,000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심장병 수술을 제공하고 있다.

 

2003년 걸프전이 끝난 이후, 쉐베트 아힘은 이라크로 가서 그곳 아기들을 데려올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외교관계도 없는 이라크 시민의 이스라엘 여행을 위해 요르단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이 서류와 이송 작업을 준비했다고 한다. 현재 매년 약 40명의 이라크 어린이가 이스라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2013년 이후에는 시리아 어린이들을 데려오고 있다. 

환자 한 명당 비용은 $8,000으로 교통비, 입원 및 치료비, 생활비 전부를 포함하는데, 모두 쉐베트 아힘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쉐베트 아힘은 공동체 집을 운영해서 환자의 가족들도 돕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술 후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회복기를 갖고, 외래 치료를 위해 수개월 동안 후속 치료가 필요하다. 가족들은 수술 이후에도 당분간 쉐베트 아힘 공동체에서 머물며 생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많은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공동체에 거주하며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https://www.shevet.org/

“Behold how good and how pleasant it is for brothers to dwell together in unity” – Psalm 133 FROM THE UNDERGROUND ICUThe road took me right past the Sheba Medical Center, and I pulled in when I realized I hadn’t visited our children there since the

www.shevet.org

 

한때 쉐베트 아힘이 예루살렘에서 사용했던 건물이 하느비임 거리 29번지의 유서깊은 석조건물이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결국 무너졌지만 원래 이곳은 독일 선교사 막스 산드레츠키Max Sandreczky 박사가 어린이들을 치료하던 병원이었다. 

 

 

 

1869년 11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수에즈 운하 개통식에 참석하고 나서 예루살렘을 들렀다. 당시 예루살렘은 많은 유럽 통치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모두가 이 도시에서 입지를 마련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산드레츠키가 종교와 상관없이 이 도시의 모든 어린이를 치료하려는 비전에 충분한 자금을 제공하는 기부자는 없었다. 프로이센 대공 중 한 명인 프리드리히 프란츠 2세가 수년 동안 산드레츠키를 지원하긴 했다. 그래서 병원 이름은 공작 부인 마리의 이름을 따서 "마리엔스티프트(Marienstift)" 병원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독일 의사가 치료하는 어린이 병원에 오는 것을 꺼려했지만, 결국 오기 시작했다. 1884년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던 예루살렘에서 홍역과 수두가 만연해 도시 어린이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산드레츠키의 병원은 나병 치료도 했다. 1872년 병원은 하느비임 거리 29번지로 이사했고, 9개의 침상을 놓을 수 있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산드레츠키는 수천 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수십 번의 수술을 했다. 1898년 10월, 프로이센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산드레츠키의 후원자 대공은 이미 죽었기에, 황제의 지원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 황제는 Marienstift 같은 사소한 데는 관심이 없었다. 기부조차 끊어진 병원을 운영하던 산드레츠키는 지쳤다.

1899년 6월 22일 목요일 해가 뜬 직후 그는 병원을 떠났고 저녁 무렵에 그의 시신은 기드론 계곡에서 발견됐다. 심장에 총상이었다. 자기 총으로 자살한 것이다. 몇 달 전부터 그는 감정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시온 산에 있는 개신교 묘지에는 가슴 아픈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특히 산드레츠키 박사의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의 아버지 카를에 이은 대를 이은 선교사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묘지를 훼손한 테러가 일어났지.

 

2023년 10월 7일, 남부 네게브에서 하마스의 테러 공격이 벌어졌을 때, 자녀의 심장병 치료를 위해 이스라엘 땅에 와 있던 가자 어머니들이 있었다. 하마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이들의 자녀들이 수술을 받았다. 그동안 하마스가 쏘아보내는 로켓을 피하기 위해 수없이 쉘터로 달려가야 했다. 드디어 수술을 마치고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고 덕담하는 의료진에게 한 어머니가 말했다. 자신의 아들은 샤히드가 될 거란다. 순교자, 일종의 테러리스트를 말한다. 

 

 

 

하나님께 부름 받아 사역하는 사람이 그 결과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 의사들에게 원수를 사랑할 기회를 제공하고, 치료가 필요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쉐베트 아힘의 사역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살려놓은 자식을 지하드(성전)의 샤히드(테러리스트)로 키우겠다는 팔레스타인 어머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은 놀라울 만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았다. 자기 자식이 죽어가는 걸 속수무책 보고만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식을 잃은 다른 부모에게 무정할 수 있나? 이스라엘 어머니들이 죽거나 납치된 자식들을 위해 울고 있는데 전혀 안타깝지 않단다. 이스라엘이 가자에 하고 있는 일이 나쁜 짓이라고만 반복한다. 하마스가 알고 있을 테니 보복이 두려워서 말을 조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단호한 눈빛을 보면,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가장 부드러운 마음이 할큄을 당하는 것 같다. 이 아이들을 축복한다. 그들에게 선의의 손을 뻗었던 사람들을 잊지 말기를. 부디 생명의 소중함을 믿고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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