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알림이 왔다. 예식 자체는 40분쯤 걸렸다. 오늘 휴가를 내고 겨울 꽃 보러 갈 예정이었다. 꽃을 본들 마음이 상쾌할까. 장례식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유대인들은 장례식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해야 하는데, 유가족들이 너무 지쳐서 유야무야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장례식의 패러독스가 이런 거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물론 쉬브아도 있긴 하지만,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이 차오르는데 뚝 자르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거다. 가까운 곳에 레스토랑을 하는 친구가, 오늘 영업을 안 할 거란다. 일복 마다 않는 사람들이 주방에 들어가 뚝딱 음식을 만들었다. 양파를 얼마나 썰었는지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무색하다. כָּבוֹד לֵאלֹהִים בַּמָּרוֹם שָׁלוֹם עֲלֵי־אָרֶץ וְלִבְנֵי אָדָם רָצוֹן 사실 이 땅의 평화를 허락받은 사람은 일부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이다. 현대 히브리어는 브네이 아담 라쫀,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는데, 헬라어 원어는 엔 안쓰로포이스 유도키아스, "good will의 사람들 가운데"이다. 데살로니카후서의 저자는 하나님이 성도들 가운데 유도키아를 채워주시도록 날마다 기도하겠다고 했다. 오늘 참석한 지인 중에 그리스인이 있었는데 "유도키아의 사람"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우리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샬롬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홍해를 장악한 후티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미국에 소집하고 있는 연맹체에 사우디와 이집트와 UAE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과 합의안 사인 직전이라 하고, UAE는 하마스 전쟁과 상관없이 이 지역 해적들에 신경 안 쓰기로 했단다. 재미있는 게 이집트다. 아마 금전적 피해는 가장 많이 볼 것이다. 수에즈를 통과하는 배들이 줄 테니까. 그런데 이집트에게 보다 큰 쟁점은 가자 난민이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전쟁을 속히 끝내야 가자 난민도 돌아갈 수 있으니, 후티 반군을 통한 이스라엘 압박이 딱히 나쁠 게 없는 거다. 무엇보다 미국과 손잡는 게 아무리 봐도 이스라엘 편을 드는 걸로 보이니, 아랍 국가들로부터 비난이 적지 않은 것이다. 냉전이 무색하게 세계는 진영 싸움 중이다. 중국도 웃긴다. 홍해로 드나드는 화물선 대부분이 중국 제품을 실어나르는 건데.
10월 7일 이후 처음으로 신와르가 얼굴을 비치고 절대 항복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근데 내용이 순 거짓말이다. 하마스가 IDF 1500명을 죽였단다. 10월 7일 IDF와 경찰 전사자가 350명, 지상전 이후 전사자가 156명이다. 너무 지하에만 있어서 땅 위의 일을 모르나? 하니예의 초췌한 얼굴을 보면 이해가 갈 텐데.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는 가자 통치를 포기할 의사가 없단다. 이집트 중재안도 거절했다. 이 고생을 했는데 가자를 PA한테 갖다바치게 생겼으니 천불이 날 거다. 사실 가자 민간인만 죽어나는 거지, 지하 벙커는 꽤 상태가 좋고 무기와 식량까지 다 빼돌려서 몇 개월 너끈히 버틸 거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카톨릭 교회는 베들레헴의 예수님 성탄교회에서 Vigil mass를 전 세계 생중계로 진행한다. 올해는 취소됐다. 베들레헴 전체가 봉쇄돼서 들어갈 수도 없다. 구유 광장에 대형 트리도 세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도 군인 전사자들의 장례식으로 바쁜 모양이다. 왜 세상이 이 지경인지. 25일 교황의 우르비 에트 오르비에서 분쟁중인 국가가 더 소개됐는데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시리아, 예멘, 남수단, 콩고, 그리고 한반도다. 서울 청계천에 붐비는 인파와 함께 보면 좀 어리둥절하다. 뭐, 한국은 특수 케이스니까.
전쟁 중에 읽는 파라샤는 매주 전율을 안겨준다. 지난 샤밧의 파라샤 바이가슈에 부제를 붙인다면, 요셉의 울음일 것이다. 요셉은 다름아닌 형제들의 손에 의해 납치되고 노예로 팔렸다. 아들을 사랑한다는 아버지는 시신도 확인되지 않은 아들을 찾기 위해 나서지 않는다. 요셉은 형제들의 음모나 보디발 아내로 인해 겪게 되는 고초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요셉이 감정을 내비치는 순간은 형제들을 다시 대면했을 때부터였다. בכ''ה 동사는 요셉 이야기에서 9번이나 등장한다. 특히 형제들이 자신과 달리 베냐민을 확고히 보호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 바로의 궁정이 떠나가도록 크게 운다. 울 수 있는 용기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요셉의 울음에서 중요한 건 그 타이밍일 것이다. 납치 순간부터 울고불고 했다면 요셉은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요셉은 정신 단디 차리고 살아남았고, 그에게 비로소 회복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치유를 위해 자신을 풀어놓은 것이다. 생사가 달린 순간에 누구나 삶에 집중하지 않는다. 죽을 뻔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죽는다는 사실이 선명해지면 자포자기가 되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롯의 아내도 그 어수선한 파괴의 현장에서 얼마나 정신을 놓앗으면 하지 말라는 일을 했겠나. 트라우마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때가 되면, 이 절박한 생존의 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을 위한 자가반응도 시작될 것이다.
12월 25일, 하마스 전쟁 80일째 이스라엘 정치가들이 장기를 벌이고 있다. 구구한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궁금은 하다. 그날 네탄야후 총리의 아들이 노바 축제에 있었다면 이번 전쟁은 양상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이렇게 많은 군인이 전사했는데, 그중에 국회의원 자식이 한 명밖에 없다니 이상하지 않나. 네탄야후 총리가 지금은 군사 작전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고 있는 국회 연설을 지켜보며 납치자들 가족이 "당신 아버지면 어땠겠냐" 묻고 있다.
이스라엘 사회는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부상으로 인한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다. 3개월 동안 총탄을 피해가며 전투를 했는데, 이들의 생계에 아무 보상이 없다. 군인은 월급이 나온다. 하지만 예비군을 간 사람은 원래의 생계를 제치고 전장에 간 것이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은 사람은 문제가 덜하다. 매달 내던 세금 기준으로 보상금이 나온다. 물론 거기에는 시간외 수당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원래 받던 월급보다 적을 수 있다. 또 자녀를 포함한 모든 가사 문제를 아내가 떠맡았기 때문에, 아내의 월급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걸 나라가 신경을 안 쓴다. 뭐 그래도 월급쟁이는 나오는 게 있다. 자영업자였다면, 그가 살고 있는 동네가 오테프 가자였다면 그는 아무 소득없이 3개월간 가족을 팽개치고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나라를 믿고 갔을 것이다. 정부를 의지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란 걸 깨달은 사람들의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다. 국회에 앉아서 나라에 도움은 고사하고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는 분들은 다 월급 받고 있는 현실에 좌절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이런 일은 없었단다. 이유? 내각에 앉아서 국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분이 자기 표밭인 웨스트뱅크 유대인 정착촌 치안을 위해 자금을 대느라 바쁘다. 의식의 문제도 있다. 형편이 어려우면 말을 하란다. 누구나 자진해서 도와준다고. 누가 도움을 받겠다는 건나. 자신이 국가를 위해 한 일이 있으니, 국가가 알아서 내 걱정을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다. 남의 돈에 기생해서 사느라, 종국에는 남의 돈을 자기 돈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복지란 구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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